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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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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6, 그 살육의 현장



                                                                   10.26, 그 살육의 현장  


1979년 5월 3일, 김영삼이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당선된 이후 정국은 걷잡을 새 없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도시선교회, 재야세력이 연합여 연일 군사정권 타도와 유신타도를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김영삼, 김대중이 이런 재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에 분노한 집권당 세력이 반격을 가하면서 시국은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되었다. 9월에는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및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고, 10월 4일에는 김영삼이 의원직을 박탈당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일탈하여 반국가적인 언동을 함으로써 국회의 위신과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0월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했고, 이에 대해 공화당 및 유정회가 ‘사퇴서 선별수리론’으로 물타기를 시도했다. 이로써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이 반발했다. 10월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0월 16일 학생들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독제타도를 외치는 반정부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 경찰서, 도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는 시위가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확대됐다. 소위 '부마사태'였다.

이에 정부는 18일 부산 지역에 비상명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으며,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이로써 시위는 일단 진정되었다.

이렇게 어지럽던 계절 속의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 4시에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 18;00시, 각하께서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을 하실 것이니 준비를 해주시오. 참석인원은 김계원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나요”

궁정동 안가는 담장이 드높은 청와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담장 밖에 별도로 위치한 조그만 안전기옥이였으며, 주로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식사 모임이나 작은 연회를 가질 때 사용되는 은밀한 장소로 통했다.    

이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에 즉시 평소에 공을 들여온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4시15분이었다. “정총장, 오늘 저녁 좀 만났으면 하오. 궁정동 안가 알지요. 18시30분까지 궁정동 본관으로 좀 와 주시오”.

오후 4시 30분, 김재규는 곧바로 궁정동 안가, 별채 연회장에 가서 김계원 비서실장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김계원은 오후 5시50분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안가 정원에 앉았다.

김계원이 입을 열었다.

“차지철 그 사람 월권을 해서 야단이야, 야당 친구 몇 사람의 말만 듣고 각하에게 보고하여 각하를 강경하게 몰아가고 있단 말야”

기다렸다는 듯이 김재규가 호응했다.

“형님, 오늘 저녁 이놈을 해치우겠습니다. 뒷일은 형님이 책임져 주시오”

김계원이 고개를 끄덕여 이에 동의를 표시했다(김재규내란음모사건소송기록73-101면).

김재규는 차지철로부터 늘 인격이하의 대우를 받아왔으며 대통령이 있는 앞에서 면박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차지철에 대한 분노는 뼈에 사무쳐 있었다. 차지철의 오만과 월권에 대한 소문은 당시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김계원 역시 차지철을 눈엣가시로 생각해 왔다.

김재규가 차지철을 해치우겠다는 말에 김계원이 선 듯 동의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차지철만이 아니라 박대통령까지도 해치우겠다는 의도에 동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재규가 언젠가는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는 데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보,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놀랐을 것이다. “차지철만 죽이고 대통령을 살려두면 당신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요” “뒷일이라는 게 뭐요?” 이렇게 연속해서 물었을 것이다.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이 짧은 대화는 한 마디로 두 사람이 한편이 되어 언젠가는 거사를 실행할 것이라는 데 대해 이전부터 공감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후 6시05분, 만찬이 시작됐다. 박대통령 양 옆에는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이 앉아 있었고, 대통령 오른 쪽 모서리 자리에 차지철, 대통령 맞은편 문 쪽 자리에 김재규와 김계원이 앉았다. 차지철 바로 뒤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대통령: “오늘 삽교천 준공식 광경을 왜 KBS TV에 보도하지 않는가? 정보부장, 신민당 상황은 어떻소?“

김재규; “공화당 발표 때문에 다 틀렸습니다. 사표 내겠다고 한 친구들이 다 강경으로 돌아섰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정 대행체제의 출범은 어렵겠습니다. 그리고 주류가 강해져서 다소 시끄럽겠습니다.”

차지철: “그까짓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고 학생이고 전차로 싹 깔아뭉게 버리겠습니다.”  

