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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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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35제(24) - 군대개혁, 군에 맡기지 말자

과제 18.  군대개혁, 군에 맡기지 말자

―――
     IMF위기를 넘기기 위한 재원은 군사비밖에 없다. 미국도
     그랬다. 지금 군이 추진하는 모든 율곡사업은 3년간 중지
     돼도 대북 억지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
      15조의 군사비 중 11조는 운영유지비다. 이는 경직성 경
      비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야말로 예산절약의 보고다. 후방
      행정조직을 통합군으로 만들고 군수 및 예산제도를 개선
      하면 20만 군과 연간 5조 정도의 예산이 절약된다.
―――
      국방비의 85%가 군수라는 관문을 통한다. 그런데 보병출
      신 4성장군은 군수를 모르고, 군수 3성 장군들은 부정에
      찌들었다. 그래서 군대개혁은 장군출신이 해낼 수 없다.

  군대개혁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분
명 ‘고봉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숫자가 많으면 전투력이
강해지고 숫자를 줄이면 전투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인 것
이다. 군대개혁은 왜 해야 하는가. 뼈대보다 군살과 비계가 너무
많아 오히려 전투력을 반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행정을
처리하고, 하나의 부대를 기동시키는 데에도 너무나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지금의 한국군이다.

  군이 이렇듯 살집만 키운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장군출신들이 국방장관을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군이 장교들
의 일자리로 전락해왔기 때문이다. 장군출신 국방장관은 왜 군대를
개혁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군을 과학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능력
과 시각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은 지난 50년간 군사주권을 미국에 위탁했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역대 국방장관들은 ‘개혁’을 외면했다. 그래서 안보가 형편없
이 취약해졌고 천문학적 국방비가 낭비되고 있다. 국방비 15조3천
억원은 정부예산의 22%에 해당한다. 이중 11조의 운영유지비는 불
필요한 군살조직으로 인해 낭비되고, 4조의 율곡사업비는 정경유
착에 의해 탕진되고 있다.

  ‘국방비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장군들의 최대 관심사는 장
군 자리 늘리는 데 있다.’ ‘북한이 쳐들어오리라고 생각하는 장군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렇듯 부패할 수 있단 말인
가. 그들은 부패하기 위해 국민에게 겁을 주고 있다.’ ‘안보의식이
가장 결여된 집단은 바로 군이다.’

  이러한 말들에 논리적 이의를 제기할 장군은 없을 것이다. 수많
은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발견된 사례들만 시정해도 국방비는
연간 15조에서 10조 수준으로 절약될 수 있다. 군에 널리 방치된
장비와 물자를 조사하면 또 다른 10조 이상의 율곡예산이 탕진됐다
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재고관리에 철저한 미국군도 사장된 재고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
금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대통령의 명령이 없
는 한 이런 일을 스스로 벌이지 않는다. 설사 대통령의 명령이 있
어도 자기들끼리 팀을 만들어 은닉하고 축소할 것이다. 군이 대통
령을 속인 예는 허다하다.

   한국군의 적정선은 얼마이어야 하나. 저자의 훈련된 직관으로는
30만 군사력과 10조원의 국방비가 적정선이다. 지금의 군사력은
68만, 국방비는 15조 3천억이다. ‘대안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과장이 아니다.

  계룡대는 육 ․ 해 ․ 공군 본부가 들어있는 시설이다. 이는 한사람
의 중령급 장교가 이끄는 소부대만으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데도 각 군별로 준장급 장교가 이끄는 3개의 맘모스 부대에 의해
층수별로 관리되고 있다. 계룡대보다 훨씬 큰 과천 ‘종합청사단지’
도 부이사관이 관리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해보자.

    군수부대를 보자, 통합된 1개 사령부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육 ․ 해 ․ 공군이 제각기 군수 사령부와 정비창, 창고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시설들을 제각기 만들이 3
중으로 운영하고 있다. 통신을 보자. 육 ․ 해 ․ 공군 통신이 하나로
통합돼야 통합전력을 빠른 속도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
하고 각 군은 별도의 통신감실, 통신사령부, 정비공장, 야전부대를
두고 있다. 강릉에 있는 육군 레이더에 고장이 생기면 이웃 해군이
나 공군부대가 수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정비부
대나 방산업체에 수리를 요청한다.

