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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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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 시스템

한국사회의 신용은 공인회계사의 신뢰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공인회계의 신뢰성이 타락하면 미국의 시장 경제라 해도 즉시 붕괴한다. 선진국 공인회계사는 기업을 감시하는 경찰관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재무제표에 이상이 있으면 공인회계사가 100%의 책임을 진다. 국민들은 공인회계사의 서명만 믿고 그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고, 은행은 그 재무제표를 믿고 대출을 결정한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 내놓은 재무제표 자료들은 전혀 믿을 수 없도록 조작돼 있다. 기업의 회계 책임자는 연말을 앞두고 최고경영자와 독대하여 재무제표에 반영할 당기 순이익을 통보 받는다. "회장님 올해 당기 순이익은 얼마로 할까요". 회장님의 재가를 받으면 연말 재고와 비용 등을 조작하여 외부 발표용 당기 순이익을 조작해낸다.

연말 정산을 곧이곧대로 하게되면 당기 순 손실이 기업에게 불리하게 부각된다. 그러면 금융기관의 대출이 차단되고 주가가 형편없이 추락한다. 그래서 한국적 상황하에서는 회계 조작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믿고들 있다. 정부는 이러한 망국적인 고정관념부터 바로 잡아줘야 한다.
우리는 금융감독원의 실사 능력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들 역시 기업의 모든 거래를 밀착 감시하지 못한다. 이미 기업에 의해 조작된 서류를 가지고 탁상에서 단기간 소나기 식으로 조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조사해 내는 대부분의 비리는 내부자의 제보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원초적인 한계를 감안하면서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자료를 살펴보자.
1997년 기아자동차는 3조4천억 원의 적자를 내고도 3천8백억 원의 적자만 보았다는 내용의 재무제표를 발표했다고 한다. 3조1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치 차이를 가공해낸 것이다. 같은 기간에 아시아 자동차는 1조9,600억원의 적자를 내고도 재무제표에는 불과 4천억 원의 적자만 본 것으로 조작해 냈다고 한다. 한보철강은 840억 원의 적자를 172억 원으로, 대우통신은 203억 원의 적자를 77억 원의 흑자로, 해태제과는 598억 원의 적자를 104억 원의 흑자로 가공해 내놓았다 한다.

1999년12월9일 일간지들은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결과 해태전자를 포함한 21개 계열사들이 적자를 내고서도 흑자를 낸 것으로 회계 조작을 했기 때문에 회계실무자들과 회계법인들에게 징계처분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해태전자의 경우 96년에는 469억 원의 적자를 내고서도 59억5천만 원의 흑자를 본 것으로 재무제표를 조작했고, 97년에는 3,300억 원의 적자를 내고서도 1,271억 원의 적자만 보았다고 축소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 차입금 2,045억 원, 이자334억 원, 판매관리비 138억 원 등을 고의로 장부에서 누락시켰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금감원이 발표한 수치들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모든 기업은 재무제표를 가짜로 만들어내고 있고, 국가에는 이러한 조작을 예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이다.
30대 그룹은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2,259억 원,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2,838억 원의 비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에는 이러한 흔적이 전혀 없다.

