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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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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의 발자취 1탄 (2탄 추가 )
1탄


노무현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남북관계만 잘되면 된다"고 했음에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노무현은 대통령 취임후 김대중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허무는 기반을 이미 잘 닦아놓은지라 노골적으로 친북좌파 행각을 일삼는다. 탄핵 시도의 원인이 되었던 열린우리당 편들기 발언도 "다른 것은 다 깽판쳐도 남북관계만 잘되면 된다"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최근의 친북좌파 정당들과 친북좌파들의 행태도 그러한 노무현 발언의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연장선상인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친북좌파들의 깽판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안보에 있어서 조그만 빈틈도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노무현은 재임시 쌍커플 수술과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허리는 앉아 있을 때 오히려 서 있을 때보다 부하를 1.5배 더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컴퓨터 업무에 치중했으며 국내 업무 시찰에는 매우 소홀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해외순방은 매우 즐겼다. 5.18 직전 최규하는 그 짧은 재임기간 중에 관광과는 거리가 먼 중동실리 외교를 펼쳤으나 노무현은 북한 편들고 한미동맹을 깨는 미국 방문길에 터무니 없게도 아들에게 불법자금으로(자기 월급은 꼬박꼬박 예금하면서) 유학비용을 댔다는 의혹도 받고 있고 국정원(김만복 때)은 노건호의 미국 유학거처를 물색했다고도 한다.

노무현 당시 모 국정원장이 일심회 사건을 밝힌 후 정권의 미움을 받아 국정원장직에서 물러나는 척 했었다. 노무현 정부 시 유일한 간첩사건인 일심회 간첩사건은 수만 수십만 간첩이 우글거리는 실정에 비춰서 잔챙이들로 생색내기용이었다. 그 잔챙이들은 동조자들과 같이 법정소란을 일으키는 등 법원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판결을 간첩들에게조차 유리하게 하려는 대남사업에 충실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정원장 자리는 자기들 세력이 아니면 앉히지 않을 사람들이다. 당시 사퇴한 국정원장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때가 되어 물러났던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소신있는 국정원장을 임명한 노무현인 척 했던 것이다.

국내 국민들의 민생을 위해서는 꼼지락거리는 것도 싫어하고 되도 않는 강연들만 일삼던 노무현이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역시 친북좌파적 통일 사업이었고 남한에서의 안보허물기와 병행되었다. 노무현이 공병과 의무병 위주로 이라크 파병을 한 것은 다수 국민들의 이반을 염려한 고도의 포퓰리즘 전략일 따름이었다. FTA는 이명박 정권에 떠넘겨서 친북좌파들의 촛불집회의 표적이 되게도 했다. 노무현이 양심이 있다면 촛불집회 세력과 촛불집회의 확산이 있기 전에 자제시켰어야 했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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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적화통일을 돕고 안보를 파괴한 적대통령이었음을 간파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서해갑문과 만수대의사당에 남긴 방명록 서명이다. 서해갑문에서는 '인민은 위대하다(2007.10.4)'고 썼고, 만수대의사당에선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2007.10.2)'이라고 썼다. 어떤 골빈 사람들은 인민 즉 국민의 주권을 너무 존중해서 그렇게 썼다고 하던데 해석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것이다. 100% 투표에 100% 찬성, 김정일의 20대 초반 아들도 나오면 아무 곳에서나 그런 식으로 당선되는 선거, 그런데도 노무현이 그런 식으로 당선되고 인민의 삶은 돌보지도 않고 김정일 수령독재의 거수기 역할이나 하는 그런 곳을 그렇게 표현했다면 자기가 고향임에도 낙선한 경우들(국회의원 선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같은 친북좌파는 무조건 당선되어야 하는 남한을 원했다는 것이며 사상적으로 북한을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그런 노무현이기에 설사 탄핵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며 친북좌파 세력들은 탄핵을 빌미로 국가 소요사태를 획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윗선인 김대중을 필두로한 반역세력은 그에 대한 대비를 해놓았기에 탄핵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은 불안하기는 했어도 절대로 탄핵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중파 방송들을 비롯한 친북좌파 언론들의 탄핵 편파 방송은 반역이었고 헌법재판소의 당시 판결은 존중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반대현상이 취임하자마자 벌어진 촛불집회를 통한 이명박 대통령 흠집내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일련의 내용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친북좌파가 어떤 집단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고 간파했다면 친북좌파들을 측근이라도 척결해야 하는 것이다.