이어서 술잔이 돌고 잡담이 오가는 등 주석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오후 6시35분, 정승화 육군총장이 안가 별채에 도착했다. 정승화는 전에도 몇 차례 김재규의 초청을 받은 바 있어 안가지역에 대해 익숙해 있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인 오후 7시, 김재규는 정승화가 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찬장을 빠져나와 작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50m 떨어진 본관 1층 식당 문을 열었다. 정승화와 중앙정보부 2차장보 김정섭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정총장, 미안하오. 내가 저쪽 행사를 마치고 올 터이니 두 분이 식사를 하고 계시오.”  

그리고 같은 건물 2층 직무실로 올라가 책장 뒤에 은닉해 두었던 소형 권총을 하의 라이타 주머니 에 넣고 나왔다. 이 때 박선호와 박흥주 대령이 뒤를 따랐다. “박실장, 본관에 육군 총장과 2차장보가 와 있다. 오늘 해치운다.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해라” 이어서 주머니의 권총을 보여주며 결의를 확인시켜 주었다.  

김재규:  “자네들 각오가 돼 있겠지?”

박선호: “각오가 돼 있습니다.”  

박흥주: “예”

박선호: “각하도 하실겁니까?”

김재규: “응”

박선호: “오늘은 좋지 않습니다. 경호관이 7명이나 됩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재규: “안돼. 오늘 해치우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돼, 똑똑한 놈 세놈만 골라 다 해치워”

박선호: “30분만 여유를 주십시오.”

김재규: “알았네”  

김재규는 주머니에 권총을 넣은 채 만찬장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30분, 오후 7시35분에 연회장에서 심부름을 하던 남효주가 들어와 “부장님, 전화입니다” 하고 암호를 전했다. 박선호가 있는 부속실로 들어가니 박선호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재규: “준비되었는가?”

박선호: “완료됐습니다”

결행준비 완료! 연회장으로 와보니 그 보기 싫은 차지철이 또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민당 놈들, 국회의원 그만하고 싶은 놈들 하나도 없습니다. 반정부적인 놈들이 언론을 타고 선동하는 것이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 자식들 신민당이고 뭐고 나오면 전차로 갈아뭉개겠습니다.”

이 말에 이어 김재규는 김계원을 향해 “각하를 똑바로 모시시오”하고 툭 친 후, 이어서 차지철을 쏘아보며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새끼를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하면서 차지철 팔둑을 향해 권총 한발, 박대통령 가슴에 한발씩을 쏘았다.

한편 김계원은 김재규가 몸을 툭 치는 것을 신호로 곧바로 문 밖 입구로 나와 사태가 진전되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은 곧바로 얼굴을 식탁에 묻었고, 차지철은 대통령을 팽개친 채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차지철이 총을 팔둑에 맞은 것은 김재규의 옆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고, 박정희가 가슴에 맞은 것은 마주보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김재규는 아직 살아있는 이들에게 다시 총을 쏘려 했으나 장전이 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뛰어나가 구관 건물을 향하자 마루에 박선호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김재규는 그 총을 빼앗아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차지철이 문쪽으로 문갑을 밀고 나왔다. 이런 차지철에게 한발을 더 쏘았고, 이어서 식탁에 머리를 대고 힘 없이 엎드려 있던 대통령의 머리를 향해 한발 더 쏘았다.

이를 신호로 궁정동 좁은 담 안에서는 40여발(권총 11발, 나머지 M-16)에 이르는 총성이 울렸고, 대통령과 그의 경호원 9명이 순식간에 몰살했다. 후에 경호원 박상범 만이 다시 개어나 살아남았다.

총을 쏜 사람들은 김재규,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이었고, 총을 맞은 사람들은 박정희, 차지철, 정인형, 안재송, 김용태, 김용섭, 박상범, 이정오, 김용남이었다.    

이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에 한 나라의 대통령과 그 경호원들은 총 한발 발사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살육됐다. “나는 괜찮다”를 두 번 말하고 대통령은 골치 아프고 복잡한 세상을 조용하고 품위 있게 마감했다.

이것이 차지철의 경호였고, 그런 차지철을 대통령은 편애했다. 그리고 박대통령의 덕을 과분하게 입었던 김재규는 자기를 믿고 아무런 경계 없이 피곤한 몸을 쉬러 온 대통령을 등 뒤에서 쏘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행동이 바로 신뢰를 미끼로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김재규 같은 패륜아일 것이다.    

  
시해현장 약도(김계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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