  이런 식의 부대와 시설만 정리해도 군은 앉아서 20만 인력을 절
약할 수 있고, 연간 5조원 이상의 운영비를 절약할 수 있다. 아이러
닉하게도 이렇게 축소 ․ 통합해야만 군수나 통신이 수백 배 빠르고
일관성 있게 지원될 수 있다. 각 군별로 따로 유지하고 있는 학교의
수도 매우 많다. 이들이 통합되어야 30년 전의 미국교리를 반복하
고 있을 만큼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군사교육에 시너지 효과
를 불어넣을 수 있다.

  지금은 ‘소수정예 과학군’ 시대다. 지금처럼 ‘오합지졸에 불과한
금살집단’으로는 인민군에 3일 전쟁감일 뿐이다. 어차피 전쟁 억지
력은 주한미군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지금부터 한국군이 피나는
노력을 한다 해도 10년 이내에는 변하지 않는다. 한국군이 무질서
한 낭비를 줄이고 미군 없이도 북한 군사력에 맞설 수 있는 최소한
의 변신을 하려면 주한미군이 안정적인 우산을 드리워주고 있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미국의 역대 국방장관들은 자리에 임하자마자 국방비부터 삭감
했다. 국방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과학적 개혁도 주도했
다. 미국군은 레이건 이후 세 차례에 걸쳐 200만의 군을 140만으
로 축소하고, 1980년도에 3,000억 달러였던 국방비를 지금은
2,500억 달러로 축소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40% 정도의 축
소인 것이다.

  중국도 두 차례에 걸쳐 300만 군사력을 200만 이하로 축소했다.
대만도 30%의 축소를 통해 소수정예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
독 한국군만 ‘변화의 무풍지대’이다. 육군을 보자. 미국 육군은 50
만이다. 영국 육군은 11만, 이스라엘이 13만, 일본이 15만, 이탈리
아가 17만,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20만씩이다. 그러나 한국 육군은
57만이다. 이들 육군 중 어느 나라 육군이 한국 육군보다 약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인민군보다 4배의 예산으로 무얼 했나

  문제의 심각성은 인민군과의 비교에서 나타난다. 인민군 육군은
90만이다. 군은 북한에 비하면 아직도 숫자가 모자란다고 말하지
만 대만은 불과 33만 군으로 200만 중국군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거기에다 대만은 우리처럼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우산 아래 들어
있지도 않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질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질적
인 면에서도 인민군과 비교가 안될 만큼 떨어져 있다.

  첫째, 장교들의 질적 격차이고 둘째, 훈련과 정신력의 격차이고
셋째, 전략 ․ 전술 ․ 교리 및 전장 경영시스템상의 격차이고 넷째,
인민군은 전략무기를 고루 갖춘 전략군이지만 한국군은 위력 없는
전술무기로만 구성된 전술군라는 사실에 있다.

  전술군은 아무리 많아도 전략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이렇듯 처음부터 패러다임이 잘못 잡힌 한국군에 지금처럼 아무리
많은 국방비를 투입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만 붓는 격이 되고 만다
는 데 있다. 국가 자체가 누란의 위기에 빠진 지금 이렇게 의미없
는 천문학적 낭비를 계속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바로 여기에 착안
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성격이 이렇듯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군에는 스스로 칼을
들어 군을 개혁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도 없고, 주먹구구식
군사경영을 과학경영으로 바꿀 만한 실력을 가진 세력도 없다. 한
국경제의 구조개혁을 IMF라는 외부의 외과의사가 할 수밖에 없었
던 것처럼, 군의 개혁도 군 외부세력에 의해 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방비는 72%의 운영비와 28%의 투자비로 분류돼 있다. 국민들
은 군사력을 축소하지 않는 한 72%의 운영유지비는 줄일 수 없는
경직성 경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군이 퍼뜨린 고정관념이다.
사실상 11조의 운영유지비는 6조원 규모로 축소될 수 있다. 육군은
57만명이지만 실제 전투력은 31만명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싸우면
300만으로도 무너진다. 그러나 방법을 과학적으로 시스템화하면
20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

