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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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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共 팔로군 토벌이 친일이라는 억지
中共 팔로군 토벌이 친일이라는 억지
일본 관동군은 만주 군과 별개, 6.25 남침 인민군주력이 팔로군 출신

오늘 ‘첫번째인생’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독자로부터 <민족문제연구소 폭로에 문제는 없는가?>를 잘 읽었다며, “칼럼에 대한 의견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먼저, 이메일이란 엄밀한 의미로 사신(私信)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번의 경우는 ‘독자의견’이라고 불 수 있음으로 사사로이 이메일로 답하기 보다는 위 독자와 유사한 생각을 가진 분들을 위해서 칼럼 형식을 빌어 공개적으로 나름의 답을 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그 독자가 보낸 메일의 요지는 <당시 농민의 80%는 소작농이었으며 이들은 친일 지주에게 소작료를 내고 총독부에 세금도 냈으나 식민지 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로 볼 수는 없다. >고 전제를 하면서 마찬가지로 <대부분 일본인 소유의 공장에서 일을 한 노동자도 친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순히 통치체제에 순응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적극적" 으로 식민통치에 협력한 사람을 친일파라고 부릅니다.”라고 그가 규정한 친일파에 대한 개념을 소개 하였다.

그는 “박정희가 친일파인 이유는 ‘만주 관동군’의 장교였기 때문입니다. ‘장교’라는 직위가 어떠한 위치인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관동군이 어떠한 부대였는지도 아실 것입니다.”라고 <만주관동군의 장교>가 친일의 기준이었다고 주장 하였다.

먼저, <박정희=만주관동군 장교>이었다는 부분에 대한  저의 견해입니다.

우선 손쉽게 ‘네이버 백과사전’에 기술된 관동군(關東軍)에 대한 설명을 요약한다면, 관동군은 1905년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 조차지인 요동반도를 인수하여 ‘關東州’를 설치하고 그 곳에 관동도독부를 두면서 관동주와 남만주철도 경비 명목으로 군대를 주둔시킨 것을 시초로 1919년 일본육군에 倭王 직속의 관동군 사령부를 설치한데서 비롯되었다.

일본 관동군은 일제의 대륙진출 교두보 역할과 함께 대륙침공의 선봉에 서서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만주국 건설을 주도 했으며, 병력도 1933년 10만에서 1942년에는 대소전과 대중국전에 대비하여 70만까지 증강 됐다가 1943년 태평양전쟁에서 전세가 악화되자 ‘주력’을 남방으로 빼 돌려 현저하게 약화됐다가 1945년 무조건 항복 후 소련군에게 무장해제를 당했다.

이상이 <일본 관동군>에 대한 설명이다. 만주국 관동군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일본 관동군이 아니라 만주 군에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은 것이다.

관동군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한 내용이 필요하다면 후지와라 아끼라(藤原彰) 저, “日本軍事史(시사일본어사, 1994)” 같은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다음. 만주군 소위(중위) 복무가 친일의 근거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혹시 육사 또는 ROTC나 학사장교로 임관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소위(중위)계급이 군내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만 알아보아도 만주군 박정희 소위(중위)가 무슨 친일을 할 수 있었느냐 에 대한 답은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군의 기본병과인 보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소위(중위) 계급을 가진 장교가 군내에서 담당하는 임무는 30여명 내외의 부하를 거느리는 소대장이 고작이며 소대는 중대의 일부로서 대대 급 이상 작전에 참가 하는 것 외에 아무리 친일을 하려도 친일을 할 방법이 없는 것이며, 포병 공병 통신 등 여타 병과 장교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박정희 만주군 소위(중위)가 맡은 직책은, 團(대대?) 군기(軍旗)관리장교라 했는바, 이는 몇 백여 명 남짓한 소부대에서 박정희 소위가 친일을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친일을 할 방법이 없었을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더욱 웃기는 것은 11월 5일자 한 인터넷 신문 기사에 의하면,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박정희의 친일에 대하여 “팔로군도 항일부대이며 중국 소련에 대한 적대행위는 당시로서는 연합군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며,“당시 위관급 장교는 지금과 달리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막힌 주장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들이 댄 ‘八路軍’이란,  1927년 남창(南昌)폭동 당시 ‘紅軍’ 즉 중공군으로서 1937년 국공합작 당시 중공군을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칭 한데서 유래 한 것이며, 모택동은 팔로군에게 중일전쟁을 ‘공산당 확장의 기회’로 삼아 紅軍 역량의 70%는 공산당 확장, 20%는 국민당과 타협, 10%는 항일전에 두라고 하여 항일전은 시늉만 낸 공산혁명군 이었다.

