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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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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5 전야의 3대의문

6·25 남침 3일만의 서울 함락은
親共 좌익 내통 자들 背信 때문!!
                                                                         이 한수    < 언론인 >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스스로 밝히고 나서는 데도 겁내는 사람 하나 없는 이상한 화평 무드 속에서 한국동란 53주년을 맞는다.  스탈린과 毛 澤東이 기획하고 金 日成이 저지른 한국동란은 비록 53년의 세월이 흘러 체험세대는 대부분 가버렸지만 여전히 한민족에게는 분단의 굴레를 강요하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민족의 짐으로 남아 있다.

南侵개시 3일만 서울함락 수수께끼  

자기의 선대들이 겪고 절치 부심 했던 전쟁의 아픈 상처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후계세대들은 자신들만은 현명하여 조기 평화통일을 이룰 듯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마치 재산 상속하듯이 정권을 이어 받은 김정일은 1950년 6월 25일 남침했던 자기 아버지의 방침도 그대로 물려받아 남한의 적화가 아닌 통일은 통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계의 여론이야 어떻든 자기들의 백성이야 굶어죽던 말던 핵 폭탄까지 만들어 남한의 적화를 노리고 있으니까 민족의 통일을 요원하게 하는 것이다.  
전쟁이란 음모와 계책들이 난무하는 무대이다. 한국동란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전쟁에 임하는 나라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번의 예고된 전쟁이었던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준 미국과 이라크를 비교 할 때 들어 난 차이 같은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나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대한민국이나 나라로서는 탄생한지 3년이 채 안된 나라, 전쟁을 앞두고 혹은 전쟁 중에 쓴 계략이나 음모의 수준도 지금 보면 유치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북한은 당시 세계 공산주의의 종주국이고 국제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이끌던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에서 통일전선 전략에 성공하여 국민당을 대만으로 내몰고 중국대륙을 차지한 毛 澤東의 적극적인 후원과 기획아래 전쟁을 시작한 것이므로 대한민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수준의 계략과 술수를 썼다. 규명되지 않은 엄청난 조국에 대한 배반이 대한민국 안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  적의 공격 앞에 국군의 대대적인 붕괴가 일어나 3일만에 수도가 함락된 것이다. 전쟁은 그 후 3년 가까이 계속되어 이 같은 의혹을 받은 사람들은 여럿이였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끝내 파헤쳐지지  않은 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의혹의 수수께끼 풀리지 않은 채 53년

오늘 대한민국에는 좌파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 중에는 북한의 세습 독재자인 김 정일을 추종하는 자들도 많기 때문에 6.25 당시보다 더 위태한 상황이어서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때보다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 때의 사정을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에 있어 전쟁 발발 3일 만에 국군의 방어선은 완전히 붕괴되어 서울이 함락되게 된 이유로 당시의 참전 군인들은 처음 맞닥뜨린 탱크의 탓과 북한군의 수적인 우세를 든다. 그러나 공격하는 측이 방어하는 측보다 3배의 우세한 병력과 장비를 가져야 한다는 전술의 원리를 보면 당시 북한군은 육해공 합쳐 19만 8천 명 정도, 국군은 10만 5천명 선으로 북의 병력이 3배가되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가 있는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당시의 군사력 비교표를 보면 대한민국이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병력이나 포의 수는 말할 것도 없고 포의 구경에서도 형편없는 열세이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탱크와 자주 포가 각각 242대 172문이나 있었으니 우리 국군이 도저히 맞설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첫날 전 전선에 걸쳐 방어선이 무너지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 당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공격군은 방어군의 3배 이상이어야 한다는 원리에도 맞지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교묘한 공작과 이에 따라 움직인 우리 측 인사들의 배신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국군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리도 없었고 개전(開戰) 3일만의 수도 함락이라는 비운도 겪지 않고 서울 북방에서 며칠 정도의 전투로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북한 인민군은 바로 전해에 끝난 중공군의 대륙석권 전투에 참가했던 한국인 병사들이 주축이 되여 편성되었기 때문에 실전 경험도 있었고 가장 긴요한 사단단위 작전을 실전에서 익힌 막강한 병력이나 국군은 대대단위의 연습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는 약점은 있다.

