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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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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방법에 대한 한국인의 고정관념

  한국인들은 대개 여럿이 함께 일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일하면서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일하는 방법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컨베이어 벨트’  개념이 매우 깊이 고착돼 있다. A라는 사람이 자기 소관의 업무를 완벽하게 해서 B에게 넘기고, B 역시 자기 소관의 업무를 완벽하게 보태서 C에게 넘기는  리레이 식의 업무수행 과정(Process)을 일하는 방법의 정석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일하게 되면 A가 일할 때에는 B와 C는 A에게 힘을 보태줄 수 없다. 그래서 힘을 합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뿔뿔이 흩어져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가지고는 시너지를 낼 수 없으며, 따라서 국제경쟁에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리레이식 업무수행 방식이 낙후된 방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공장을 가보면 모두가 제각기 일한다. 용광로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용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설계도면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자재 구매 목록을 작성하는 사람도 있다. 영업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장을 지도 감시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언제나 혼자서 일한다. 이렇듯 각자마다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어떻게 힘을 합치라는 말인가. 4명이 1개조를 이루어 과제를 수행할 경우 팀장은 3명의 팀원들에게 부분 과제를 할당한다. 3인의 팀원은 각자 맡은 일을 책임지고 수행한다. 여기에 무슨 하자가 있을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3인이 각기 맡은 일에 충실하고, 그렇게 해온 일을 합치는 게 곧 힘을 합치는 게 아닙니까?". 아마도 99.9%의 사람들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A가 하는 일에 B와 C와 팀장의 지혜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연구소에서 학자들이 일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팀장이 3명의 고급 연구원을 이끌고 연구과제를 수행한다. 팀장은 과제를 몇 개의 챕터(章)으로 나누어 각 연구원에게 할당해주고 각자가 밑은 일을 해오라고 한다. 아마도 한국의 많은 연구소가 이러한 식으로 일을 할 것이다. 기업도 행정부도 거의가 이런 식으로 일을 할 것이다. 이렇게 일을 했을 때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가.

연구원들은 과제 전체의 윤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가 맡은 분야만 연구했다. 과제 전체의 개념과 윤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연구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만 수행했다. 각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전체 과제 중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몰랐다.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각자는 전체에 대한 개념을 나름대로 짐작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답답해했다. 각 연구원들은 서로 모여 토의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각자는 각자만의 공간에서 전체의 과제의 성격과 모양에 대해 외롭게 상상했지만 세 사람이 상상한 것은 제각각이었다. A라는 연구원은 짐승의 머리 부분을 그려오라는 지시를 받았고, B라는 연구원은 짐승의 꼬리를 그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그 짐승이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인지에 대해서는 팀장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래서 A는 그 짐승이 코끼리일 것이라고 상상해서 코끼리의 머리를그려냈고, B는 그 짐승이 사자일 꺼라고 상상하면서 사자의 꼬리를 그려냈다.

과제 만료 기간이 끝나자 팀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코끼리의 머리와 사자의 꼬리를 합성했다. 딱딱한 글에는 이러한 그림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글을 자세히 읽으면 이런 그림이 보인다. 일하는 과정에서도 연구원들은 일하는 재미를 잃었다. 그리고 불안해했다. 이런 식으로 일한 결과 연구원과 팀장의 능력이 날이 갈수록 퇴화했다. 그 연구과제는 마지막 평가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의 일하는 방법은 달랐다. 여러 날 동안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브레인스톰(Brainstorm) 과정을 통하여 지혜를 짜냈다. 과제의 스펙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4명이 함께 과제의 성격을 토의하는데도 처음엔 막연하고 생각하는 바들이 제각각이었다. 아이디어들이 어설프고 황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황당하게 들리는 옆 동료의 말에서 각자는 힌트를 얻어가기 시작했다. 2주가 지나서야 모든 연구원들은 과제의 성격과 목표와 내용에 대해 또렷한 개념을 설정할 수 있었다.