2탄

김대중은 확실한 친북좌파 행각 외에는 근본을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얼마전에 김대중은 고향사람들이 판을 벌여줬지만 자기자신과 관련이 있을 것이 분명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함으로서 물욕 못지 않은 명예 욕구를 과시했다.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은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1623년부터 1957년까지 벌어진 농지 탈환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하의도 농지는 선조의 부마 홍계원 가문과 일본인 도쿠다, 미 군정에 넘어갔고, 그래서 농민들은 끈질기게 탈환운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무슨 농지 탈환 운동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나? 히로히또 일왕의 영정 앞에서 90도 깍듯이 절하고 독도영해도 준비되지 않은 협상으로 헌납하다시피 했고 일본 애니매이션들이 장면들도 고치지 않은 상태로 수입되도록 해서 한국만화인양 아이들에게 번역되어져 일본문화에 자연스럽게 심취되도록 한(여자 아이들 팬티도 늘상 들려지게 그려진) 친일파, 더구나 박정희 대통령 당시 일본 체류 중 조국에 대한 반역행각이 일본에 탄로나서 일본에 발목잡힌 것이 분명하며 농사를 지은 적도 없는 김대중, 그런 김대중과 하의도 농민 운동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처럼 농촌 들녘에 나가보는 성의도 없는 사람들이 왜 난데없이 농민, 즉 민중타령인가? 농지개혁하면 이승만인데 농지를 몇몇 개인들이 획득하는 과정들을 농민운동으로 각색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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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에게 있어서는 재물과 명예로 과시하며 드러내고 싶은 욕구보다 더 강한 욕구가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반역 행각을 철저히 숨기는 것이다. 그런 반역이 드러나면 슨상교 신도들로부터도 외면받게 되고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김대중을 보호해줄 가장 확실한 인물로 점지된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던 것이다.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김대중의 약점을 카바해 주고도 남을 영남 인물이었고 드물게 부부가 같이 빨갱이 성골에다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 화술도 구사했다(절대 언변이 탁월한 것이 아님). 그래서 결정을 본후 꼬마 민주당에 남아 있던 노무현을 당대당 합당 식으로 배려하면서 영입하여 곧바로 최고위원으로 삼고 경력을 쌓게 하기 위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노무현의 이름으로 링컨에 대한 글을 쓰게 한다. 또 인위적으로 노사모를 만들어 자발적인 단체인양 국민들을 속인다. 일반적인 노빠들과 다르게 노사모의 중심 세력은 김대중의 지령을 받드는 하수인들이라는 것이다.

김대업 사기극을 엮어가면서 전자개표조작을 위해 단도리 해 놓은 후 효순 미선양 단순 사고를 반미로 조장하여 공중파 3사가 장장 3개월동안 촛불집회를 증폭시키는 일방 편파 대선쇼를 통해 노무현이 등극한다.

대한민국을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야금야금 무너뜨리던 노무현은 임기 말 북한에 가서 자기의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5년동안 속아넘어간 대한민국 국민들은 무시하듯 대한민국의 대단위 기간사업들은 그의 추종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능멸하는 가운데 그는 서해갑문에서 핵과 생화확무기와 땅굴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김정일의 숙원사업에 최대의 찬사를 보낸다.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무엇이 위대한데.. OOO 노무현 이느마야!
  
3탄에서는 노무현과 땅굴을 엮어볼까 한다. 새만금을 비꼬던 김용옥도 서해갑문에 대동했고 400여만 부산시민을 위해 어차피 완공할 터널인데도 단식하는 스님에게 비서를 보내 사과까지 하며 지연시킨 부산 안갈매기  그의 조국은 진정 어디일까?






노무현이 서해갑문에 남긴 글




노무현이 만수대의사당에 남긴 글




▷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왼쪽)이 25일 청와대 앞에서 경남 양산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여온 지율 스님을 방문해 “2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천성산 터널공사는 2002년 6월~작년 9월 중단 이후 두 번째로 중단하게 됐다. 이날 단식 57일째를 맞아 건강이 악화된 지율 스님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수석, 곽결호 장관 지율 스님 사과 방문
“항소심 판결까지 공사중단하겠다”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이 지율 스님에게 합장 반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이 지율 스님을 사과 방문했다. 문 수석은 재판부의 판결에 무조건 승복한다는 전제 아래 항소심 판결 선고까지 공사 중단을 하도록 건교부와 고속철도공단에 요청하겠다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문 수석은 또 지율 스님과 시민ㆍ환경단체가 요구한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위한 6개월 동안의 공사 중단 약속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은 급격한 체력 저하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단식 회양 여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8월 25일 오전 10시 30분경 지율 스님을 방문하고 “스님께 죄송하다. 1차 단식 때도 보았는데 너무 안 좋아 보인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 너무 조마조마하다”며 “오면서 해결책을 가져와야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다. 정부 조직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기력부터 차려야 한다”며 지율 스님의 단식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문 수석은 “재판부가 권고한대로 재판 결과에 승복한다는 조건 아래 판결시까지 공사를 중단하도록 건교부와 고속철도공단에 협조 요청하겠다”고만 밝혀, 지율 스님이 요구한 6개월 동안 공사중단 후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문 수석은 한편 “환경영향제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 스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향후 제도 개선 방안을 적극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율 스님은 문 수석에게 “천성산을 버리지 못해 여기까지 온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문 수석에 이어 오후 1시경 곽결호 환경부장관도 지율 스님을 방문했다. 곽 장관은 지율 스님에게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됐다.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단식을 풀고 건강을 회복해 달라”고 말했다.