  미국이 걸프전으로 전쟁 물자를 수송하는 데에도 엄청난 수학이
동원됐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수송계획이
었다. 그리고 그 소프트웨어에는 미국 최고의 수학이 들어 있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는 군에 무슨 수학이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군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미
국군이 만일 이렇게 생각했다면 미국군도 지금 한국군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군에는 이런 수학자팀이 없다. 그래서 해군은 대당 1억 3천
만 달러짜리 대잠수함 초계기를 8대씩이나 수입해서 엄청난 운영
유지비를 물고 있지만 이는 하나의 폼으로만 전락해 있다. 군은 이
를 가지고 잠수함은 탐지하지도 못하고 운전만 하고 다닌다. 이는
마치 X-레이 장비와 촬영기사만 마련하고 필름을 판독해서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마련하지 않는 식의 코미디다. 이것이 한국군의 돈
쓰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군수뇌에는 첨단과학장비를 구입해 활용
할 수 있는 자질이 없는 것이다.

  ‘군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집단이다.’ 이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말은 없다. 그러나 한국군에게 이 말은 의부의 간섭을 배제
시키고, 내부적으로는 편하게 안주하기 위해 내세워온 말이다. ‘군
은 보수 세력이어야 한다.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한다.’ 이 말은 군
스스로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위용 어구이다.

  군은 새로운 과학지식의 출입이 막혀 있는 우리 사회 최고의 폐
쇄집단이다. 장교들은 자기발전 노력을 자극받지 못하고 우리 사회
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퇴화돼가고 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군에
들어가면 쓸데없이 바쁜 업무와 위로부터 강요되는 왜곡된 상식에
차츰 물들어 버린다. 군에서 많은 세월을 보낼수록 이들의 상식은
더 많이 왜곡되고 경색된다.

  그래서 사회에 나와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국가가 자기들의 단
물만 빨아먹고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불평한다. 이는 미국군 장교들
과 비교할 때 정반대 현상이다. 미국 예편장교들에 대한 사회적 인
기는 매우 높다. 특히 군수장교 출신들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화된
군수환경 때문에 더욱 인기가 있다.

  국방경영 현대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맥나마라 장관도 군수
중령 출신이다. 반면 한국군 장교 중에서 가장 퇴화된 장교들은 군
수장교들이다. 군수업무를 발전시켜보려는 군수장교는 거의 없다.
그래서 군수분야에는 시스템이 없다. 시스템이 훌륭해야 장교도 훌
륭해진다. 배울 것도 없고, ‘자극제’도 없는 문화권에서 ‘어떻게 하
면 내게 이익이 되느냐’라는 가장 단순한 기준에 따라 10년, 20년
을 일하다 보면 사고방식은 형편없이 낙후된다.

4성 장군은 피상적 사실만 잘 아는 원주민

  군이 왜 이렇게 허술할까. 군 수뇌들이 걸어온 길을 보자. 어린
나이에 소위로 임관해 전방에 배치됐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다음
진급과 다음 보직이 거의 전부였다. 지금의 군 조직은 1950년대에
미군사 고문관들이 소총전투를 위해 만들어준 조직이다. 지금까지
양적 팽창만 해왔지 질적 팽창은 없었다. 그들은 이 조직을 세상의
전부로 알았고 30년 전 교리가 전장경영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해
왔다. 선진국 군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알지 못하
고 자랐다.

  군이 백지 한 장만큼 크다면 4성 장군이 걸어온 길은 그 백지 위
에 꼬불꼬불 그려진 가느다란 선에 불과하다. 그래서 4성 장군도
군을 모른다. 군 수뇌부의 시각이라 해봐야 바로 이렇게 형성된 편
협되고 짧은 시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장교들이 군을 메우고 있
기 때문에 군의 과학화는 지난 30년간 메아리에 불과했다.

  군의 과학화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는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다. 과연 군 장성들이 국방관리와 군 운용의 전문가인가. 절대
로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실만 많이 아는 ‘원주민’일 뿐이다.
이론을 알아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다. 4성 장군들에게는
문제 해결능력이 없다. 군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렇
지만 그 어느 장군도 문제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지
금 한국군에는 문제가 쌓여만 갈 뿐 해결하는 사람이 없다.

   미군을 보자. 국방성 인력의 98%는 민간 전문가들이다. 전략 및
전술은 누가 만드는가. 시스템 분석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만든다.
군은 이를 배워서 현장을 지휘할 뿐이다. 마치 병사가 내일의 전투
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오늘 싸워야 하듯이, 내일 군이 싸
워 이기기 위해서는 오늘 과학자들이 군을 만들고 운용방법을 개
발해주고 훈련시켜주어야 한다.

