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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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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번 돈을 빼내 가는 사람들

우리나라 기업은 위에다 돈을 붓고 밑으로 빼내 가는 돈통이었다.
근로자들이 열심히 돈을 부어 놓으면 기업주,정치인,공무원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돈을 빼내갔다. 만약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돈을 정상적으로
처래해 왔다면 한국 기업들은 지금쯤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을 것이다.

1960년 12월호 “한은 조사월보”에 따르면 1945년에서 1959년 사이(15년)에 미국으로부터 제공받은 원조액은 26억9,000만 달러였다.

5.16혁명 전해인 1959년도의 원조액은 2억 달러였다. 이 중78%는 소비재 원조였고 22%는 생산재 원조였다. 미국이 제공한 원조 물자중에서 잉여 농산물과 석유 및 유연탄은 시장에 매각되어 세출 예산으로 사용됐다. 이는 '대충자금'이라고 불렸다.

미국 잉여 농산물의유입은 한국 농촌을 피폐시켰고 젊은이들의 이농현상을 초래하여 수백만명의 실업자를 유발시켰다. 그러나 당시의 부패 시스템은 수많은 부패 관료와 전후 상류계급을 양산시킴으로써 온 사회를 배금주의,불로 소득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밀수품의 범람에 의한 사치 풍조 등을 조장시켰다.

이때의 대기업은 거의가 국영 기업체이거나 정부 관리 기업이었다. 당시의 대기업은 모두 정치인의 하수인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독점적 입지를 활용하여 국민으로부터 폭리를 취했다. 이들은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매년 적자만 기록했다. 고관과 기업인이 상부상조하면서 회삿돈을 빼내 갔기 때문이였다. 34개의 정부 관리 기업이 연체시킨 은행 대출액은 3,700만 달러였으며, 태창기업 하나만도 550만 달러의 은행빚을 지고 있었다. 이는 기업의 총자산을 처분해도 갚을 수 없는 큰돈이었다. 정부가 직영하던 8대 기업이 유발시킨 적자는 1959년에 3,420만 달러였으며, 조선전업 하나가 유발시킨 적자액만 해도 1959년에 1,720만 달러였다.

그 당시 연간 미국에서 들여온 총원조액이 2억 달러였고, 국가 자립을 위해 소요되는 총예산 규모가 3억 달러 그리고 연간 무역 역조규모가 5,000만 달러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정부관리와 정치인에게 돈을 상납하면 업체는 은행에서 돈을 무한정 빌려 쓰는 것은 물론 여러가지 정책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고관에게 상납한 돈 이상으로 기업주는 기업으로부터 돈을 착복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부자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기업에는 주인이 없었다. 다만 위에다 돈을 붓고 밑으로 빼다 쓰는 ‘돈통’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기업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1950년대의 기업 시스템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근로자와 사원이 돈을 벌어 기업이라는 ‘돈통’ 에 부어 놓으면 정치인과 공무원이 정치 자금과 각종 준조세 형태로 빼내 갔고, 이를 빌미삼아 기업주와 경영인은 한술 더 떠서 빼내 갔다. 불과 몇달 전 모기업의 회장이 군인 대통령들에게 한 차례에 300억원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3조 원의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자기 자본보다 부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기업인들이 기업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이제 더 이상 근로자한테 용납받지 못할 것이다. 만일 정부와 기업주가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정상적으로 처리해왔다면, 그 동안 정부의 비호를 받아 국민한테 폭리를 취해 온 우리나라 대기업은 지금쯤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부상했을 것이다.

벌어들인 돈을 정상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첫째, 정치인이 기업에서 검은 돈을 가져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 기업주가 공식적인 주식 배당금 이외의 돈을 빼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경영인의 대부분은 아직도 기업주가 돈을 빼내 가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되묻는다. “ 내가 모험을 감수하고 생명을 걸고 이룩한 기업인데 어째서 그 돈을 내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없느냐? ” 고 항변한다.

현재의 기업회계시스템을 가지고 이러한 기업주의 의식을 견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신정부가 정치 자금과 각종 준조세를 중단한다 해도 그것은 오직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기분에 따라 ‘세무 감사’로 기업을 위협할 것이 아니라 업체의 회계 제도부터 하루 빨리 정상화 시켜야 한다.

지만원의 저서 “시스템을 통한 미래 경영”에서 발췌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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