곽 장관은 이어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는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상 불가능하다. 현행법의 한계다. 다만 법원 판결까지 공사 중단하겠다는 사업자측 입장표명이 있었다. 재평가나 재조사는 이미 했다. 다만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해서 공사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지율 스님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단식 57일째를 맞아 급격한 체력저하를 겪고 있는 지율 스님은 서울 강남 동국대한방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단식 중단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음은 문재인 수석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지율 스님을 찾아온 이유는?
저희로선 지금 현재 노선검토협의회의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고속철 공사에 대한 지율 스님의 주장과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인 단식 시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발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것을 반대하는 지율 스님의 환경철학과 생명존중철학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스님의 단식이 너무 오래됐고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다. 지율 스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스님께서 단식을 풀고 건강을 되찾으시길 빈다.

항소심 재판부의 권고안대로 재판결과에 무조건 승복한다는 조건으로 항소심까지 공사를 중단하는 방안에 대해 고속철도공단, 건교부가 받아들이도록 요청했다. 스님께서 이것을 받아들이길 부탁드린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는 다시 하기는 어렵지만 이 제도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환경영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해 전향적인 검토를 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겠다. 지율 스님께서도 이것에 동의해서 오늘 당장 단식을 그만 두길 바란다.

#스님의 단식은 노 대통령과 문 수석의 약속을 불이행 때문이라는데?
노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내가 약속을 한 것은 공사를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대안 노선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노선재검토협의회를 구성해 이행됐다.

#57일이 넘는 동안 찾아오지 않는 이유는?
청와대가 이 문제 해결의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시위에 대해 청와대가 나서서 해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이런 곳에 찾아오려면 해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해결 주체는 아니지만 합리적 해법이 제시되면 받아들여지도록 중재는 할 수 있다.
강유신 기자 | shanmok@buddhapia.com |



불교환경연대, 24일 대법원 판결 규탄


천성산 ‘도룡용’ 지율 스님에 대한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불교환경연대는 4월 24일 논평을 발표하고, 사법부의 정부 장단맞추기를 규탄했다.

불교환경연대는 “깊은 통탄과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업무방해의 적법성을 논하기에 앞서, 사전환경영향평가와 여론 수렴을 제대로 했는지, 공사 강행추진 과정, 절차가 정당했는지 사법부 판단에 전제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율 스님의 1백일 단식은 ‘공사 하지말자’가 아니라, ‘터널로 인해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영향평가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며 “대법원이 ‘공사방해동기가 자연파괴를 막기 위한 것이라도 굴착기를 가로막는 방법은 타당치 않다’고 밝힌 것은 뭇 생명을 지키기 위한 수행을 ‘업무방해죄’로 못 박은 것”이라고 규탄했다.

끝으로 불교환경연대는 “녹색으로 위장한 현 정부 흐름에 장단을 맞추듯, 사법부가 확정한 이번 선고는 ‘환경보전에 대한 족쇄 채움’이자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합법적 폭력’”이라며 “이번 판결은 각종 환경파괴행위를 부추기는 사례로 사법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아래는 논평 전문이다.


지율스님 유죄 확정 선고에 대한 불교환경연대의 입장
사법부여, 생명의 저울을 들어라!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단식 운동을 펼쳤던 지율스님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23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지율스님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며 “피고인이 공사를 방해한 동기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공사현장에 무단으로 들어가 굴착기 앞을 가로막는 등의 방법이 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1심, 2심 과정을 거처 오며 지속적으로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한 바 있는 본 연대는, 다시 한 번 깊은 통탄과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업무방해 행위의 적법성을 논하기에 앞서, 과연 정부는 사전환경영향평가를 적법하게 했는지, 여론 수렴을 제대로 했는지, 공사 강행추진 과정과 절차가 상식적이고 정당했는지에 대해 사법부의 신중하고도 현명한 판단이 전제되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의 여신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저울을 들고 있는 것처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법대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이 사법부의 기본 책무이다. 그런데 이 시대 법의 논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법부는 뭇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지극하고 눈물겨운 수행을 ‘업무방해죄’라는 명목으로 못박았다. 천성산 지키기 활동 당시 지율스님은 1백 일 단식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썼지만, ‘공사를 하지 말자’는 식의 극단적인 요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스님이 요구한 내용은 ‘터널을 뚫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된 영향 평가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지율스님의 천성산 지키기 운동은 수행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이기에 앞서 한 생명체로서, 생명에 대한 깊은 자각이었다. 또한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생명폭력’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그 부당함을 지적하며 수행자로서 직접 행동에 나섰고 실천했다. 모든 생명의 권리를 주장하며 홀로 싸웠던 생명주권운동인 것이다.
허울뿐인 녹색으로 위장한 현 정부의 흐름에 장단을 맞추듯, 사법부가 생명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지율스님의 활동을 유죄로 확정한 이번 선고에 대해, 우리는 ‘환경보전활동에 대한 족쇄 채움이자 헌신적인 생명평화운동가에 대한 합법적(?)인 폭력’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는 금번 사법부의 판결에서 생명의 가치보다 개발의 논리가 앞서는 현 정부의 그릇된 환경관을 읽는다. 현 정부는 녹색성장이라는 포장 아래 강력한 개발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는 여당대표의 말은 이를 상징한다. 이번 판결은 정부의 개발위주 정책에 면죄부를 주고 각종 환경파괴 개발행위를 부추기는 부끄러운 사례로 사법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2009. 4. 24
불 교 환 경 연 대