  과학과는 거리가 먼 보병 4성 장군이 국방관리와 전장경영이라
는 고도의 과학 분야를 주먹구구식으로 휘어잡게 하는 선진국은 없
다. 그러나 한국군에서는 4성 장군이 최고다. 아무리 배짱 좋은 분
석가라도 4성 장군에 맞서다가는 그날로 끝장이다. 그래서 문제가
은닉되고 발전이 정지됐다. 지금 전방에는 승패에 결정적인 문제들
이 노출을 꺼린 채 산적해 있다.

  IMF위기에 대해 군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① 신규사업 모두를 최소 3년간 동결해야 한다.

② 달러 지출을 내용으로 하는 사업은 전면 축소 또는 지연시켜
   야 한다. 방산업체에서 달러로 지급되는 사업도 이에 포함해
   야 한다.

③ 전투부대를 제외한 육 ․ 해 ․ 공군 35만의 모든 지원 및 행정
   부대들은 통합군으로 통합돼야 한다. 적어도 20만은 절약될
   것이다.

④ 전투부대 통합은 개념과 수리공학적 분석 결과에 따라 선방어
   개념에서 광역단위 거점방어로 전환해야 한다. 광역단위 야전
   군 통합사령부와 상황실도 설치되어야 한다.

⑤ 율곡사업은 전면 재조정되어야 한다. 이는 절대로 군에 맡겨
   서는 안 된다.

⑥ 외부 전문가들로 한시적 팀을 만들어 전 군에 걸친 재고조사
   를 해야 한다. 아마도 10조 이상의 율곡자산이 방치돼 있을
   것이다.

⑦ 방위산업에 대한 확실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
   단가보다 저렴할 때만 국산화하고, 계약도 확정가로 해야 한
   다. 모든 사후정산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확정가 계약이란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일단 가
   격을 정하면 변동시키지 않는 붙박이 가격에 의한 계약이다.
   반면사후 정산제란 일단 만들어보고 거기에 소요된 합법적인
   비용을 군이 사후에 확인해서 정산해주는 계약방식이다. 이는
   낭비와 부정의 온상이었다. 지금은 냉전시대와는 달리 돈만 있
   으면 어느 나라의 무기를 살지 모르는 세상이다. 따라서 수출
   이 전제되지 않은 첨단장비는 절대로 국산화해서는 안 된다. 값
   이 2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⑧ 군수 및 예산관리 시스템의 현대화 작업이다. 군이 11조의 운
   영유지비를 쓰고 있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낭비가 있다. 시스
   템만 현대화되면 연간 4~6조의 예산이 절감될 수 있다.

증발되는 달러예산을 막아라

  1996년 군은 군수물자 수입을 위해 35억 달러를 썼고, 율곡 장비
를 수입하느라 또 다른 30억 달리를 썼다. 군은 방산업체에 원화를
주지만 업체는 그 대부분을 달러로 바꿔 조립부품을 수입한다. 일
반물자 구매비 35억 달러 중 10억 달러는 조달청을 통해 수입했고,
나머지 25억 달러는 조달본부에서 직접 수입했다. 이 모두에서 수
십억 달러의 외화가 증발되고 있다.

  조달본부는 외국 생산업체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중간상들만 상
대했다. 품목당 두 개의 중간상이 한 세트를 이룬다. 한국 중간상
은 조달본부를 상대하고, 교포 중간상은 미국 생산자와 미군 창고
를 상대한다. 미군이 쓰다 남은 잉여 군수품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품목당 두 개의 중간상이 정상적인 마진만 챙기더라도 문제는 크
다. 그런데 이들이 착복하는 마진은 정상가의 수배에서 수백 배에
이른다. 교포 말로는 부르는 게 값이다.

  조달본부가 왜 직접 생산업체나 미군을 상대하지 않는지는 간단
하다. 첫째는 번거롭게 일하기 싫다는 것이고, 둘째는 담당자들이 외
국 업체들을 직접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며 셋째, 중간상을 통해야 국방비를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보기에는 정정당당한 ‘경쟁 입찰’이지만 경쟁 입찰에는 오퍼상들
만 모여들고 생산업체는 차단되었다. 생산업자들에게 비즈니스 편
지를 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정상가를 알아보려는
노력도 생략한다. 그 많은 달러를 시스템 없이 쓰는 것이다.

