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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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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만의 정보혁명

[정보의 초고속도로]가 구축되면 [천리가 지척]이 된다. 거리가 소멸되는 것이다. 미국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정보의 비포장도로에서는 음성과 데이타통신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정보의 초고속도로에서는 음성, 데이타, 비디오 그리고 영상 정보가 실시간 베이스로 유통된다.

미군은 ATM(Asynchronous Transfer Mode)이라는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 적진에 있는 시설물을 폭격하러 떠나는 조종사에게 시설물에 대한 입체영상을 각도에 따라 비춰준다. 시설의 위치, 고도, 주위환경, 접근로 및 퇴로, 레이다 및 대공포에 대한 정보를 포함해 조종사가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음성, 자료, 비디오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입체적으로 제공해 준다.

이는 반도체칩의 혁명적인 용량증가와 운용시스템(OS)의 고급화로 가능해지고 있다. 빌.게이츠의 혁명적인 기여는 바로 이 OS의 고급화인 것이다. 옛날엔 교육받은 사람들만이 복잡한 절차에 따라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OS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컴퓨터를 부릴 수 있다.

컴퓨터가 소형화, 고성능화의 길로 치닫고, 컴퓨터의 조작이 점점 더 용이해지며, 정보의 초고속도로가 구축됨에 따라 우리는 숫자나 문자로 표현되는 정보는 물론 비디오나 영상으로 전달되는 갖가지 정보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정보화된 한국사회]건설을 위해 외롭게 애쓰던 선각자들이 있다. 빌.게이츠가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빌.게이츠는 정보혁명의 반쪽만을 말해 줄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고속도로가 있다해도 그 위를 부가가치가 낮은 쓰레기차만 달린다면 고속도로의 건설비는 회수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까지 정보의 고속도로 자체에만 기대를 걸어왔을 뿐 그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무슨 정보를 유통시킬 것이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보의 [유통 시스템]에만 관심이 있었지 정보의 [생산 시스템]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기업체나 정부가 사용하는 정보는 가정주부가 부엌에서 알고 싶어하는 정보와는 다르다. 가정주부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어느 한 정보설계자의 상상력에 의해 기성복 식으로 표준화될 수 있지만 기업이나 정부에서 사용하는 정보는 목적에 맞도록 맞춤복 식으로 [생산]돼야 한다.

정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보를 마련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정보의 부가가치는 [유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있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예가 있다. 어느 정부부처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퇴근해 있는 공무원을 불러야 했다.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그 연락처는 옛날 것이었다. 정보의 고속도로는 돈을 주고 설치했지만 정보를 생산하는 데에는 무관심한 것이었다.

정보를 만드는 데에는 돈이 든다. 따라서 정보는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의사결정의 질은 분석의 질에 달려 있다. 같은 정보라도 분석가의 질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고급 분석가가 사용하는 정보와 저급 분석가가 사용하는 정보도 다르다. 따라서 정보에도 소요(requirment)가 있다. 무슨 종류의 정보를 필요로 하느냐는 바로 무슨 종류의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수만가지 품목을 다루는 유통회사에게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각 제품에 대해 [언제] 주문할 것인가와 [얼마]를 주문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매 품목에 대해, 몇 개 남아있을 때 주문해야 하며(when to order), 주문 시에는 몇 개를 주문해야 하는지(how much to order)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상식을 가지고는 내릴 수 없다. 또한 수만 가지에 대해 일일이 자료를 읽고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컴퓨터가 주문서를 작성해 주어야만 한다. 그 컴퓨터 속에는 수학과 통계학으로 무장된 분석가들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내장돼야 한다.

이들 수학모델이 필요로하는 정보를 [생산]해 내려면 행정양식과 절차가 현대적으로 고안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식들은 모두 인허가나 통제형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행정 량은 엄청나지만 진작 필요한 정보는 생산되고 있지 못하다.

부산과 서울 사이에 정보의 고속도로가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인접 부서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가로 놓여 있다. 같은 한국말을 사용하면서도 상급자와 하급자 간에 의사소통이 매우 어렵다. 부서와 부서 사이, 그리고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벽이 허물리지않는 상태에서 정보의 고속도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보화사회를 열려면 조직과 행정이 먼저 현대화돼야 한다. 사무원들과 결재자들이 앉아있던 자리는 정보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분석인들로 채워져야 한다. 정보의 고속도로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의 대부분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는 의사결정을 위한 것이며, 우리의 의사결정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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