南侵 전야 대한민국의 3대 利敵행위

그래도 우리 내부에서 의식했었는지 혹은 모르고 했는지 혹은 그야말로 간첩이 있어서 저지른 것인지 국군은 초기에 허물어지도록 조작이 되었고 그것은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단지 3일만의 수도 함락이라는 것 잡을 수가 없는 혼란 속 에 그 내막을 끝까지 추구하지 못한 것뿐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괴뢰군이 물밀 듯이 쳐들어오기 전 3가지 이적행위가 일어난다. 그 첫째가 전쟁 발발 보름전인 1950년 6월 10일에 단행된 육군의 사단장 급을 포함한 주요지휘관의 인사이동이다. 뒷날 확인된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이미 인민군의 제6 제3 제2사단은 38선에 배치되어 공격개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를 맞서야 할 국군의 지휘관은 전부가 바뀐 것이다.
이 인민군 3개 사단은 중공군에서 국민당 군과 싸워 이긴 한국인 병사를 중심으로, 실전 경험을 가진 부대이며 스탈린 金 日成 毛 澤東의 남침합의에 의해 인민군에 넘겨진 부대이다. 당시의 38선 사정은 인민군이 국군의 방어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매일처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었기는 하나 오늘날처럼 철책 선이 쳐져 있던 것도 아니고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곳은 경계가 허술하여 넘어 다닐 수는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 국군의 첩보 활동도 활발하여 이들 사단의 배치까지는 확인했는지는 몰라도 남침의 징후에 관한 정보보고가 끊임없이 육본에 올라가 던 때인데 지휘관 급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데가 있다.
다만 이것은  미스터리 수준일 수가 있다. 판단을 잘못한 것일 수는 있어도 적을 이롭게 할 의도가 있었겠느냐고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일련의 이적행위들과 이어 본다면 문제가 된다. 여하튼 국군이 하도 심각하게 붕괴하여 수도를 빼앗기고 정처 없이 도망하는 정부는 육군 참모총장을 바꾸기로 하는데 후임이 될 정 일권 준장은 이 지휘관의 인사이동결과 유학 명령을 받고 미국으로 가는 도중에 소환되어 급거 귀국 취임하게 된다.

그 첫째가 15일전 단행된 지휘관 이동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상한 점은 전쟁 발발 당일인 6월25일은 마침 일요일 이여서 국지전을 벌이고 있는 부대가 아닌 한 군 장병들은 외박을 나가고 휴가를 떠나 소속장병의 반밖에 영내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이 침공할 당시 막아야 할 병력이 반밖에 안됐다는 말이다. 당시 국군은 5월 1일부터 메이데이 특별 경계령 과 5.30총선거 (2대 국회의원 선거)경계령으로 외출외박과 휴가가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전쟁발발 이틀 전인 6월 23일 해제된 것이다. 모내기에 바쁜 농촌의 일손을 돕는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쟁발발과 함께 전국적으로 휴가 및 외출 장병을 찾는 가두방송이 곳곳에서 있었고 방송국도 이에 맞추어 장병들의 귀대를 종용하는 방송이 하루 종일 있었던 것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왜 그랬을 가. 계속되어 오던 특별 경계령이 왜 전쟁발발 이틀 전에 해제 되였을까. 단지 우연의 일치일가. 병력이 제대로 영내에 있다가 불의의 기습을 받았어도 며칠 버티기가 어려웠을 터인데 외출 외박 나가고 남은 반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적을 저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북한군의 침공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전선은 뚫리고 국군은 붕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申 性模 국방부장관은 “국군이 반격을 하고 있다‘고 진상을 호도 한다. 그는 한반도에서의 전쟁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에 대해  ”전쟁이 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 쳐서 민심을 현혹한 인물이다.
이 말과 정부가 대전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도 ”수도를 사수하자“는 李 承晩 대통령의 녹음방송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을 서울에 남게 하여 적에게 납치되거나 살해되어 대한민국의 전쟁수행능력이 줄었는가. 이 큰소리도 결과적으로는 커다란 이적 행위였다고 아니 할 수가 없다.

6·25 당일 장병 외출 외박도 이해 안 돼

다음의 미스터리는 6월 24일 저녁육군 본부에서 있었던  육군 장교클럽 준공 파티이다. 당시 전쟁발발 제1보를 보고 받은 장성과 고급장교들 가운데는 전날 파티에서 마신 술이 깨지 않아 보고가 무엇을 뜻하는 지를 선 듯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한다. 그 가운데 국방장관은 잠이 들면 절대로 깨우지 말라는 지시를 측근들에게 해놓아 전쟁이 발발했다는 일보를 보고조차 못하고 깨기만 기다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있다. 육군본부의 파티는 당시 젊은 장교들(장성급까지도 20대나 30대 초반)의 성향으로 보아 엄청난 술판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취해가고 있을 때 38선에 배치된 인민군 주력부대들은 공격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계(射界)청소를 맡은 부대나 도하를 맡은 인민군의 부대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전쟁을 지휘할 장교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가 없는 것 같다.비상 경계의 해제, 장병의 외출 및 휴가허가와 함께 전쟁 발발 직전까지 계속된 육본의 술판에 대해 당시 한 초급장교였던 어떤 퇴역장성은 “군 내부에 있는 좌익분자들의 술책이었다”고 자신의 회고록에 적고 있다.
위의 3가지가 3일만의 수도함락이라는 비극적인 결과의 중요 원인 이였다면 국군이 재편성이 어려우리만큼 심대한 타격을 받은 이유는 패퇴하는 전선에 병력의 축차적인 투입한데 있다. 병영에 있는 장병이 반도 안 되고 처음 대하는 전차에 대한 대항수단도 없었던 초전(初戰) 3일간 국군은 후방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사단이나 연대를 뚫어진 전선에 차례로 투입한다. 그래서 병력은 소진되고 부대는 부서지고 만다. 일반적인 전쟁이론에 따르면 전선이 무너지면 훨씬 뒤쪽에다 방어전선을 설정하고 그곳에 병력을 집결시켜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인데 이러한 계획 없이 병력을 축차적으로 투입하여 병력을 소진 한 것이다.