  공군 훈련기의 경우를 보자. TEE라고 표시된 부품은 생산업체
단가가 63달러였는데 조달본부는 124배 가격인 7,900달러에 2개
를 구입했다. CONTACT라고 표시된 부품은 단가 75센트였는데
420배에 해당하는 315달러에 300개를 구입했다. PIN이라 표시된
부품은 단가 16센트였는데 31배에 해당하는 5달러에 400개를 구
입했다.

  수송기의 경우를 보자. CP라고 표시된 부품은 단가 569달러였
는데 25배에 해당하는 14,365달러에 2개를 구입했다. SUNVISOR
라고 표시된 부품은 단가 527달러였는데 15배에 해당하는 7,871
달러에 4개를 구입했다. CABLE ASSY라고 표시된 부품은 단가
176달러였는데 18배에 해당하는 3,250 달러에 4개를 구입했다.
PANNEL이라 표시된 부품은 단가 7,964달러였는데 10.5배에 해
당하는 84,264달러에 구입했다.

  이러한 식의 지출은 조달본부가 구매하는 전 품목에 대해 한결
같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바가지를 썼는가는 ‘중간상에게 지불한
가격’과, ‘생산자 가격’을 비교하면 쉽게 파악될 수 있다. 실무자들
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이 비밀을 지켜왔다.

   어느 한 의협심 있는 조달본부 직원이 그가 맡은 1,500개 부품
가운데 315개를 집중 조사했다. 이 315개 품목에 대해서만도 그는
1,100만 달러 중 330만 달러를 절약했다. 중간상을 제치고 생산자
로부터 직접 구입했기 때문에 절약한 돈이다. 그는 그의 성공방법
을 확산시키려고 ‘공격적 절약을 위한 개선안’을 만들어 내부회람
을 돌렸지만 눈총만 따갑게 받았다. ‘줄줄이 목날아가는 꼴 보고 싶
으냐.’는 것이었다.

  준장급 외자부장과 소장급 차장에게 개선안을 보고했지만 소용
없었다. “가만히 좀 있어.” 그는 하는 수 없이 96년 12월에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두툼한 건의서를 냈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청와대 직
원이나 감사원 등에 조사를 시키기는커녕 그 건의서를 국방장관에
게 회송했다.

  결국 그 직원은 3성 장군인 조달본부장의 미움을 사 이부서 저
부서로 쫓겨 다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구정물 일으킨다.’ ‘입찰질
서를 문란 시키는 놈이다.’ ‘오퍼상들한테 맞아죽으려고 작정했나.’
바로 그 직원이야말로 조달본부장감이다.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을 믿은 것이 그와 그 가족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이렇듯 무능한 사람이 청와대 수석에 앉아있으니 나
라꼴이 이 모양이지.’ 이 글이 나가면 그는 조달본부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국방장관이 1급수 고기에 비유되는 그 깨끗
한 직원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모든 국민이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달러예산 낭비 메커니즘

  육 ․ 해 ․ 공군 ‘군수요원’들은 매년 수리부품 리스트를 작성하여
조달본부에 구매를 의뢰한다. 국내에는 대략 100개 정도의 수리부
품 전문 오퍼상들이 있다. 업체당 매년 적게는 수만 달러에서, 많
게는 수천만 달러씩 가져간다. 이로부터 얻는 마진도 적게는 정가
의 수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씩이나 된다.

  수리부품만 취급하는 조달본부 구매요원은 1인당 1,000~l,500
개씩의 부품을 취급한다. 수송기, 함정 등 장비별로 수리부품 리스
트에 재고번호, 파트번호, 구매물량이 표시된다. 이들 리스트는 한
국경제신문과 코리아헤럴드에 공고되고, 조달본부 민원상담실 게
시판에도 부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퍼상들은 이미 각 군 ‘군수요원’과 연결되어
미리 손을 쓴다. 경쟁이 시작되면 미국의 매 생산업체마다 여러 개
의 오퍼상들이 줄을 이어 가격정보를 문의한다. 교포 오퍼상과 연
결을 맺은 더러의 생산업자는 특정 오퍼상에만 정상가를 알려주고
다른 오퍼상들에게는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알려준다. 특정업체를
이기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어떤 품목은 종전에 10달러에 구매했는데 갑자기 1만 달러에 오
퍼가 들어온다. 이상한 것은 다른 중간상은 나타나지 않고 오직 한
개 업체만 응찰을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사명감 있는 조달요원은
수요군의 군수요원에게 ‘이 턱없이 비싼 부품을 꼭 사겠느냐’고 확
인하지만, 군수요원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린 돈은 따지지 않는다.
부품이 없으면 중요한 장비가 움직이지 못한다.’

