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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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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시스템칼럼] 쉬리와 타이타닉

19990414   [지만원의 시스템칼럼] 쉬리와 타이타닉

'쉬리'가  한국시장에서 세계인의 명화 '타이타닉'을 앞질렀다니 축하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의 상당 부분은 한국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격
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쉬리가 작품의 질에서 타이타닉을 능가했
는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모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쉬리를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영화가 국내 관객수를 가지고 자만에 빠질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군사평론가협회  간부들이 쉬리를 관람하고 말했다. "드라마틱하거나 감
동적이지는 않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이리저리 얽어맨 것 같아 개운치 않
다"는 게 요지였다. 그들은 쉬리를 타이타닉에 비교한다는 건 한참 무리라
고  말했다. 필자는 군사적 측면에서 평가해보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쉬
리를 관람했다. 극장문을 나서는 필자 부부도 그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오는 길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타이타닉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본다는  게 세  번이나  보았다.  집없는 3류 인간
'잭'이  아무런 열등의식없이, 상류사회 규범 속에  얽매어  숨막혀  하는
'로즈'라는 한 여성의 영혼을 자유세계로  이끌어낼  수 있었던 힘이 시원
하게 전개됐다.  인생을 통념과 인습에 구애받지 않고 티없이 살아가는 한
청년의 자유정신이  자아내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이 때로는 대담하고
때로는 섬세하게 화면을 지배하면서 시종 공감과 감동을 자아냈다.

  '아미스타드'라는  흑인 노예선에 대한 비디오테이프도 함께 빌렸다. 역
시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이었다. 노예를 변호하는 젊은 변호사의 열정과
창의력이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것은 훗
날  미국의 제9대 대통령이 된 헨리 해리슨이라는 거물급 의원의 변호과정
이었다. 이 테이프 역시 필자는 세 번이나 보았다. 그런데도 또 보고 싶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쉬리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쉬리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만 몇 개 추려보자. 최고의 정보요원 이
장길이 '죽은 물고기' 속에서 도청기를 찾아내고, 북한이 내려보낸 총잡이
가  바로 이명현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그녀의 집안으로 혼자 들어
가 "당신이 정녕 내 친구를 사랑했느냐"며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해내다 방
에 숨어있던 북한 대대장에게 사살된다. 최고 정보요원이라면 그녀의 집에
혼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요원들로 하여금 생포케 한 다음 국가정보원
지하실에서나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주연인  유중원이 이명현의 정체를 알았을 때, 그 역시 요원들을 동원해
그녀를 먼저 생포했어야 했다. 그래야 CTX라는 비밀무기로 인한 또다른 피
해를 예방할 수 있었고, 그녀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방치
한  채, 제주도로 날아가 한가하게 바닷가에 앉아 또다른 전설같은 이명현
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보요원에게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잠실운동장에서   유중원과 박무영이 대화를 나눴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이 두 사람의 입을 통해 나타내려 했지만, 이 역시 어설펐다. 적지에서 임
무를 수행하는 북한 요원은 불과 5~6명에 불과했다. 다급한 그들은 유중원
이 운동장 통제실에 들어왔을 때, 그를 먼저 포박하고 언제 몰려들지 모르
는 또다른 남한 요원들에 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가하게 두 사
람이 벌이는 대화를 지켜보다가 역전패를 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명현은 저격용 총을 검은 승용차들을 향해 한동안 이
리저리  겨누고 있었다. 유중원은 그녀를 향해 시종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총을  가진  다른 요원들도 이명현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중원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녀를 덮치거나 그녀의 총
을 쏘아버렸어야 했다.

  CTX  호송차가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을 때, 그 터널과 도로에는 다른 차
량들이  전혀 없었다. 비현실적이다. 북한 요원들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지
를  뻔히 알면서도 몇몇 요원들이 들어가 총격전을 벌였다. 이는 비상식적
이다. 먼저 포위한 후에 마취용 가스탄을 투입했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몇 명의 특수요원들이 서울에서 그 정도의 대담한 폭파
행위와  총격전을 벌이고도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
고, 그녀와 1년동안 동거한 주인공이 그녀가 여러 차례 액션의 주인공으로
활동했는데도 그녀의 정체를 몰랐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CTX로 잠실운동
장을 날렸다 해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가정도 비현실적이다. 유중원과
이명현과의 로맨스에도 감동적이거나 드라미틱한 장면이 없었다. 군사적인
면에서나 감동적인 면에서 한국영화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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