“軍 내부에 적과 내통한 지휘관 있었다”

서울이 함락된 뒤에야 통합전선을 만들고 한강을 저지선으로 방어전을 펼 계획을 세우고 노장인 김홍일 장군을 사령관으로 임명하는데 이 때는 이미 늦어 병력은 산산이 흩어지고 장비는 모두 잃어 전투다운 전투를 벌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투지뿐이었다. 당시 참전했던 군인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때 북한군이 3일정도 서울에 머무른 것은 수수께끼라고도 하고 천우신조의 기적이라고도 하고 있다. 바로 한강을 도하했으면 도저히 막지 못했을 것인데 왜 서울에서 머뭇거렸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 도하장비가 모자랐는지 뒷날 북한에서 朴 憲永일당이 숙청된 이유인 남한에서의 민중봉기를 기다렸을 지는 모르지만 이 같은 인민군의 머뭇거림의 덕을 본 것이다. 그래서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도 얻었고 낙동강에서나마 인민군을 저지하는 최후의 방어전을 벌일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수도가 함락되려는 위기 앞이니까 병력의 축차적인 투입이라는 것도 생각에 따라서는 있을 수가 있겠고 서울의 함락은 대한민국의 종언으로 볼 수가 있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가 있다. 그러나 동부전선의 예를 보면 춘천에 주둔했던 김 종오 사단의 경우는 적의 침략을 착실히 저지하다가 (물론 적의 주 공격로가 서울로 지향 되여 있었으니까 가능한 일 이였겠지만) 작전상의 후퇴를 훌륭히 하여 병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뒤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여기서 서울 북방으로의 병력 축차투입은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면 할 수가 없겠지만 누군가가 의도 한일이라면 그것은 정말 조국에 대한 커다란 배신이 된다. 당시에 각료 급이었고 뒷날엔 국가의 수장까지 지낸 어떤 정치인은 한국동란 발발 당시의 군을 지휘할 자리에 있었던 어떤 인물을 북과 내통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일반적으로 한가지 정도의 사건은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3가지 혹은 4가지까지 겹쳐진다면 그것은 벌써 우연의 일치일수가 없고 누군가의 장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동란 발발을 앞두고 있었던 위의 몇 가지 사례들을 조국에 대한 배신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의 서울엔 그런 內通者 없을까?

우리 나라의 방어태세를 사실상 허물어 버린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후 우리는 아무런 대비 없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위험한 정세를 맞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아래서 확실히 보호받을 수 있다는 보장조차 애매한 상태이고 국방을 걱정해야 할 자리에 있는 인사들조차 “북한이 같은 동족에게 핵을 쓸 리가 없다. 그것은 미국과의 협상용 일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한 반도에서 핵을 쓰지 않기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핵은 전쟁 억지용일 뿐 공격용 무기는 아니라고 하는 이론이 있지만 그것은 핵을 함께 가지고 대결할 때의 말이지 한 쪽만 핵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둘이 다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포의 균형이나마 핵전쟁의 위협은 없다.
그러나 남과 북의 경우에는 북만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민족의 재산이니 운운하는 어리석은 이야기들이 나올 만큼 우리는 대비태세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남북의 대화가 가냘프게나마 진행되고 있는 기간에는 그런 대로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남북은 어느 때 긴장관계로 돌아설지 모르는데 우리는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의 대북 관계 부서조차 긴장을 보이지 않는다. 휴일이면 전국의 교통망에 심대한 체증을 가져오는  행락의 물결, 기간산업을 마비시키는 파업, 북에 대한 동정과 동맹을 훼손시키는 제2세 교육, 어느 것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방어망이 한번에 붕괴될지 모르는 위험한 요인들이다.
한국동란 당시의 몇 가지 배신행위 보다 더 큰 위험요소인 것이다. 한국동란 당시에는 싸우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북이 침략해오는 데도 같은 민족이니 무슨 일이 있겠는가고 맞서지 않을지도 모르는 오늘의 사정은  그것으로 대한민국은 종언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이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가 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므로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대항 해보려고 해도 2천만대가 넘는 승용차가 길을 메워 이미 교통망이 마비, 병력이나 장비를 배치할 수가 없다면 그것도 큰일이다. 더구나 북한이 핵을 가지고 기존의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위협을 가해 온다면 무엇으로 맞설 것인지 미리 생각해 놓았는지도 걱정이다. 또 3자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과 북한이 무엇인가 합의하여 대한민국의 앞날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해도 정부 스스로가 참가 안 해도 좋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으니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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