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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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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무원으론 미래가 없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무슨 개혁운동이 있을 때마다 가장 앞장서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다. 모든 개혁은 시스템의 변화로 종결돼야 한다. 하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시스템 개선 능력이 없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앞에 나서서 일하는 체 하거나 충성을 맹세하고 다니는 일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1993년6월 건설부는 건설협회를 포함한 직능단체에게 의식개혁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달했다. 공문은 건설부 의식개혁 운동의 청사진이었으나 그 내용들은 일과성 정훈 교육에 불과했다.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등 건설 5 개 단체를 상대로 기업윤리를 강조하며 완벽시공 의식을 함양시키자는 것들을 내용으로 했다. 이를 추진하는 방법은 네 가지였다.

간담회, 워크숍, 세미나를 통해 경영진의 솔선 의식을 유도하고 결의대회, 캠페인 등을 통해 홍보활동을 강화하며 전문기관에게 교육프로그램 작성을 위탁하고 책자, 만화 등의 시청각 교재를 만들어 업체에 배포하자는 것들이었다.

2개월간의 준비단계에서는 계획을 세우고, 6개월간의 개혁추진 단계에서는 Top-Down 식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실천 결의 운동을 확산시키며 마지막 정착단계인 94년 1월부터는 모든 건설인에게 의식개혁 실천운동을 지속시키겠다는 것으로 돼 있었다.

실천내용을 보면 건설단체 임원 100명을 대상으로 하는 3회의 간담회, 200명의 협회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1박2일간의 워크숍 1회, 업체 임직원 1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1회의 강연회, 각 단체별 결의대회, 년 3회의 부실방지 세미나, 하도급 부조리 척결 순회교육, 가나안 농군학교 집체교육, 외부인사초청 정신교육, 언론매체 이용한 캠페인들이 전부였다. 이를 위해 수 십억 원의 돈을 썼다.

의식개혁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사이에 건설부 민원 담당공무원은 뒷돈을 받았다. 5백만 원의 뒷돈으로 수 억 원의 공사를 딸 수 있는 데 여기에 유혹 받지 않을 건설업체는 없다.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건설세계에 많이 있다면 구태여 한국에서 국민의식이 문제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개혁에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 그 돈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에 사용돼야 할 것이다.

한국 건교부는 먹이사슬의 기관차 역할을 담당해 오면서 건설업계의 부정과 비리를 조장해 왔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한국 건설업체의 기술을 낙후시켰다는 사실이다.

먹이사슬에 탐닉해 오는 동안 26,000여 개의 건축 면허업체 모두를 적자에서 허덕이게 했다.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연명해온 건설업체들에게 기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나 여력이 생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술개발로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유착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러한 건축업계의 현실은 건설부가 만든 세상이었다. 영정도 신공항을 건설하는 데있어 한국 건설업체는 부가가치 낮은 시공만을 하청 받을 수 있게 됐다. 부가가치 높은 설계와 감리에는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한국업체가 없다.

건교부 공무원과 업체가 밀착하여 대형공사를 건설하는 데 있어 감리 기능은 오히려 골치 아픈 존재였다. 한국에서의 공사 치고 날림 아닌 공사가 없었다.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유착관계에 의해 공사가 이뤄져 오는 동안 한국에 감리 기능이 성장될 리 없었다. 이렇게 해서 영정도 공항의 감리 기능은 외국업체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모자라 건설 공무원들은 지금도 암암리에 상납을 받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지금도 암암리에 대출 커미션을 주고 있다. 건축허가를 얻어내려면 8개의 정부기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납을 해야한다. 담보능력과 섭외능력을 갖춘 업체라야 은행대출이나 입찰과정에서 얼마간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건설업체별 도급순위에 따라 기득권 업체를 지정해 줌으로써 대형업체 카르텔 시스템을 음성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없어지지 않는 한 권외업체들은 타인면허를 사용하거나 권내업체들로부터 하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도급 비리와 타인면허 사용에 대한 프리미엄 비리는 사라질 수 없게 될 것이다.

미국에 사는 어느 한 개인이 집을 짓겠다고 신청했다. 시 건축담당관은 그 지역 전체를 주거지역으로 선정해야 할 지에 대해 위원회 심사에 회부했다. 위원회는 마치 지방법원에서 배심원을 선발하듯이 지역주민들로 구성됐다.

일단 그 지역이 주거지역으로 설정되면 그 다음부터의 민원서류는 서류전형으로만 허가된다. 맨 처음으로 신청한 사람은 개척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미국에서는 개인도 집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지을 때에 시 담당자는 하수처리 시스템과 전기 및 공사안전 문제에 대해 자문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에는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민원인 하나 하나를 별도로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로 방침을 정하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시스템이지만 건축비리가 있을 수 없다.

의식을 바꾸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반복해야 정부의 의식이 개혁될까? 한국기업이 외국기업에 패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선진국 기업은 시스템이 내는 파워를 이용하는데 반해 한국 기업은 사람 하나 하나의 콩가루 효과만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기업주들이나 정부의 개혁주자들이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움직임은 없다.

200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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