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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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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35제 (1) - 낙후된 경제 엔진

1 . 낙후된 경제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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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력 없는 한국의 손끝기술을 가지고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 수 없으며, 기존상품은 점점 더 빨리 사양화되고 있다. 실업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WTO라는 강풍이 보호막을 걷어버리자 값싸고 질 좋은 외제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손끝기술과 파행경영이 외국의 두뇌기술과 과학경영에 첫 라운드에서 KO패 당하고 있다

한국적 파행의 제1주범은 정부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기업으로부터 검은돈을 챙겼다. 일단 파행 길에 들어선 기업들은 서서히 기업정신과 창의력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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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라는 초강풍이 기업의 보호막을 날려버렸다. 한국경제를 주도해온 대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바닥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은행은 기업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돈을 마구 대출
했다. ‘설마’ 했던 대기업들이 달러는커녕 원화조차 벌지 못해 줄줄이 도산했다. 은행과 대기업이 동반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엘리트를 자처하는 재경원은 IMF 신탁통치를 받는 그 순간에도 ‘한국경제의 기초(fundamental)는 튼튼하다’며 낙관론만 폈다.

그동안 대기업은 덩치 크고 이윤이 많이 남는 상품들만 다루어왔고, 중소기업은 기존의 구식제품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래서 한국시장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상품들이 없다. 이러한 시장에 물밀 듯 들어오는 다양한 외국제품들이 인기를 누리지 않을 수 없다. 들어오는 상품은 많고 내다 팔 상품은 별로 없으니 달러가 고갈되어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이디어만 짜내면 현재적 기술로도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지만 한국의 낙후된 ‘시장경제 시스템’과 ‘파행적 기업문화’를 가지고는 그러한 노력이 유도할 수 없었다. 파행적 폭리에 길들여진 기업들은 3공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무기력해져 가고 있다.

누군가가 잠자는 국민을 다시 깨워야 한다. 여기에 시스템 리더십이 절실한 것이다. 신뢰받는 지도자가 일선에 나서서 독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스템이 없으면 헛수고에 불과하다.

우선 시스템 상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기업 경쟁력의 원동력은 기술과 경영이다. 경쟁국들의 기술은 ‘두뇌기술’즉,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원가도 절감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기업의 기술은 OEM생산체제에서 길러진 ‘손끝기술’이다. 외국기업이 설치해준 공장에서 외국인들이 일러주는 방법에 따라 외국제품을 원숭이 식으로 만드는 기능공들의 기술인 것이다. 이러한 손끝기술을 가지고는 부가가치도 일자리도 창출할 수 없다.

우리의 대기업이라고 해봐야 미국이나 일본에서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조그만 중소기업으로부터 OEM하청을 받아 납품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대기업은 이렇듯 한심한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당장에 떼돈을 벌 수 있는 장사거리에만 눈이 어두워 기술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무엇을 개발하고 무슨 업종을 개발할 것인가를 연구하지 않고, 무엇이 잘 팔리는가에만 후각을 동원했다.

누군가 특정 제품으로 떼돈을 벌면 거기에 뛰어들어 출혈경쟁을 자행했다. 그러니 어찌 중복투자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이 한심한 현상은 천민자본가에 불과한 한국 재벌총수들의 철학 부재가 불러왔다. 수많은 사장들을 고용한 재벌총수들은 사장들의 업적을 ‘이윤의 크기’라는 단 한 가지로 평가했다.

이윤은 매출액에서 비용을 떤 것이다. 대기업의 도리를 지켜 가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1년 이내에 매출액을 올리고 비용을 절약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불가능해 보였다. 파행에 대한 유혹이 어찌 생기지 않겠는가. 바로 여기에 파행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시장경제 시스템은 파행에 대한 유혹 자체를 차단하고 있지만 한국의 시스템에서는 이러한 파행이 오히려 조장되어 왔다. 미국의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낡은 기술, 낡은 경영을 가지고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떼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구태여 기술개발을 위해 돈을 쓰고, 과학경영을 위해 면학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한국적 파행의 제1의 주범은 정부이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통해 기업으로부터 검은돈을 챙겼고, 세무공무원들은 검은돈을 받고 세금을 깎아 주었다. 이처럼 일단 파행 길에 들어선 기업들은 서서히 기업정신과 창의력을 잃어갔다.

틈만 나면 오 ․ 폐수를 몰래 방류해 버리는 경영자들이 어찌 그 비싼 기술두뇌를 고용할 것이며, 비싼 실험 장비를 살 수 있겠는가. 공무원들과 기업이 서로 얽혀 바람이 나있는 동안 기업이 만들던 기존상품들은 점점 더 빨리 사양화되어 갔다. 새로운 상품은 나오지 않고 기존상품은 사양화되니 실업자가 늘어날 수밖에 더 있겠는가.

한국경영의 퇴화과정을 보자. 선진국 기업은 오래 전부터 국제시장에서 경쟁해왔다. 그들에게 제품가격은 시장이 정해주는 가격이었다. 시장가격이 100달러이면 90달러에 도전했고, 90달러를 맞추기 위해 제품설계와 공정설계를 개선하고 경영혁신을 주도했다. 이를 가리켜 그들은 DTC(Design To Cost)라 칭했다. 목표원가에 설계를 맞춘다는 뜻이다. 그들의 과학적인 경영은 이렇게 해서 몸에 배었다.

그러나 한국기업은 제품가격을 그들 마음대로 정했다. 아무리 국제가격이 100달러라 하더라도 한국기업은 ‘비용이 많이 들었으므로 1,000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독점가격은 정부의 보호와 유착 아래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때가 대기업에게는 국민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었던 호시절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WTO라는 강풍이 이러한 보호막을 날려버리자 100달러짜리 수입품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한국기업이 외국기업과의 첫 라운드에서 KO패당하고있는 현실인 것이다. 손끝기술과 파행경영이 선진국의 두뇌기술과 과학경영을 어찌 당해낸단 말인가. 이를 가지고 우리 경제학자들은경제기초(fundamental)가 튼튼하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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