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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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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은 한밤중/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아침을 열며)

[세계일보] 1995-09-14 (해설) 칼럼.논단 05면 2541자

9월4일 오후 5시,LA와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비행기가 김포에 도착했다. 빙빙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승객들이 둘러서서 자기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에 한 세관직원이 컨베이어벨트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아무개씨」를 애타게 부르고 다녔다. 찾는 손님이 나타나자 그는 은밀히 안내해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다음엔 또 다른 세관직원이 나타나더니 아예 컨베이어벨트의 중앙대 위로 올라가 또 다른 승객의 이름을 드러내 놓고 외쳐댔다. 세관직원들이 특정 승객의 이름을 부르며 필사적으로 찾고다니는 것은 그의 상관으로부터 각별히 대우하라는 엄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서있는 동안만 해도 세명의 세관직원이 각기 세사람의 승객 이름을 부르고 다녔다. 이렇게 수배(?)당한 승객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이들은 사전에 약속된 검사대로 안내됐다. 이들의 짐은 형식적으로 검사됐다. 이러한 손님 뒤에 멋모르고 서있던 승객들은 세관직원으로부터 다른 검사대로 줄을 옮겨서라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명령(?)을 받았다.
이들 중의 90%는 세관직원과 짜고 장사를 하는 교포들이다. 골프채,사치품,약품들이 무사통과된다. 다른 승객들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이들과 결탁돼 있는 세관 간부들의 이름은 미국 교포사회에서 이미 드러나 있다. 세관원들의 부정은 문민정부들어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 통론이다.
세관직원들이 이런 짓을 마음놓고 하기 위해서는,다른 승객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각기 자기 발등의 불을 끄는데 여념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승객들을 너무한다 싶을만큼 죄인시한다. 옆에 있던 교포청년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단지 값이 나간다는 이유로 빼앗겼다. 어느 한 부부는 수입이 자유화된 값싼 양주 세병을 가져오다가 한병을 빼앗겼다. 빨래감까지 흔들어 대고,하찮은 물건도 무어냐고 일일이 물어댄다. 공포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다.
세계의 여러나라를 돌아다녀 봐도 김포공항만큼 사람을 인격이하로 대하는 곳은 없다. 외국에서 기분이 좋았다가도 김포공항의 세관만 통과하면 기분이 상한다. 다른 나라의 세관을 통과하고 나면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만히 서있어도 세관원들이 상냥하게 안내해 내보내주기 때문이다. 그 많은 여행을 하면서도 외국에서는 단 한번도 가방을 열어보인 적이 없었다.
김포공항에 내릴 때에는 기체에서부터 기분을 잡친다. 「그 음산한 얼굴, 그 저질 매너를 또 당해야 하나」하는 생각에서다. 기체내에서 작성하는 세관기록 용지도 공포감을 주고 있다. 외국에서 구매한 물건의 합계가 30만원이상이면 일일이 품목을 기록하고,사실과 다르게 기재할 때에는 처벌된다는 공갈형 문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30만원이면 4백달러정도의 돈이다.
옛날처럼 선물을 한짐씩 가져오진 않더라도 외국에 나가면 티셔츠 몇개와 이웃에 나눠줄 몇개의 값싼 선물들쯤은 사게 마련이다. 이렇게만 해도 1천달러가 금방 날아간다. 4백달러 이상의 쇼핑을 한 사람들은 자연 주눅이 든다. 비현실적인 세관시스템이 국민성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품목을 일일이 기록했더니 세관직원의 말이 다음부터는 쓰지 말란다. 기록하면 봐주기가 곤란하고 행정만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4백달러 기준이 불합리하고 유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수입이 자유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수입권한은 특정 수입업체에만 주어지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턱없이 비싼 값으로 수입품을 사쓰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수입제품이 외국에서는 30%의 값에 팔리고 있다. 싸길래 한개씩 사다보니 4백달러가 넘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나쁘다고 신고하라는 것인가. 이제 국산품 애용이라는 말은 없다. 국산품을 애용해준 결과가 무엇이었나,국민은 바가지가격 때문에 삶의 질을 박탈당했고,기업은 국제경쟁력을 잃게 되었을 뿐이다. 수입이 자유화된 상품을 개인용으로 한개씩 해외에서 구매하는 것은 조금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지금 세관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19세기식 먹이사슬이다. 옛날의 재무부는 국가보다는 재무부의 이익을 앞세우기로 유명했다. 재경원은 말로만 세계화를 외쳐댈 것이 아니라 세관에 대한 시스템과 문화부터 선진화시켜야 할 것이다. 해외출장과 해외나들이가 늘어나는 이 시기에 그 많은 외국인과 국민의 기분을 세관직원들이 상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기분상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어떻게 좋아지겠는가. 재경원은 계수관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환경과 문화를 바꾸는 일부터 착안해야 할 것이다.
세관문제는 김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부산과 인천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파견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공무원들의 짐에 대해서도 세관원들은 돈을 받는다. 드러내 놓고 돈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통관시간을 미루고 통관검사를 세밀히 할 것처럼 서슬퍼런 표정을 짓는다. 돈을 주면 뜯어보는 척만 하고,돈을 주지 않으면 모든 짐을 산산이 풀어헤친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고 포장하는 데 드는 시간과 불편함을 감안한다면 아예 세관직원에게 50만원쯤 집어주는게 편하다는 것이다. 공무원들 한테도 이러한데 일반국민들에게는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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