  개념이 또렷해지자 각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기의 일을 분담해 갔다. 중간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시행착오도 없었으며 일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하는 일은 각자마다 달랐지만 이웃 동료들은 다른 동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래서 서로 토의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자주 모여 토의도 했다. 토의를 통해 다른 동료가 얻어 온 과실도 공유했고, 아이디어도 서로 보태 주었다. 최초 개념을 확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과정이 바로 건축물로 치면  설계도면이었다. 건축물에도 설계도면이 필요하듯이 일에도 설계도면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수시로 연구원 방에 들려 그들이 혹시 마음에 가지고 있을지 모를 애로를 챙겨주고 연구궤도를 일깨워 주고 토의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필자는 연구원들이 가져온 자료들을 가지고 보고서를 썼다. 그리고 필자가 쓴 보고서 초안들을 연구원들에게 복사해주고 검토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일하니까 연구원들은 일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명랑하게 일했다. 연구원과 팀장의 능력도 날로 향상됐다.

사실 필자는 40세에 연구소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국방부에서 공문을 작성하고 개인적으로 연애 편지 등을 쓴 것이 작문의 전부였을 만큼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논문이라야 모두 수학 기호들뿐이었다. 하지만 연구소 생활을 시작하면서 쓰기 시작한 작문이 오늘날의 전달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에게 과제를 나누어주고 연구원들에게 작문을 시킨 팀장들은 작문 훈련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자기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자네 이런 일 해봤나?", "예", "그럼 이 일 한번 해보겠나?". 임무는 이런 식으로 주어진다. 그는 전임자가 했던 일을 참고로 하여 일을 시작한다. 전임자가 했던 업무는 누가 만들었는가? 어느 개인이 만든 것이다. 중요한 사항이 누락되고 방법이 철저하게 고안되지 못한 것이다. 외국기업이 한국 업체에 하청을 줄 경우에는 명확한 체크리스트와 사향서가 주어진다. 같은 한국 제작업체가 하청 프로젝트를 받는 데에도 외국의 대기업에서 받는 경우와 한국의 대기업에서 받는 경우 설계도면과 사양(Spec)의 정확도는 현격히 다르다. 언어가 다른 외국기업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언어가 같은 한국기업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것이다.

싱가포르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외국 건설 업체와 한국 건설 업체가 나란히 쌍둥이 건물을 지었다. 한국인들은 수주 다음날부터 인부를 투입하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외국업체는 두 달이 가도 사람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일의 설계를 꼼꼼히 챙기지 않고 시작을 서둘렀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었지만, 외국인들은 계획을 꼼꼼히 챙기느라 늦게 시작했지만 시행착오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인보다 두 달이나 일찍 시공을 마쳤다. 한국인들은 인부를 놀리면서 일당을 주었지만 외국인들은 뒤늦게 인부를 투입하여 대기시간 없이 일사천리로 일했다. 한국기업은 공기와 원가 측면에서 외국기업을 당해낼 수 없었다. 시공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일의 설계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경기 악화로 인해 이제는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헌 건물을 개축해서 사용하려는 외국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헌 건물을 개축하는 리모델링(Renovation) 작업은 엄청난 경영능력과 기술적 판단을 요한다. 미국기업에서는 부사장 급의 간부가 스스로 랜턴을 들고 낡은 건물의 천장 속을 누비며 건물의 상태와 해야 할 일을 소형 녹음기에 메모를 했다가 밤에 정리한다. 부사장이 직접 관찰했기 때문에 다단계 결재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낡은 건물의 천정을 기어다니며 건물과 설비의 상태를 파악하는 이런 업무는 밑으로 밑으로 하달되어 결국은 대리 급의 미숙한 사원에게 떨어진다. 외국기업은 부사장 급의 관찰력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반면, 한국기업은 대리 급 사원의 관찰력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리로부터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전무, 사장에 이르기까지 의 결제를 거치면서 일은 한없이 지연된다. 결국 대리 급 이상의 상관들은 대리가 관찰한 내용을 벗어나지도 모사면서 시간만 끌고 있는 것이다.

           200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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