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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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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시스템칼럼] 정책실명자 없는 빅딜을 중단하라

19990303   [지만원의 시스템칼럼] 정책실명자 없는 빅딜을 중단하라

신정부 1년의 화두는 단연 빅딜(기업맞교환)이다. LG그룹 회장이 청와대
독대를  마치고 돌아와 반도체 빅딜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배
순훈  정보통신부 장관과 관계 공무원이 빅딜에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관직
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글쎄, 정부는 빅딜에 간여 조차 하지 않았다고 발
뺌을 하는 모양이다. 빅딜의 주체는 유령이란 말인가?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빅딜정책에 정부가 실명으로 등록되기를 거부
한다면, 훗날 빅딜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겠다는 사전 포석이 아닌
가?  정부는 빅딜정책의 주도자가 누군지 정정당당히 밝히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당장 중지해야 한다. 멀지 않은 장래에 국민은 빅딜의 원흉(?)을
찾아내려  하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는 기막힌 현상을 맞이할 수 있다.

  빅딜은 경제개혁 메뉴에 들어 있어서도 안되는 파행이며, 제대로 이뤄질
성격의   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경제 교란 행위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애물단지다

  빅딜의 근본 취지는 중복투자를 없애자는 것이다. 껍데기만 합친다고 이
미  중복 투자된 자원이 회수되겠는가? 정부는 경제성 없는 중복투자가 왜
이제까지  가능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효율성은 '자원의 희귀성'에
서부터  싹튼다. 인력과 자금이 얼마든지 있는데 누가 효율성을 위해 고생
하겠는가?  경쟁이 치열할수록 시장과 자원을 여럿이 나눠 갖는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영능력이 발달돼 있다. 일본 경쟁력의 원동력은 치열
한   국내경쟁이다. 1986년도에 14개였던 반도체 업체 수가 지금은 30개를
육박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들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반도
체 업체들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경쟁은 치열할수록 좋은 것이다. 한국기업의 문제는 경쟁의 치열성에 있
는  게 아니라 방향에 있다. '효율성 경쟁'이 아니라 '몸집불리기 경쟁'이
었다. 한국기업들은 왜 엉뚱한 방향으로 경쟁해 왔을까? 은행에서 돈을 얼
마든지 얻을 수 있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인력이 남아돌고, 정경
유착에  의해 경쟁이 방해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이
렇게 가까운 데 있었다.

  첫째,  은행이 돈을 통제하고 둘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주고 셋
째,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넷째, 투명성에 대한 감시 시스템만 만들면
기업은  '효율성 경쟁'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이 네 가지 시스템만 해결
해  주면 빅딜을 하든, 경쟁력 있는 회사로 태어나든, 업체들이 스스로 알
아서 할텐데 왜 정부는 극히 원시적인 발상을 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몇 개의 빅딜을 보자. 철도차량 제조업체가 세개다. 한개의 업체가 도맡
아 해도 부족한 정부 물량을 세개 업체가 과당경쟁해 왔다. 인력과 공장설
비가 3중으로 투자돼 있기 때문에 담합행위가 유발됐고, 차량 단가는 턱없
이 비쌌다.

  빅딜에  의해 이 세개 회사가 하나가 됐다. 통합 사장실이 생겼지만, 이
는  공중누각이다. 인력, 장비, 시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세개 회사 모
두  적극적으로 뛰지 않는다. 돈쓸 데가 있어도 서로 미룬다. 내 살림이냐,
네 살림이냐 식이다. 항공 3사의 통합도 마찬가지다.

  삼성자동차를  산 사람들이 많다. 생산이 중단되면 부품조달이 어려워진
다.  이 손해는 누구로부터 보상받는가? 앞으로 2년간만 더 생산한다는 말
이 있다. 2년 또는 5년 이후 생산이 중단될 자동차를 누가 사려 하겠는가?
이런 것이 바로 권력의 파행성이다.

  정부가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스케이트를 배우려는 두 초보자가 있었
다.   중심을 잃었을 때, 한 초보자는 판단이 빨라 즉각 넘어졌다. 그러나
다른  초보자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미련하게 안간힘을 쓰다가 엄청난 부상
을  당해 병원으로 갔다. 빅딜에 관한 한 정부는 위험한 헛수고를 하고 있
다.   더 이상 저항하다 국가를 얼음판 위에 메어치지 말고 당장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빅딜 대상 기업에 고용도 보장해주고 돈도 대주고 있다. 개선되
는  게 아니라, 비효율성만 유발된다. '효율성 경쟁'을 위한 위의 네 가지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미래의 효율성도 없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빅
딜을 하는가? 빅딜 대상 기업은 부실기업이다. 정부는 허락도 없이 국민에
게  빚을 지우며 부실기업에 국민돈을 대주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 노동
자는 물론 이들에게 돈을 꿔주는 은행에까지도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가 유
발되고 있다. 저항하지 않는다 해서, 너그럽고 계산에 어두운 국민에게 보
이지 않게 빚을 지우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
데 왜 개혁세력들은 자기들의 제한된 시각만을 고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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