세계 최장 해저터널인 일본의 홋카이도와 혼슈우간 츠카루 해협 해저의 세이칸 터널(53km)은 1964년에 착공되어 1988년에 준공되었다. 완공까지 25년이 걸렸고 완공된지도 어언 22년이 흘렀다. 그래서 북한의 해저남침땅굴 구상에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이미 한일 해저터널은 계획되었었는데 아직 미정이고 영불간 도버해협은 완공되었다. 베링해협땅굴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김문수 지사가 한중해저터널을 거론한 적이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의지만 있으면 건설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침 해저 땅굴을 북한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TBM 중에 최대 8m에 달하는 것도 있던데 거슬릴 것이 없는 해저터널이라면 대형으로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서해갑문 공사를 하면서 남침 땅굴의 버럭을 그곳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해저터널의 버럭도 그곳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남포는 평양의 철봉각과 남포간의 80km 지하 땅굴의 종점이다. 미국 공격시 김정일의 도주로용이라고 한다.

남포가 남침 지하 땅굴과 남침 해저 터널과 철봉각(평양)-남포간 지하 땅굴과 새만금방조제보다 세배 정도 짧은 서해갑문 등 4곳이 겹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해갑문골재와 흙은 지하와 해저에서 긁어모은 버럭으로 상당부분 건설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해갑문은 1981년부터 1986년까지 5년 사이에(새만금방조제는 15년) 건설되어졌다는데 이 기간동안 남침 땅굴보다 오히려 해저터널의 버럭이 많이 투입되어졌던 것은 아닐까한다.

또 이 공사에는 1개 군단 규모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근로자 수만 명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만큼 인명 피해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예 1).

그리고 (예 2)에서의 [북의 선군정치의 특징 중에 하나가 군대를 앞세워 나라의 자주권을 지킬 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사회전반적인 발전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북에서 군대를 사회발전의 주력군으로 놓는 이유는 군인들의 정신이 가장 애국적이며 가장 강한 의지와 희생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그런 군인들의 정신을 전 사회적인 정신으로 만들었을 때 가장 빨리 사회발전을 추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은 가장 어려운 경제건설 사업도 군인들을 앞세워 완수하게 하게 그 모범을 전사회적으로 알려내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서해갑문 공사도 그렇고, 안변청년발전소 건설도 그런 사례 중에 하나이다. 북의 언론에서는 이런 공사에서 발휘한 군인들의 자력갱생의 정신과 애국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러시아가 북처럼 군대를 경제건설의 모범으로 앞세우지는 않았지만 군인들의 가장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인 애국심을 경제 발전의 한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선군정치와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와 같이 북의 선군정치는 남침 해저 터널과 남침 지하 터널(남침 땅굴)의 진척에 박차를 가하는 가장 강력한 추동력이었을 것이다.






남북한 새만금 - 서해갑문 비교해보니
매일경제 기사전송 2007-10-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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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 따라 해주ㆍ안변과 함께 남포항 개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했던 남포 서해갑문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이 '혁명의 상징'으로 자랑하는 서해갑문은 여러 면에서 새만금과 비교된다. 우선 남북이 자랑하는 최대 토목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 '손'으로 만든 서해갑문서해갑문은 북한이 중요한 외국 손님이 오면 꼭 방문을 권유하는 곳이다. 일종의 체제 선전물인 셈이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 방북 때도 북한 측에서 먼저 방문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갑문은 대동강 하구인 남포시 영남리와 은율군 송관리를 잇는 폭 14m, 길이 7㎞ 둑과 갑문 3개, 수문 36개로 이뤄져 있다. 총공사비가 40억달러나 들어간 이 공사는 1981년 5월 첫삽을 뜬 지 5년 만인 1986년 6월에 완공됐다. 사업 결과 간석지 19억8000만㎡도 조성됐다.

서해갑문 공사는 '첫삽을 뜨다'는 표현이 단지 수사적 표현에 그치지 않을 만큼 많은 부분이 사람 힘으로 이뤄졌다. 이 공사에는 1개 군단 규모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근로자 수만 명이 투입됐다. 그만큼 인명 피해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 세계 최장 방조제 새만금= 규모 면에서는 새만금이 서해갑문을 압도한다. 새만금 방조제 총길이는 33㎞로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다. 이로 인해 39억7000만㎡에 달하는 새로운 땅이 만들어졌다. 서해갑문으로 조성된 땅보다 배가 넘는다. 방조제 공사에만 들어간 비용이 모두 3조4756억원. 앞으로 투입될 내부 개발 비용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공사기간도 15년으로 서해갑문보다 세 배 가까이 길었다. 물론 공사기간 차이는 사회체제 차이 때문에 발생했다. 북한 서해갑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 아래 일사분란하게 이뤄진 데 비해 새만금사업은 환경단체 반대에 부딪혀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끝에 15년 만에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됐다.

