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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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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도발시점은 언제나 절묘하다

지난 (2003년)2월 20일(오전 10시쯤) 북한의 금강산에서는 6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이번에도 그 절묘한 시점에 정확히 맞추어 북한의 (미그 19기로 추정되는)전투기가 서해상공에 설정된 NNL침범이 발생했다. 해상침범이 아닌 상공에서의 침범은 20년만의 사건으로 매우 이례적인 침범이기도 하지만 남북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시점을 택했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투기 침범은 해상 침범과 달리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우리 측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더 예민하게 느껴진 것은 한쪽에서는 화해무드에 협력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도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북한의 속셈을 아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해 해상을 통해 잦은 NNL침범이 있었기에 안보불감증도 원인이지만, 남북한간의 이산가족 상봉 같은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침범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야말로 NNL침범의 진정한 노름수라고 할 수 있다. DJ정부는 정상회담의 성과를 자랑하기도 전에 서해남침이 잇달아 속출하였기에 DJ정부측에서도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솔직히 DJ의 은밀한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라도 화해무드를 지켜 줄 필요가 있는 김정일의 입장에서 왜 이런 사건을 구태여 벌였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의구심이 확산될수록 김정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말썽을 부리는 사람에게 말썽을 부리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돈을 계속 받기 위해서라도 말썽을 계속 부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되게 된다. 말썽을 부리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수입원을 포기하는 것이나 같기 때문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말썽쟁이는 더 이상 말썽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말썽쟁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도 함께 사라진다. 말썽을 부리는 사람에게는 말썽을 부리는 것 자체가 수입원을 확보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약속은 더 이상 지켜야 할 미덕도 아니고, 지켜야 할 이유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끊임없는 대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전시효과로 자랑하고 싶어하는 화해무드 속에는 도발을 부추기는 유혹들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김정일은 그것을 노렸고 또 정확히 꽤뚫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했으므로 한쪽에서는 돈을 챙기는 조건으로(힘 안들이고도 해 줄 수 있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화해무드 조성에 잠시 협조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여전히 말썽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정일로써는 예전보다 말썽을 더 많이 부려도 오히려 의심을 덜 받게 되는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 이름도 찬란한 햇볕정책으로 인해 남한 내부의 국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1년 북한상선이 NNL을 침범했을 때, 북한당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오히려 DJ정권이 앞장서서 변호하기에 바빴다. 처음에는 남한이 햇볕정책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 그 의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북한을 변호했다. 그러니 햇볕정책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으며, 그럴려면 NNL침범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대응해서는 곤란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몰고 갔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생각해도 너무 황당한 논리라고 생각했던지 나중에는 '북한에는 기름이 부족하여 기름을 절약하기 위해 둘러가지 않고 직선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악의 없는 단순한 침범'이니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눈물겨운 변호가 아닐 수 없다.

또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창 벌어지던)2002년에 발생한 서해교전 때는, 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 사건의 실체가 갑자기 사라지고 분쟁의 원인을 찾아야 해결된다는 '협상'의 문제로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다르게 몰고 갔다. 이처럼 당시 DJ정권의 북한변호는 안타까울 정도로 처절했고 또 필사적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은폐시켰지만)막대한 뒷돈까지 바쳐가며 성사시킨 정상회담이고 그 결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의 성과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화해무드가 조성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북한은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았으니 답답한 쪽은 김정일이가 아니라 뒷돈을 갖다바친 DJ측이었다. 그러니 도발은 김정일의 몫이고, 뒤치다꺼리는 항상 DJ의 몫이었다. 뒷돈을 갖다바친 국가지도자의 비굴한 약점 하나를 덮기 위해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던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면 햇볕정책의 허구와 모순이 곧바로 간파되기 때문에 그 결과로 파생되는 북한의 도발도 함께 예견할 수 있지만 (몰지각하고도 감상에 빠진)햇볕정책의 환상에 빠지면 그러한 관계구도를 명확히 인식하기는 어렵게 된다. 한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라는 사람이 김정일 따위의 인간을 만나는 일에, 일생의 영광으로 알고 국가재정을 동원하면서까지 만나려고 했고, 또 기어이 돈을 바치고 만났으니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제 DJ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햇볕정책이란 이름으로 5년 동안 국고를 탕진하고 국론을 분열시킨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국가발전과 남북화해에 기여했다고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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