  교포 중간상 중에는 자기 혼자서만 확보하고 있는 부품 리스트
를 수요군 군수요원에게 제공한다. 두 사람 모두 이 부품이 ‘불용
품’임을 알고 있다. 단지 야합을 위해 구매한다. 이 목록도 조달본
부 구매 리스트에 포함된다. 이런 경우는 부르는 게 값이다. 각 군
창고를 조사해보면 사놓고 불출되지 않은 이런 부품들과 사용되지
않는 율곡장비들이 즐비할 것이다. 만일 새 정부가 외부 전문조사단
을 편성해서 각 군에 사장되어 있는 품목을 찾으면 10조는 넘을 것
이다.

  율곡예산에서의 낭비규모는 이보다 더 크다. 장관을 포함한 율곡
간부들은 매년 산더미처럼 내려오는 예산을 헐어내기 위해 불요불
급한 무기를 사잰다. 잘못 선정된 무기마다 업체들이 무섭게 경쟁
한다. 업체와 야합한 간부가 특정 업체를 코치하여 ‘낮은 제안가격’
을 써내게 한다. 일단 업체가 선정되면 그 ‘낮은 제안가격’은 참고
사항도 안 된다.

  계약제도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정가 계약(fixed
price)이고, 다른 하나는 ‘원가정산제 계약(cost reimbursement)이
다. 전자는 마치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는 것처럼, 계약시에 한번 정
한 가격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구매하는 계약제도이고, 후자는 계약
시에는 가격을 정하지 않고 있다가 업체가 제조과정에서 합법적으로
만 지출한 비용이면 모두를 사후에 보상해주는 계약제도이다.

  따라서 전자는 업체가 모험을 부담하는 것이고, 후자는 군이 모
험을 부담하는 것이다. 후자는 주로 연구개발 사업과 F-16 사업처
럼 업체가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아 가격을 사전에 정할 수 없는
대상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방산업체가 납품하는 장비는 99%가 ‘확정가 계약’ 대
상이다. 그러나 군은 거의 모든 물자에 대해 ‘원가정산제’를 적용하
고 있다. 200여명의 원가정산 요원을 배당하여 모든 품목에 대해
‘원가계산’을 시킨다. 직접비만 계산하면 간접비는 거기에 일정률을
곱해준다. 그래서 업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직접비를 부풀린다.
같은 부품을 3배 비싸게 수입하면, 방산업체의 마진도 3배로 커진
다. 망국적인 행위다.

  지금도 업체는 원가정산을 통해 납품가를 받고 있다. 그 가격의
50%~80%가격으로 확정가계약을 체결하자고 하면, 모든 업체가
환영할 것이다. 문서를 한 짐씩 지고 조달본부를 드나들며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의 게임을 하는 것이 지긋지긋한 것이다. 확정가를 채
택하면 업체는 스스로 경영개선을 통해 많은 이윤을 남기려 노력
한다.

  과학경영 제1의 대상인 군수를 모르는 4성 장군들이 군 개혁을
주도하면 노회한 군수인들에게 금방 현혹되어 버린다. 군 개혁은 반
드시 외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군구조의 개조 방법

유사기구 통폐합, 지휘체계 단순화, 군사령부 해체. 이 3가지는
군이 여론에 밀릴 때마다 내놓는 단골 메뉴였지만 언제나 여론 호
도용이었다. 국방비 15조 중 11조는 운영유지비다. 이는 경직성 경
비로 알려져 있지만 IMF 위기탈출 자금을 뽑아 쓸 수 있는 노다지
분야이다. 비대하고 중복된 군 구조는 낭비요인이기도 하지만 전투
순발력을 해치는 암적 존재이다. 군은 유사 이래 개혁의 무풍지대
였다. 군의 돈쓰는 방법은 석유병을 채우기 위해 드럼통을 쏟아붓
는 식이다.