◆ 물 확보 vs 땅 확보= 방조제를 만든 목적에도 차이가 있다. 서해갑문을 만든 주목적은 홍수 조절과 농업ㆍ공업 용수 확보, 남포항 접안능력 향상이었다. 이로 인해 27억t 규모 담수능력을 지닌 인공호가 만들어졌으며 남포항 접안능력이 2만t에서 5만t 수준으로 향상됐다.

이에 비해 새만금은 당초 농업용지 확보를 위해 조성됐다. 처음 새만금 계획이 구상되던 1987년 당시로서는 식량 자급자족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농사지을 땅 문제보다는 복합 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상태다.

◆ 서해갑문 주변 산업 개발 = 노무현 대통령이 체제 선전이란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해갑문을 방문한 것은 서해갑문을 비롯한 남포항 일대를 유력한 대북 투자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상회담에서 남포 일대에 조선협력단지를 조성하기로 합의한 게 이를 반영한다는 것.남포 일대는 남북 합작품인 평화자동차 공장이 있는 곳으로 자동차 조선 중공업이 발달한 북한의 대표적인 공업지대다.

최종태 한국산업단지공단 전략사업팀장은 "남포는 평화자동차 공장과 영남 배수리공장이 있어 조선 등 중공업 공단이 들어설 수 있는 좋은 입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장종회 기자 / 김기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율에 대한 기사>

법원·검찰·경찰 '고속철 공사 방해' 지율스님 유죄 확정 조선닷컴
기사 100자평(42) 입력 : 2009.04.23 19:28 / 수정 : 2009.04.23 19:29
도롱뇽을 보호한다며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방해한 지율 스님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3일 경부고속도로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를 방해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조모(법명 지율)씨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공사 방해가 정당 행위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공사 방해 금지를 명한 가처분 결정 등을 들어 원심이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고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적절하며 법리 오해 등의 위법도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내원사 소속 승려인 조씨는 지난 2003년 3월부터 6월까지 경남 양산시 동면 개곡리 경부고속철도 천성상 관통터널 공사 현장에서 24회에 걸쳐 굴착기를 가록막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2006년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대법원은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6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원효터널 착공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검찰·경찰 '고속철 공사 방해' 지율 스님 유죄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20) 입력 : 2009.04.24 02:53
대법(大法), 집유2년 원심 확정
천성산(경남 양산시 소재)의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단식 농성을 벌였던 지율 스님(여·52·본명 조경숙)에 대해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23일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 내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조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환경보호단체들의 반대로 세 차례 공사가 중단되면서 천문학적인 국고 손실을 초래한 천성산 터널 공사가 법적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대법원은 "조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하지 않고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은 적절하며 법리 오해가 없다"고 밝혔다.

천성산에 있는 사찰 내원사 소속 승려인 조씨는 2004년 터널 공사현장에서 단식농성을 하거나 굴삭기 앞을 가로막고 좌정(坐定)하는 방법 등으로 두 달 넘는 동안 24차례에 걸쳐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천성산 터널공사는 지난 2002년 6월 착공했지만, 조씨와 환경보호단체들이 "도롱뇽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습지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2004년 조씨가 현장을 점거하며 공사를 방해할 때 3개월, 공사 중단 가처분 신청의 항고 선고 이전 3개월,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가 벌어진 3개월 등 최소 15개월 이상 공사가 중단됐다. 조씨 등은 이 밖에도 공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낸 후 항고·재항고를 거쳐 2006년 6월 대법원이 기각을 확정하기까지 2년8개월간 논란을 끌고 갔다.

현재 천성산 터널을 포함한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대구~부산 간 118㎞)은 내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종합 [사설] 환경운동의 내리막길은 '천성산'에서 시작됐다기사 100자평(3) 입력 : 2009.04.23 22:29
대법원이 23일 경부고속철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지율 스님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천성산과 관련해 지율 스님은 세번 단식을 했고, 그때마다 공사가 중단됐다. 2003년 3월 첫 번째 단식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공사가 중단됐다. 2004년 4월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낸 이른바 '도롱뇽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환경단체에 패소 판결을 내리자 지율 스님은 2차 단식을 벌였고,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찾아가 무릎 꿇고 단식을 풀라고 통사정하면서 또 공사가 중단됐다. 지율 스님은 2005년 2월 3차 단식을 벌여 그해 8월 세 번째로 공사가 중단됐다.

천성산 공사가 중단될 때마다 매번 환경영향 조사가 실시됐다. 2002년 6월 공사 착공 전에 완료된 공식 환경영향평가가 있었고 2003년 지질공학회의 자연환경조사, 2004년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재(再)조사, 그리고 2005년 8월 또 한번의 공동 환경영향 조사가 있었다. 그때마다 전문가들은 천성산 자연습지들은 터널에서 수직 거리로 300m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환경운동이 터무니없는 논리에 집착하고 정부가 거기에 휘둘리면 사회에 큰 피해가 온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06년 6월 경부고속철 공사가 1년 지연되면 1조9719억원의 손실비용이 발생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천성산 공사는 세 차례에 걸쳐 꼭 1년 중단됐다.

