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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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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무관심한 것도 패인의 하나!

한국인들은 선진국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다. 건물을 지어도 기록이 없고, 음식을 만들어도 기록이 없다. 그래서 고수들의 비법과 현장의 지혜가 기록으로 남지 않아 발전이 없다. 어제 선배가 겪었던 고생과 실수를 오늘 후배가 똑같이 반복한다. 사회에 자산이 없는 것이다. 마치 사회는 삭월세를 사는 사람들이 잠시 들렸다 가는 빈집과도 같다. 건설기업들이 이제까지 지은 건물은 수없이 많다. 그 건물의 특징, 규모, 고급수준  등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고 건축비가 얼마이냐를 구획 별로 정리해 놓으면 프로젝트의 개념만 가지고도 얼마짜리 공사라는 예측을 금방 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귀신같이 예측을 하는 이런 사람이 믿음직 할 것이다. 이 정도는 돼야 분석능력을 파는 CM사라 할 수 있지만 건설인들은 선진국 사람들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려 하지 않는다.

건축물의 화장실을 예로 들어보자. 건설기업이 지어놓는 모든 화장실 각각에 대해 소요된 마감재와 맨-아워를 기록해 놓으면 소위 WBS(Work Breakdown Structure)별 건축비 자료가 생기게 된다. WBS란 건물의 경우에는 건축물을 형성하는 공간유형의 분류로 화장실, 부엌, 복도, 사무실, 홀 등을 의미한다. 유도탄 같은 제품개발의 경우에는 큰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부 시스템으로 부스터시스템, 미사일 로켓모터, 유도장치, 유압시스템, 탄두시스템 들이다.

WBS별로 건설자료와 경험자료를 작성하라는 명령만 내리면 현장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고귀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지만 이런 것에 착안을 하는 경영자는 별로 없다. 조그만 5층 건물을 지어도 설계도면을 보고 일일이 소요자재를 나열해가면서 각 소재별로 수량과 단가를 곱하고 더해서 총 재료비를 계산해 내고 50층 건물을 지어도 그런 식으로 자재비를 계산한다. 자본주가 “이러이러한 건물을 지으려면 얼마나 들지요?” 하고 물으면 “도면이 나와서 계산을 해봐야 압니다. 요사이는 평당 얼마를 잡으시면 될 겁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 건물을 이러한 목적으로 리모델링을 하려 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겠습니까“하고 물어도 대답은 매 한가지다. 만일 패션과 수준이 각기 다른 부엌, 화장실, 로비 등 다양한 사진들이 있고 그에 대한 대략적인 가격 정보가 있으면 자본주에게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가격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공격적으로 축적하려면 현장 팀간의 경쟁을 시켜야 한다. 각 팀이 가져오는 자료와 지혜들을 가지고 컨테스트를 치르게 하면 자료의 양과 질이 발전하는 동시에 기록문화가 자연히 정착된다.

팀 단위의 시너지를 내게 하려면 팀 단위로 고과점수를 주어야 한다. 팀이 A급이면 그 팀 멤버 모두가 A급이어야 한다. 같은 팀 내에서 누구는 A급이고 누구는 C급이라는 식으로 개인별 고과점수를 매기면 누구나 팀을 떠나 팀장과 본부 인사계통에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면 개인들은 본부와 팀장 모두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절대로 팀-파워 즉 시너지를 낼 수 없다.