가짜 재무제표는 기업을 위해서나 투자자, 채권자 그리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시정 돼야 한다. 어쩌다 금융감독원이 장님 문고리 잡는 식으로 그것도 제보에 의해 몇몇 기업을 잡아낼 것이 아니라 선진국 들 처럼 시스템 적으로 가짜 회계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금융감독원 몇 사람, 감사원 몇 사람이 그 많은 부정 사례를 적발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어리석은 발상이다.
재무제표 항목에 관한 한, "기업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기업은 "완전공개원칙"(full disclosure principle)의 원칙에 따라 공인회계사에게 모든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만일 이에 저항하는 기업이 있으면 공인회계법인체로부터 "감사불가" 판정을 받게된다. 그런 기업은 그날로 끝장이다.
미국에서 회계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시스템공학 분야에서 개발한 수리공학 과정들의 상당 부분을 이수해야 한다. 수학의 깊이가 바로 분석 능력이다. 그래서 수리공학 기법을 훈련받지 못하면 공인회계 법인체에서 고급 간부직으로 승진하기 어렵다. 지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이 분야를 외면한 채 적당히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개 공인회계 법인체는 수백 개 고객기업(client)에 대한 재무제표 감사(audit)를 의뢰 받는다. 모든 고객들이 12월 31일부로 재무제표를 발표한다. 한국식으로라면 12월말에 공인회계 법인체의 업무가 폭주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한. 미간에 대조적이다. 한국은 1개 업체에 1-3명의 공인회계사를 배당한다. 그러나 미국은 1개 팀이 수십 개의 기업을 동시에 감사한다. 여기에 시스템 기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기업에 마다 1-3명의 공인회계사를 배치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럼 미국은 수십 명으로 구성된 1개 팀이 어떻게 해서 수십-수백 개의 기업을 동시에 감사해서 12월 31일부로 발표되는 모든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바로 그것이 시스템 기법이다. 이는 상식인 들에겐 요술이다.

일단 회계법인체가 기업에 대한 감사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고객기업의 회계 시스템을 평가하는 작업이다.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맥을 짚는다. 그 맥에서 산출되는 모든 통계자료를 현장에 상주하면서 수집한다. 이 자료를 가지고 회계시스템의 신뢰성을 평가한다.
그들은 이를 "내부통제 시스템의 평가작업"(preliminary evaluation of internal control systems) 단계라 한다. 이러한 신뢰성 평가는 재무제표 항목 전체에 대해 이뤄진다. 가장 어려운 분야는 제조 과정에 있는 재공품(work in process)에 대한 자산 평가 분야다. 이는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 기술의 문제다. 확률 모델과 시뮬레이션 기법들이 화려하게 등장된다. 회계 시스템의 신뢰성이 숫자로 계산되면 여기에 년간 예산을 투영한다. 그러면 비록 년말이 아니더라도 재무제표의 정확성이 평가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인회계사의 회계지식은 빙산의 일각을 기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회계법인체들은 미국의 회계법인체들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한국의 회계법인체는 아직은 "부기사"들의 집합체이지 시스템 분석가들의 집합체는 아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는 비록 한국에서 회계법인체의 권한을 미국 수준으로 올려 준다해도 기업의 투명성을 보증할 수도 없고, 그래서 국제적 신인도도 얻을 수 없다.

한국기업들이 신뢰성 있는 기업회계 시스템을 운용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 전체가 국제시장에서 불신을 받게 된다. 덤핑제소를 받게 돼도 이를 증명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외국인들은 회계자료 자체보다는 회계 시스템의 신뢰성을 평가한다.
이는 마치 국제품질 표준(ISO)과 같은 것이다. 제품의 품질을 완제품 단계에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제품의 하나 하나를 검사하지 않고 기업의 품질 시스템과 품질 문화를 평가하고 있다. 품질은 곧 시스템과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평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ISO 9000 시리즈이다.

회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회계자료는 회계시스템의 산물이다. 기업이 년말에 내놓는 자료를 보고 그 자료의 신뢰성을 평가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공인회계사들은 연말에 기업이 내놓은 재무제표를 2-3명이서 3-4일만에 뚝딱 해치운다. 한국 공인회계사들은 회계 시스템을 평가하지 않는다. 기업이 내놓는 가짜 자료들이 형식적으로 잘 구성이 돼 있으며 요소간 계산이 맞아떨어지느냐 만 검사하고 사인을 한다.
외국의 공인회계법인체는 연중 내내 기업에 나가 각종 통계기법을 가지고 회계시스템 자체의 신뢰성을 평가한다. 회계 시스템에 신뢰성이 있으면 일부의 거래만 체크하고, 신뢰성이 낮으면 년간 이뤄지는 모든 거래를 추적한다. 신뢰성이 낮은 기업은 수임료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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