대한민국 환경운동은 지금 국민 신뢰를 잃어 확연하게 쇠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경운동의 내리막길은 천성산에서 시작됐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盧대통령,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
평양=공동취재단

입력 : 2007.10.04 14:11 / 수정 : 2007.10.04 14:56



▲ 2007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4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남포시 서해갑문을 방문해 서명한 방명록.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썼다. /연합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방문 마지막 날인 4일 오전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남포시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조립공장과 다목적 방조제인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전 8시에 출발, 50분간 평양-남포 구간 고속도로인 청년고속도로를 달려 오전 8시50분에 남포시 상대두동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입구에 도착했다.



평화자동차는 지난 2002년 4월에 부지 규모 14만4천여 ㎡, 건물 규모 2만4천650 ㎡에 연간 1만대 생산능력으로 설립됐으나 현재 연간 1천대의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소형버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종업원 수는 216명.



노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평화자동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장 입구에서 양정만 평화자동차 지배인으로부터 공장 현황을 들었다. 이어 공장 안으로 들어가 승용차, 승합차 조립 공정을 둘러본 뒤 헤드라이트 테스트 공정에 잠시 서서 북측 근로자에게 “밝기를 보는 겁니까”라고 물은 뒤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권 여사와 함께 쌍용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만든 체어맨급 ‘준마’ 시승을 위해 운전석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핸들을 잡은 뒤 차 앞에 있던 수행원들에게 “자, 갑시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주십시오”라며 시동을 걸었으나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노 대통령 바로 뒤에서 조립공정을 살펴보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노 대통령 쪽으로 다가가 앞 차문을 열고 브레이크 잠금장치를 점검하면서 시승을 도왔으나 끝내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옆에 있던 정몽구 회장을 가리키며 “이 분이 자동차 도사”라고 주변에 소개했다.



정 회장은 평화자동차 공장을 둘러본 뒤 ‘시설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공장을 떠나기에 앞서 양 지배인에게 “엔진도 만들고, 나중에 주변에 부품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야죠”라며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20분 가량 평화자동차를 둘러본 뒤 다시 차에 올라 오전 9시45분께 남포 서해갑문 기념탑에 도착했다. 서해갑문은 지난 1981년에 공사를 시작해 1986년 6월 준공된 대형 다목적 방조제로, 대동강 하구의 남포시와 은율군을 이은 길이 8Km의 둑과 갑문 3개를 갖추고 있다. 서해갑문은 총 자금 40억달러와 연인원 2천300만명, 시멘트 110만톤이 투입됐으며, 저수능력 29억㎥ , 통수능력 초당 4만2000 ㎥, 갑문 1시간 수위조절능력 1억5000만 ㎥ 규모다.



노 대통령은 도착 후 곧바로 기념탑 내 접견실로 이동, 서해갑문 건설 과정을 담은 비디오물을 시청하며 북측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에는 경제인으로 정몽구 현대차, 구본무 LG, 최태원 SK, 현정은 현대그룹, 이구택 포스코 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함께했다.



25분간 비디오를 시청한 노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기증한 LCD TV 2대가 포장돼 도착한 것을 보고 윤 부회장과 구 회장에게 “감사하다”고 치하한 뒤 “앞으로 영상물을 더 잘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기념탑 전망대로 올라가 서해갑문을 내려다본 뒤 고 김일성 주석이 기념 촬영했던 장소에서 권 여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가 김일성 주석이 사진을 찍은 자리냐. 김일성 주석처럼 폼을 잡아 보라는 겁니까”라고 말한 뒤 권 여사에게 “분위기 있게 팍 기대세요”라며 포즈를 취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또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 “자, 김용옥 선생, 서해갑문을 보니 좋은 구상이 떠오르시느냐”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어 “우리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경제인 등 특별수행원 대여섯명씩과 차례로 기념촬영을 했다. 노 대통령은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쓰고 서명한 뒤 주위의 남북 관계자들에게 “박수 한번 쳐달라”고 말한 뒤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최태원 SK 회장은 평화자동차와 서해갑문을 둘러본 뒤 “북한이 개발이 덜 됐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역발상만 잘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재현 토지공사 사장은 “1980년대면 북측 장비가 부족했을 텐데 인력으로, 자력으로 짧은 기간에 이런 공사를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평했다.




[참관지] 서해갑문은 北 몰락의 기폭제였다

40억달러 쏟아붇고 효과미비…인명피해만 수천명
[2007-10-04 10:10 ]



▲ 북이 자랑하는 서해갑문 전경


2박3일 일정의 북한 방문을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4일) 남포에 위치한 서해갑문을 방문한다.

서해갑문은 북한 남포항에 입항할 수 있는 선박의 규모를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초대형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국제적인 규모라는 것은 북한의 선전에 불과하다. 홍수조절 기능도 이번 여름 수해에서 알 수 있듯이 서해갑문 때문에 오히려 악화됐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서해갑문은 북한과 특히 김정일 위원장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곳이다. 서해갑문 건설의 발기 및 감독, 공사책임자가 사실상 김정일 이고 또 이후 북한의 경제난과 밀접한 연계가 있기 때문이다.