한국의 초 일류기업은 아직도 개인별 고과점수를 매기고 있으면서 공개조차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로비전과 반목이 생기면서 직장분위기가 살어름 판으로 경직화돼 간다. 경직된 문화에서는 창의력이 솟아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고과점수를 평가하면 모두가 개인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너지를 내자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딱한 일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개인평가제를 버리고 팀단위 평가제를 도입하라"며 설득하고 또 설득해도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힘을 합친다는 것은 두 가지에 대해서다. 착안사항에 대해 힘을 합치고, 일하는 방법에 대해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 2가지가 바로 "일의 설계"다. 토의를 하고 분석을 하려면 자연 기록을 해야 한다. 기록을 하지 않는 것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영진의 경영능력 때문인 것이다. 일을 설계하는 데에는 힘을 합치고,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일을 이해한 후에야 일을 나누어 해야 한다. 팀장을 누가 하는 게 좋으냐에 대한 것도 주요한 문제다. 지금은 직급이나 호봉이 낮더라도 건축직 기사가 팀장을 맡고 있다. 건설계의 건축직은 육군의 보병과 같다. 보병이 시대착오적으로 육군의 왕을 자처하듯이 건설계에서는 건축직이 왕을 자처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팀장은 팀원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 전체가 A급을 따내기 위해 팀의 창의력을 통솔하는 Team Leader여야 한다. 팀장은 무관의 리더(Uncrowned Leadership)를 지향해야 한다. 팀장이 권위를 세우면 팀원들의 마음이 떠난다. 마음만 떠나는 게 아니라 쿠데타가 일어난다. 팀장 한 사람 때문에 팀원 모두가 D급 판정을 받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팀장은 아이디어와 논리 및 토의 주재 능력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모임의 총무와 같은 자세로 일해야만 한다. 따라서 팀장은 전기직이나 설비직도 할 수 있고 직급이 낮은 사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에 근무하는 어떤 기사 중에 노트에 열심히 관찰내용을 정리하는 이가 있었다. 두꺼운 노트에 내용이 많이 들어 있지만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훌륭한 자료가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본부에는 설계도면을 검토하는 기술팀이 있다. 이들은 좁은 사무실에서 현장을 상상하면서 도면을 검토한다. 현장을 100%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견된 문제점과 개선사항은 이들에게 엄청난 정보다. 설계도면을 분석하는 사람들의 분석 능력은 이런 자료를 통해 향상될 수 있다. 지금처럼 현장 정보가 이들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면 이들의 분석능력은 날이 갈수록 퇴화한다. 기록문화가 없고 Feed Back 문화가 없는 것은 경영진의 지도력 때문이지 한국적 문화나 여건이나 때문이 아닌 것이다.

현장 정보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을 요한다. 각자의 노력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대가가 있어야 얻어진다. 일하는 재미도 대가 중의 하나다. 팀 단위 평가가 없으면 사람들은 절대 팀 단위로 일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생각한 것은 부정확하거나 부실하게 마련이다. 각자의 아이디어들은 팀 단위의 큰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불쏘시개일 뿐이다. 토의를 거쳐야 더 좋은 지식으로 승화되고 정제된다. 이러한 토의를 유발하려면 수십 개 현장 팀 별로 경쟁을 시켜야 한다. 일본 전역에 분임토의(QCC) 경영대회가 활성화돼 있고, 옛날 새마을 발표가 활성화 됐듯이 각 팀들은 팀의 명예를 걸고 보다 훌륭하고 보다 많은 지식을 내놓도록 격려돼야 한다. 이렇게 하면 기록문화만 발달하는 게 아니라 [전달력]이 발전하게 되고, 전달력은 컨설팅을 세일하는 데에나 팀 단위 토의를 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기업의 자산임과 동시에 개인의 자신인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 기업 간부들은 현장팀원들의 엄청난 창의력을 불만이라는 이불 속에 사장시킨 채 사운들을 서운하게 만들고 일할 맛을 잃도록 하고 있다.

"내가 언제 떨려날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초조하다", "임시로 붙어 있다가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처지인데 어찌 애사심이 생길 수 있으며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지으려고 노력할 마음이 생기겠느냐". "본부에 내가 올리는 리포트를 읽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 "사장은 사람 장사만 하고 품질에는 별 관심이 없다", "우리만 못살게 통제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대해서는 측정하는 사람이 없다", "얼마나 좋은 착안을 했는지,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를 냈는지를 따지는 사람 없다", "현장에 문제가 생기고 질문이 생겨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 "적당히 때우고 떠나라", "고객이 원하면 나중에야 어찌 됐건 무조건 다 해준다고 말하라", "다른 프로젝트들에 있는 레포트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레포트를 작성하라", "애로를 말하지 말라, 우는 소리로 비친다". "1인당 매출액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1인당 매출액은 현장 사람들이 결정하는 게 아닌데 어째서 그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느냐", "단장은 꼭 건축직이 맡아야 한다는 관행 때문에 후임 건축직이 선임 기계직, 선임 전기직을 평가한다. 기분 상한다".

                            200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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