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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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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파행’ 6조 율곡사업 (포럼)

[문화일보] 1997-11-19 (해설) 칼럼.논단 06면 2191자

문민 초기의 율곡감사는 율곡간부들에게 면역만 길러줬다. 청와대에는 군을 아는 참모가 없고, 율곡 파행을 억제해왔던 특명검열단이 이양호 전 국방장관에 의해 소리소문없이 해체되자 노회한 율곡간부들이 때를 만났다. 군은 지금 6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4개사업들을 어느 한 업체로 몰아주기 위해 ‘투명성’과 ‘공개경쟁’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원칙을 무시하면서 밀실에서 날치기 처리하고 있다. 문제의 사업들은 비호사업, 잠수함사업, 경전투헬기사업, 대형수송함사업 등으로 한보비리에 버금가는 정권 말기의 군비리로 의심받고 있다.
파행의 정도를 살펴보자. 비호사업은 사거리 2.5㎞의 30㎜ 기관총을 장갑차위에 얹는 무기사업이다. 비호사업비는 2조원이며 이 무기의 단가는 37억원이다. 기관총 단가가 2억원, 장갑차 단가가 15억원, 전자장비 단가가 20억원이다. 그야말로 새총을 탱크위에 달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이 무기사업은 전직장관과 군출신 야당의원에 의해 6년간 적극 저지돼왔으나 2년전에 소문없이 밀실에서 다시 제기됐다. 북한은 우리 국방비의 25%를 쓰면서도 ‘서울 불바다 무기’를 만들어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데 한국군은 ‘특정기업’과 손잡고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잠수함 사업을 보자. 잠수함 사업은 전두환 대통령의 정치적 배려에 의해 특정기업에 할당됐다. 그 기업은 독일의 HDW사와 기술협약을 하고 단기 2억달러 규모의 1천2백t급 잠수함 9척을 2001년까지 ‘조립’하게 됐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도 ‘턱없이 비싼 가격’때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정기업 밀어주기’잡음
해군은 대양함을 갖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해왔다.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여론은 해군에 힘을 모아주었다. 그 결과 군의 공식 소요문서에는 3천t급 대양형 잠수함 6척이 반영됐다. 그런데 6척의 3천t급 잠수함이 충분한 명분과 해명절차 없이 6척의 1천5백t짜리 연안 잠수함으로 둔갑돼버렸다. 군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오던 ‘군무기체계 소요’와 ‘대양해군’의 꿈이 한순간에 바뀐 것이다. 또 다른 2조원 사업을 ‘문제의 특정기업’에 밀어주기 위해서다.
HDW사에는 군이 새로 구비하려는 1천5백t급 잠수함이 없다. 따라서 1천5백t급 잠수함은 새로 개발돼야 한다. 거기에다 아직은 성능이 증명되지 않은 AIP라는 공기무급 동력추진장치를 달겠다 한다. 1천2백t급 함과 1천5백t급 함 사이에는 성능상의 차이도 현격하지만 개발상의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1천5백t급 사업은 ‘개량사업’이 아니라 완전한 ‘연구개발사업’이다.
비록 특정기업은 1천5백t급 잠수함의 단가를 3억2천만달러로 예측하지만 개발 성공 여하에 따라 단가는 턱없이 오를 수 있다.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다. 그러나 프랑스와 스웨덴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1천5백t급 최신형 잠수함을 단가 2억달러에 제의해왔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군은 이러한 제의를 매우 못마땅해하고 있다. 그 특정기업을 미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방해 요인이란 두 가지다. 하나는 군 내부의 반대여론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와 스웨덴 그리고 또 다른 국내기업이 ‘기술적으로 확실한 잠수함’을 대당 1억달러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공개경쟁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은 이러한 두 가지 방해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규정을 고치고 있다. 1974년 이래 율곡사업은 두 가지로 분류돼왔다. ‘신규사업’과 ‘개량사업’이다. 군은 처음에 1천5백t급 사업을 개량사업으로 분류했다. 그래야 ‘특정기업’과 수의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기정권으로 넘겨야
그러나 이것이 군내부의 반대여론에 부닥치자 국방부는 ‘기술도입+국내건조’라는 신조어를 무기체계 획득 규정에 추가했다. 즉 1천5백t급 잠수함은 ‘신규사업’도 아니고, ‘개량사업’도 아닌 ‘기술도입+국내건조’사업이라는 것이다. ‘기술도입’이기 때문에 이미 1천2백t급 기술을 도입한 ‘특정기업’에만 자격이 있고, ‘국내건조’이기 때문에 프랑스와 스웨덴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행도 파행 나름이다. 군의 이런 파행은 치졸하고 파렴치한 것이다. YS정권은 5조원 이상의 은행돈을 ‘한보’로 밀어주고 꼬리를 감췄다. YS정권은 또다시 정권 교체를 불과 한두달 남겨두고 급하지도 않은 6조원 사업 모두를 ‘특정기업’으로 몰아주려 하고 있다. 또 다른 미증유의 율곡사업 의혹의 불씨를 남기지 말고 모든 사업은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날치기사업에 총대 맨 간부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져야 한다.

  지만원/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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