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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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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한보사태’ 막으려면 (포럼)

[문화일보] 1997-02-24 (해설) 칼럼.논단 06면 2162자

1982년 영국에서 대형 쾌속 여객선 사고가 발생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출발한 배가 급회전을 하면서 많은 승객들이 익사한 참사였다. 재판에서는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를 조사했지만 행정부는 참사의 재발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에 몰두했다.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 결과 오늘날 국제산업표준규격(IS) 9000의 모체가 된 영국시스템표준규격(BS) 5750이 탄생했다. 영국정부는 병원 학교 보험사 공장 정부기관 등 모든 공익조직에 사고예방은 물론,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향상을 위한 시스템 개발을 의무화했다.
○안전시스템 강구를
우리 정부는 수많은 사고를 당하면서도 검찰이 나서서 눈가림식 조치만 취했지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김영삼 정부는 단순한 거시경제 지표에 의해 경제를 조작해내려만 했지 경제의 장에 기본 인프라 시스템마저 설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45∼59년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잉여농산물 등을 시중에 팔아 세출예산으로 사용했다. 이 자금의 상당부분을 정치인 관료 은행장 기업인이 나눠 썼다. 이렇게 빼내간 돈은 그 다음해 다시 세출예산으로 충당됐다. 지금의 한보사건도 반세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때는 원조예산으로 적자를 메웠지만 지금은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사실만 다르다. 경제 시스템에 인프라를 설치하지 않는 한 국제경쟁에 자신이 없는 기업이 속출하게 되고 그 결과 한보현상이 속출할 수 있다.
최소한 6개의 기본 인프라가 필요하다. 첫째가 공인회계사의 독립이다. 공인회계사는 기업정보의 신뢰성과 파행경영에 대한 가장 확실한 파수꾼이다. 그러나 한국 공인회계사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업체나 공인회계사에게 모두 기업감사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한국의 경우 공인회계사가 업체의 잘못을 지적하면 업체는 얼마든지 다른 공인회계사를 선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업체가 약자의 입장에 서있다. 공인회계사는 고객업체의 회계자료 생산시스템의 건전성부터 평가한다. 자료산출 시스템에 신뢰성이 있으면 소수의 샘플자료를 가지고도 업체자료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수임료가 싸게 부과된다. 그러나 신뢰성이 없으면 많은 거래를 일일이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수임료가 부과된다.
수임료 때문에 분쟁이 일면 다른 공인회계사들도 그 업체를 고객으로 맞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미국의 공인회계사협회(AICPA)는 고도의 도덕률을 가지고 공인회계사 및 업체의 파행을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공인회계사협회는 퇴직 공무원들이 차지하고 있어 정부의 시녀에 불과하다.
○공인회계사부터 독립
두번째 시스템은 증권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위한 시스템이다. 우리의 증권시장은 불법적인 조작이 횡행하고 있다. 그래서 소액주주들의 권익이 침해받고 있다. 증권감독원이 있지만 이 역시 정부의 시녀로 눈치 보기에만 바쁘다. 미국의 경우 증권감독원(SEC)은 일반국민에게까지 가장 서슬푸른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규칙과 법적용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은행의 독립성 보장이다. 선진국에서는 은행마다 사회적으로 독립된 저명인사와 주주들로 구성된 15명정도의 신탁위원회를 둔다. 15명이라는 숫자는 야합할 수 없는 다수다. 은행장도 여기에서 선출된다. 그래서 은행장은 정부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다. 대규모 대출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도 여기에서 한다. 그래서 은행장 마음대로 비리를 저지를 수 없다.
넷째, 기업간 ‘결제정의’의 실현이다. 미국의 경우 90일이 지나도 대금을 갚지 않는 업체는 수금대행기관에 위탁되고 일단 접수된 업체는 신용불량업체로 은행대출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섯째, 정부에 예산보호 및 효율성증진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정부예산은 네돈이냐 내돈이냐식으로 낭비되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1달러 소비로부터 1달러 이상의 가치창조’라는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역대 미국 대통령이 취했던 조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여섯째, 감사원이 지금의 행정부 시녀로부터 독립해서 국회로 이관되고 지금의 취조기능을 경영진단 기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랬다면 한보 사태는 국회 감사원에 의해 저지됐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경제는 마치 레프리 없는 권투경기처럼 시스템 없이 굴러가고 있다. “한국은 여건이 달라 안된다”고 생각하는 한 비전은 없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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