서해갑문 건설공사가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마지막 자원까지 소진하게 만드는 등 10년 후 일어나게 될 '고난의 행군'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공사기간중 예상치 않게 발생한 1984년 남한의 수해에 대규모 전쟁비상물자까지 털어내면서 이후 북한 주민들의 궁핍한 삶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북한이 90년 대 중반부터 겪은 격심한 경제곤난과 수백만의 대량아사가 어느날 한 순간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실정이 쌓이고 쌓인 결과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한 일본인 건설기술자의 추산에 따르면 북한이 서해갑문 건설에 쏟아부은 건설비는 총 60억 달러다. 이는 총 40억 달러의 거금이 들었다고 공식 발표한 북한의 발표보다 20억 달러가 더 많은 금액이다.

북한이 서해갑문을 건설한 목적은 27억 톤의 담수능력을 지닌 인공호를 조성하여 남포항의 접안능력을 2만 톤에서 5만 톤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등 대동강 홍수 조절과 농경지 확보, 항만 개발을 위함이다.

하지만 당시 북한 주민들 속에서는 서해 백령도에서 직접 대동강을 통하여 침투하는 남한 간첩(특수부대)들을 차단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있는 평양의 치안을 지키려고 건설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직접 받는 대동강을 바다로 부터 차단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도 한 몫 했다는 것이다. 실제 남한에 침투하던 북한의 연락소 요원(간첩)들은 밀물과 썰물만 잘 이용하면 별도의 힘을 들이지 않고도 한강하구 서울쪽에 침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해갑문은 지난 1981년 공사를 시작해 5년만인 1986년 완공됐다. 북한은 당초 3년 내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1개 군단 규모의 군병력과 각지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노동자를 투입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북한이 공사기한을 3년으로 잡은 것은 아니다. 초기 북한 설계자들과 관계자들은 서해갑문 건설시기를 20여년으로 잡았다. 이는 낮은 북한의 토목공사기술과 워낙 방대한 공사규모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또 20여리 날바다를 막아야 하는데다가 공사현장 작업지역의 유속(물흐름)이 초속 11m로 빠르고 수심또한 최고 30m로 깊어 작업조건이 지극히 나빴던 것도 한 원인 이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당시 70세를 내다보던 김일성의 나이를 감안하여 "수령님이 살아생전 보지 못하는 공사는 그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고 "남들이 10년, 20년 걸려서 하는 공사라면 우리는 3년, 5년 내에 할 수 있다"고 공사단축을 지시했다.

이후 대규모의 인민군 건설부대들이 투입되어 수많은 인명사고를 내는 무모한 공사를 추진했다. 북한은 수중용접이나 위험한 작업에 군인들의 자원참가를 높이기 위하여 '영웅'칭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서해갑문 건설이 끝나고 북한에 많은 '영웅'들이 생겨난데서도 알 수 있다.

다시말하여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위험한 작업에 참가하는 군인들을 '영웅'칭호와 각종 '훈장'들로 이용한 것이다. 서해갑문 공사에 관여한 탈북자에 따르면 공사 기간 동안 하루 평균 적게는 2∼3명에서 7명까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가물막이 공사 때는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공사기간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수천명에 달한다는 것.

서해갑문은 북한에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대표적인 공사 중 하나로 꼽힌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직접 건설현장을 찾아 군인들과 건설자들을 위로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 서해갑문 건설에 전 인민적 참여를 강요했다. 또 각지의 공장과 사회단체들도 정기적으로 지원물자(빵, 육류 등 식료품 위주)를 가지고 서해갑문 건설현장을 찾도록 강요했다.

특히 배고픈 군인들을 위하여 밀가루 베게빵을 많이 지원했는데 오죽하면 서해갑문 건설공사에 동원된 북한군 군인들이 서해갑문은 빵으로 만들어 졌다고 할 정도였다.

북한은 온갖 무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해갑문 완공시기를 두 차례(1985년 4월 15일, 1985년 10월 10일)나 연기한 끝에 1986년 6월 24일 완공하였다.

한편 서해갑문은 현재 북한에서 ‘노동당시대의 대기념비’로 선전되면서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주요 참관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김민세 기자(신의주 출신, 2005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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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미친 소리예요. 미친 소리”
노대통령 비판

[고뉴스 2006-03-08 11:20:31]

(고뉴스=김성덕 기자) 철학자 도올 김용옥 교수가 전북 부안군 새만금 방조제 공사와 관련, 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주 재개될 예정인 새만금 끝막이 공사에 반대해 현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 교수는 8일 SBS라디오 진중권의 시사전망대와 인터뷰를 갖고 노 대통령의 판단력을 문제 삼았다.

