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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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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의 시스템칼럼] 금융기관에 주인을 찾아주자?

금융기관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이들이 많다.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재
벌총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총수는 과연 기업의 주인인가. 한보, 청
구, 동아, 진로, 삼미 등 수많은 기업에 기업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주
인(?)들은 기업을 이용해 은행돈을 빌리고, 그 빌린 돈에서 뒷돈을 빼내갔
다.  근로자들이 벌어놓은 돈도 빼돌렸다. 그리고 기업은 빚투성이의 걸레
로  만들어 국민부담으로 던져버렸다. 이들이 과연 기업주인가. 은행에 주
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럴 수 있는 기업주에게 은행을 맡기자
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시스템에 의해 경영되는 것이지, 기업주에 의해 경영되는 것
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제부터 없어져야 할 낱말은 기업주라는 단어다. 부
친으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은 사람이 사장으로 앉았다. 수많은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친구에게 전무직을 맡겼다. 믿었던 전무는 부자가 됐고, 사장
은 거지가 됐다. 기업과 사장은 망해도 전무는 망하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라면  시스템만 믿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이러한 사장을 보호하고 부도덕
한 전무를 견제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 는 기막힌 난센스를 바로잡기
위한  유일한 길은 주식회사의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바꾸는 길 뿐이다. 주
주진, 경영진, 공인회계 3자간의 견제와 균형관계에 의해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면서  합리적인  경영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짜야 한다. 회사당 주주
진에는 두 사람 이상의 가족이 들어있어서는 안된다. 족벌체제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골목가게에는 주인이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주인은 다수 집
단이다. 이는 서양에서나 한국에서나 원칙적으로는 똑같다. 단지 한국에서
는  주식회사  운영시스템이 파행적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불과 5％내외의
주식밖에 갖지 못한 총수라는 한 사람이 수십개 기업의 주인이다. 이는 세
계적인 웃음거리다.

  대기업  총수들의 전횡을 예방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를 거론했지만, 총수
들은  만만한 사람들만 사외이사로 임용했다. 소액주주들에게 권리를 스스
로 신장하라고 말하지만, 소액주주들은 총수들이 동원한 물리력에 의해 회
의장에 조차 참석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들에게 무슨 정보와 힘이 있어 의
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일은 아직도 정부가 기본적인 시
스템에  대해  착안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개혁의 핵심은 이러한
근본적인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지, 빅딜이나 살생부와 같이 인위적인 칼
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내 은행들은 대부분의 주식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 지난 주
에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진행한 기업들에게 호의적인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그  자체가 관치금융이다. 관치이기 때문에 은행이 진 빚은 모
두  정부가 갚아주었다. 국민의 돈이었다. 인사권도 정부가 쥐고 있다. 돈
을 잘못 대출해준 간부들은 정부가 처벌한다. 퇴출은행도 정부가 퇴출시켰
다.  '보이지 않는 손' , 즉  '시스템' 에 의해 이뤄진 것은 단 하나도 없
다.

  금융의 악순환을 차단하는 방법은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시스템의 핵심은 은행마다 15명내외의 공신력
있는  사계  인사를 선발해 감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시
시정개혁자문위원으로  나가고 있다. 수많은 위원회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
고 있지만, 비교적 합리적으로 인선이 이뤄진 서울시 시정개혁위원회는 많
은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이런  위원회를 은행마다 설치하면 금융문제는 즉시 해결된다. 은행장도
이들이  선발한다. 이들에 의해 선발된 은행장은 정치권의 간섭을 받을 필
요가  없다. 설사 받았다 해도 은행장의 독단은 통하지 않는다. 15명의 감
시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외부
경영분석팀을  고용해  은행의 경영상태를 분석한 다음, 이에 따라 인사를
단행한다. 이렇게 하는데 어찌 은행이 나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애국심 없이는 집권당이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스스로 내놓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방송위원회 위원선발을 놓고 여당이 보여준 행동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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