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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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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시스템칼럼] 대통령의 균형감각

1999.09.08

[지만원의 시스템칼럼] 대통령의 균형감각

9월 6일자 한국일보 3면에 DJ와 타임지와의 회견 내용이 소개됐다.

  "식사 때 음식이라도 남길 경우 식량난을 겪는 북한 형제들의 고통을 생
각하며  몹시 괴로워한다.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대북지원  추진에 애를  먹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
혔다."

  이   말의 자간을 읽으면 그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가 담겨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국민에게 북한주민에 대한 긍휼심이 없다는 데 대한
못마땅함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쌍한 북한을 도와주지 못하게 길을 막
고  있는 국민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일 것이다. 억센 본처와 청순가련한 애
첩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남자의 처지를 연상시키는 충격적인 기사였다.

  연초에 일간지들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북한이 제발 도와달
라고  한마디만 하면 금방 비료를 갖다 줄텐데."  일본과의 협상에서 정부
는 우리 어민들에게 어장을 잃게 했다. 쌍끌이 어선들이 일자리를 잃고 분
노했다. 3천척의 어선들이 남아돌게 됐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보도가 있기
무섭게 정부는 그 어선들을 북한에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았다. 얼마나 슬펐겠는가. 그런데 그
감정들을  헤아리기는 커녕, 김종필 총리는 국회에 나와 남는 장비들을 뜯
어다 북한에 설치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연간 3억달러이상의 현금을 합법적으로 북한에
건네주려  한다. 이로 인해 현대는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은 결국 국민 부
담이 될 게 뻔하다.

  KEDO를  통해 북한에 50억달러에 해당하는 핵발전소를 지어주고 있지만,
거기에  추가해 한전은 평양에 3억달러에 상당하는 화력발전소까지 지어주
고,  5천만-6천만달러를 들여 북한에 송전선을 건설하여 남한 전기를 공급
해주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미국에게 대북경제제재
를 철회해주라고 설득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을 바라보며 우리 국민은 과연 현정부가 남한국민에
대해서도 저렇듯 애틋한 정과 열성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된
다. 우리에게도 불쌍한 국민들이 많다. 현재는 거의 모든 실직자들에게 공
공근로비를 배급해주지만, 이런 돈은 영원히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내
년 선거가 끝나면 그들에게 줄 돈도 바닥이 날 것 같다. 그런 돈이 북한에
까지 간다면 우리 실직자들은 그만큼 더 빨리 밥을 굶게 될 것이다.

  고엽제  환자들도 5만명이나 된다. 월남파병은 한국경제 부흥의 초기 원
동력이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위험수당을 국가가 사용해서 비료공장과 발
전소를  짓고, 포항제철과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그들 때문에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었고, 그래서 그 돈이 경제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가 그들을 부를 때, 그들은 국가를 믿고 나가서 싸웠다는 사실이
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몹쓸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
리며 처참한 모습으로 아픔의 순간들을 깨물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그 병
을  유전으로 대물림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그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
다.  북한에 대한 보도는 많아도 고엽제 환자들에 대한 보도는 별로 없다.
보훈원호병원에서 제공되는 최소한의 치료마저 거절당하고 있다.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새까맣게 썩어들어갔는데도 당국은 그것이
어째서 고엽제 때문이냐며 고엽제 판정을 내려주지 않는다. 한국의 의료과
학이 얼마나 발전했다고 그 기술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목숨바친 애국자들
을  또 한번 울린단 말인가.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미국 의사들도 월남에
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들이 아프면 무조건 고엽제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장병들은  월남에 최소한 1년이상 참전했다. 그 사람들이 고엽제 비
슷한   증상으로 아프다면 무조건 고엽제 피해자로 감싸줘야 한다. 그런데
당국은  이들과 시시비비를 따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은 무
슨   생각을 할까? 앞으로는 국가가 부를 때 요령껏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이후의 전쟁은 누가 나가 싸울 것인가. 고엽제 환자를 냉
대하는 것이 과연 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길일까.

  100억원의  돈이 정부에 있다면 그 돈이 고엽제 환자에게 먼저 투입돼야
할 것인가, 또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혀온 집단이요, 휴전선에
서 총부리를 마주 겨누고 있는 적대집단인 북한으로 가야 할 것인가.

  그런데   연간 4천억원 정도의 빳빳한 현금을 북한으로 보내면서 고엽제
환자들을  방치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신정부 들어
우리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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