김 교수는 “천성산 터널 문제도 그렇고 여태까지 환경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보면, 그런 문제들에 대해 최고 통치자가 갖고 있는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특히나 새만금 같은 문제는 산에 터널 뚫는 문제하고는 몇 만분의 일과도 비교가 안 되는 문제다. 왜 거기에 대한 판단이 없는 거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욕을 먹더라도 터널 뚫어줄 것은 뚫어주고, 뭐 하나는 확실하게 ‘이것은 안되는 겁니다’라고 국민들을 설득시켜 가면서 새만금 문제라도 하나 해결해나갔으면…이제 진보의 축이라는 것이 이제 환경의 축 밖에는 없다”며 “그런데 진보-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환경 문제에서 여기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여기 쑤시고 다니고 저기 쑤시고 다니고…해결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앉아서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그것은 무능력이고, 타성이고…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강한게 비판했다.

또,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 마을의 숲과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힌 것에 대해 김 교수는 “미친 소리예요. 미친 소리”라며 “자기 퇴임하기 전에 이런 거 하나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그 사람은 생태를 운운할 자격도 없죠. 이건 절대 용서 못 받는 사건이예요”라고 직설적 어조로 노 대통령을 성토했다.

현재까지 공사비 1조9천억원이 투입된 상황에서 중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현재 방조제 공사를 굉장히 잘 된 공사다. 그런데 가장 밑바닥의 폭이 290m나 된다. 그러면 그 위에 다가 크게 33km되는 도시를 건설한다고 하면 양면이 바다이고, 정말 환상의 도시가 된다”며 “그것의 면적이 맨하탄보다 훨씬 넓다. 이렇게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방조제에 돈을 더 들여서 멋있게 만들고 더 멋지게 쓰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갯벌만을 살리기 위해 시화호의 비극을 다시 살리지는 말자는 것”이라며 “우리가 자식을 낳으면 그 얼마나 귀한가? 백합조개도 자식을 낳으면 그것이 귀하지 않겠나? 모든 생명의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종교 정신이 썩고, 우리의 철학은 어디가고, 문화는 어디가고, 예술은 어디 가고-대체 갯벌을 죽여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냐? 정말 다시 한번 국민들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우리가 지금 생각할 것은 사회의 질서만이 아니라 정의로운 인간이 돼야 한다. 민주주의에는 정의로운 민주주의 뿐 아니라 실제적인 민주주의도 있단 말”이라고 하면서 “내용이 있는 그런 진정한 민주주의를 해야 한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진보와 개혁이라는 축이 살고, 국민 전체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올 “노대통령,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 발언 파문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6-03-08 10

지난 6일 오후 새만금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에 반대하는 도올 김용옥 교수가 전북 부안 새만금 방조제 제2공구 현장을 방문해 포크레인위에 올라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06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새만금 개발 반대 1인 시위를 통해 참여정부의 환경정책에 쓴소리를 마다않고 있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발언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참여정부 핵심세력인 386세대에 대해 “정치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한데 이어 8일에는 노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면서 “자격도 없고 영원히 저주 받을 사람”으로 표현해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오전 ‘진중권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마을의 숲과 생태를 복원 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거 미친 소리다”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당장 자기 있을 동안에 국민들을 위해 (새만금 개발)이런 거 하나라도 잡아놓지 않으면 그 사람은 생태를 운운할 자격도 없고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며 “퇴임은 무슨 얼어죽을 퇴임”이라며 특유의 막말을 퍼부었다.

김 교수는 새만금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절대 용서 못 받는 사건”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전 해야 할 사안으로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전북 도민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북의 자동차 생산라인 유치를 들면서 “갯벌을 살리고 어민을 살리면서 (논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타협을 봐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은)재직기간에도 충분이 할 일이 많고 이러한 것에 확고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욕을 먹더라도 뭐 하나라도 확실하게 하면 된다”면서 “아무것도 없이 앉아서 절차주의만 한다면 무능력과 타성을 보여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던 김 교수는 이어 전라북도의 지역 관료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지역 관료들이 너무 썩어 빠져가지고 비전도 없고 세웠던 계획마저 관료주의에 빠져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개자식들”이라는 강경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김 교수는 “내가 여기까지 와서 왜 시위를 했는지 그들은 정말 이유를 모르는 것이냐”면서 “국민들이 피땀흘려서 만든 세금을 가지고 관료들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이날 김용옥 교수와 인터뷰를 마친 진중권 진행자는 “방송중에 격한 소리를 했는데 청취자들이 이해를 바란다”며 사과했다.

문윤희 (jazz@dailyseop.com)기자





마르떼
본문 중에서

"노 대통령은 기념탑 전망대로 올라가 서해갑문을 내려다본 뒤 고 김일성 주석이 기념 촬영했던 장소에서 권 여사와 기념촬영을 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가 김일성 주석이 사진을 찍은 자리냐. 김일성 주석처럼 폼을 잡아 보라는 겁니까”라고 말한 뒤 권 여사에게 “분위기 있게 팍 기대세요”라며 포즈를 취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노 대통령은 또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 “자, 김용옥 선생, 서해갑문을 보니 좋은 구상이 떠오르시느냐”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어 “우리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겠다”며 경제인 등 특별수행원 대여섯명씩과 차례로 기념촬영을 했다. 노 대통령은 서해갑문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라고 쓰고 서명한 뒤 주위의 남북 관계자들에게 “박수 한번 쳐달라”고 말한 뒤 행사를 마무리했다"
 200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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