  군은 ‘개조’되어야 한다. 조직과 경영을 과학화하고 전투능력을
배증해야 한다. 이 2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소
수정예 과학군으로의 개조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첫째는 과학
을 배척하면서 기득권을 굳혀온 4성 장군들에게 과학군에 대한 비
전이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군 문제는 4성 장군이 가장 잘 해결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다.

  비전문인들은 ‘병력수를 줄이면 전투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비과학적 고정관념 때문에 군이 무자극 지대에서 병들어
왔다. 70만 군의 절반인 35만은 비전투 요원이다. 이들은 하나의
‘국방부대’로 통합되어야만 백익(百益)인데도 불구하고 각 군에 3중
으로 중복돼 있다. 불필요하고 비경제적인 부대도 많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는 후방부대들은 단 3개의 사령부로 통
폐합되어야 한다. ‘국방교리훈련 사령부’ ‘국방물자 사령부’ ‘국방전
자통신 사령부’다. ’국방교리훈련 사령부’ 밑으로는 각 군에 산재한
모든 교육기관들을 통폐합시켜야 한다. ‘국방물자 사령부’ 밑으로는
개발, 조발, 품질검사, 군수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유사 조직들
을 통폐합해야 한다. 통신이 일원화되면 전투력은 백배 증대된다.
이를 ‘통신의 곱하기 효과’라 부른다. 과학전의 꽃인 전자전 능력도
통신 분야다. 이 중요한 분야마저 군은 단지 나눠먹기를 위해 영세
화시켰다.

  전국에 널려 있는 방대한 군수부대들은 병과별 조직에서 전문분
야별 조직으로 재편해야 한다. 전문분야란 보급, 정비, 수송의 세
분야다. 예를 들어 보자. 보급에서의 핵심은 재고통제다. 재고통제
의 핵심은 품목마다 ‘언제’ 주문할 것이며, ‘몇 개를’ 주문할 것인가
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고등수학이지 부속품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원주민적 병과지식이 아니다. 군수를 원주
민 지식에 맡겨왔기 때문에 부정이 만연됐다. 군 예산 중 봉급만
빼면 모두가 군수예산이지만 4성 장군들은 군수를 모른다.

  전쟁이 나면 합참의장은 할 일이 없다.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8
군 상황실을 기웃거릴 뿐이다. 각 군 총장도 할 일이 없다. 작전권
도 없는 총장에게 무기체계 소요권을 주었으니 총장을 ‘오퍼상’이라
부르지 않는가. 군은 야전사령부를 해체하겠다지만 불필요한 것은
군단이다. 동부지역을 생각해보자. 동부에는 육군의 1군 사령부와
해군의 1함대 사령부가 있고, 공군의 비행부대와 유도탄 부대들이
널려 있다. 인민군은 지역단위 육 ․해 ․공준 부대들을 하나의 상황
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지휘하지만, 한국군 부대들은 제각기 행동
한다.

  1군 사령부와 1함대 사령부를 포함해 동부에 뿔뿔이 산재해 있
는 육 ․ 해 ․ 공군 전투부대들을 하나의 지휘체계로 묶어야 한다.
‘’동부지역 통합군 사령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서부에도 해당한
다. 그는 하나의 ‘상황실’과 ‘시스템 수학으로 무장된 소수의 ‘작전
두뇌진’(OAG)만 갖고 나머지 행정은 모두 해체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식이다.

  이렇게 하면 첫째, 전투력이 몇 배로 향상된다. 그 부산물로 20만
인력과 연간 2조의 예산이 절약된다. 여기에 낙후된 예산 및 군수
관리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사후원가생산제라는 망국적 조달계약
제도를 바꾸고, 율곡 시스템을 개선하면 또 다른 4조가 절약된다.

  ‘전투부대를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 상태에서의 국방비 적정규
모’는 15조가 아니라 10조 이내이다. 일반 인식과는 달리 이렇게
해야만 전투력이 상승한다. 여기에 원시적 인해전술 개념을 과학화
하면 그 효과는 더 증폭된다. 작전을 과학화하면 율곡예산도 줄어
든다. 클린턴은 3년 내에 국방비를 40% 축소했다. 차기정부는 결
정해야 한다. 군을 개조할 것인가 또는 4성 장군의 고정관념에 내
맡길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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