중국대륙을 석권한 모택동은 1949년 7월 팔로군소속 ‘조선인부대’를 김일성에게 주어 ‘인민군대’를 대폭 증강시켜 1950년 6월 25일 남침의 주력을 삼게 했다.

남침선봉에 섰던 북괴군 제4사단의 1개연대가 팔로군 출신이었으며, 제5사단은 팔로군 164사단, 제6사단은 팔로군 166사단, 제7사단은 팔로군 제139, 제140, 제156사단에 편성 됐던 조선인 병사들로 재창설 된 것이며 제10 및 13사단 역시 팔로군 출신 병사가 주축을 이뤘다.    

이로서 민족문제연구소가 ‘군사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기보다는 6.25남침의 인민군대의 주축이 된 팔로군 토벌에 참여 한 것을  친일로 단정한 것은 사소한 오류나 실수가 아니라 간교하고도 악의적인 ‘날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역사적 범죄행위가 아닌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처럼 비열하고 옹색한 궤변을 늘어놓기보다는 차라리 “6.25남침 인민군대의 주축을 이룬 팔로군을 토벌하여 김일성의 무력적화통일을 방해 한 죄를 묻는 대신에 친일명단에 끼워 넣었다”라고 하는 것이 보다 솔직한 주장이 아닐까 한다.

또한 “당시 장교는 지금과 달리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 부분은 차라리 코미디이기를 바랄 뿐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유지를 받든다는 林鍾國 선생의 저서 “일제하의 사상탄압(1985.평화출판사)”에 의하면, 일제 총독부가 이미 1938년 5월 전시동원법을 시행하여, 군국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군이 득세한 것은 사실이나 소위(중위)가 ‘절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3류 만화에서나 있음직한 “웃기는 이야기”에 불과 하다.

해방 후 정부수립전인 1947년 7월 2일 제정 된 “民族反逆. 附日. 奸商輩에 대한 條例”제 3조 별항에는 주임관(奏任官=3급) 이상의 관리가 되었던 자, 군무부분의 판임관(判任官=5급) 이상 및 고등계(高等係)에 재직했던 자 중 죄적(罪迹)이 현저한 자를 처벌토록 하고 있으나 지원병, 징병, 학병출신의 해당자는 제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軍의 경우 최소 대위 이상 자 중 罪迹이 현저한자를 선별 처벌토록 한 것으로 하급 장교는 군의 명령복종 체계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명시한 것이다.

정부 수립 후 1948년 9월 22일 제정 된 ‘반민특위법’ 에서도 軍 관련 처벌대상을 제4조 6항에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로 한정하면서 제5조에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직에 있던 자는 3급 이상 고등관과 함께 공소시효 3년이 경과되기 전에는 공직 임명을 제한하고 있다.  

당초 반민특위법을 제정한 국회가 60~70년이 지난 오늘날 임헌영의 민족문제연구소 만큼 ‘일제학정과 친일부역의 성격규정이나 내용에 대한’ 진상을 몰라서  軍 중 소위는 아예 대상에서조차 제외 시켰으며 대신에 헌병과 고등계 형사 등을 대상으로 삼았겠는가?

이는 박정희 만군 소위(중위)는 아예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신기남의 부친이나 이미경의 부친, 김희선의 부친 등이 친일부역자 명단에 포함돼야 함을 뜻하며, 누런 완장을 차고 방공훈련을 독려하고 1943년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학병참여를 독려’하여 식민지 조선의 청년을 일제침략의 총알받이로 내몬 여운형이 악질친일분자라는 의미이다.

식민지 학정을 몸소 겪은 1947년 당시의 선배들과 1948년 당시 정부보다 더 엄격하게(?) 유독 군대 계급만 대위에서 소위로 낮춰서 박정희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은 북의 선동에 놀아 나 “박정희 다시 죽이기”를 노린 불순한 의도로 인한 파렴치가 아닌지 모르겠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의 증거로 내세우는 소위 혈서지원문제만 해도 취업지망생이  취업면접 시 면접 기준에 맞는 말과 면접관 취향에 영합하는 모범답안을 냈다고 해서 이를 그 사람의 인생관 내지 철학과  결부시키는 것은 억지이다.

예컨대, 유명한 불란서 외인부대 입대 지원자가 입대선발을 위해서“프랑스 만세”를 부르고 전투에 참가하여 명령에 따라서 알제리 독립군을 공격했다고 해서‘親佛人名’으로 낙인찍는 것과 다름없는 해프닝이 아닌가.    
  
ps) 이상이 “첫번재인생” 닉네임을 가진 독자가 “제가 틀린 말 했다면 답장 바랍니다. 빨갱이니 어쩌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정중히 거부하겠습니다.”라고 한 항의성 메일에 대한 나름대로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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