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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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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전화기 보조금 규제에 문제 있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한동안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단말기를 원가 이하로 판매했다. 너무나 싼값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가입자들까지도 무거운 단말기를 버리고, 가볍고 멋진 신형 단말기를 구입했다. 중고 단말기가 대량으로 폐기됐다. 배터리, 안테나 잭, 키 버튼까지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는 엄청난 외화의 낭비처럼 보였다. 여론도 그랬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6월 유예기간조차 주지 않고 단말기 보조 행위를 전격 중단 시켰다.

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얼마간의 외화를 절약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부터 오는 후유증은 가공스럽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최고의 단말기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그 명성이 송두리째 소멸되고 있다. 일단 자리를 내주면 회복하기 어렵다. 엄청난 투자에 의해 이룩한 정상의 자리를 과소비라는 일면만을 보고 남에게 내주는 것은 기막힌 일이다.

매월 130만대씩 팔리던 단말기가 고작 13만대씩 팔리기 때문에 부품 제조업들이 줄줄이 도산해가고 있다. 연간 40억 달러의 수출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연간 수요를 예측하여 부품과 소재를 구입해 놓았던 협력업체들은 8천억-1조원의 재고를 떠안고 기로에 서있다. 2만여 개의 부품 및 가공 업체 중 80%가 이미 문을 닫았고, 이들이 거머쥔 3개월 어음이 휴지화되고 있다. 1만8천 개의 대리점도 실직가 됐다.

사치품 수입, 여행경비 등 비경제적 과소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은 확대재생산을 위한 국민적 투자다. 단순 과소비는 그냥 두고 기술입국을 위한 투자행위를 중단시킨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단말기의 내수를 줄이면 무역적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조기반이 사라지면 수출도 사라지고 정보통신기반도 무너진다. 아무리 정보통신의 인프라가 훌륭해도 단말기의 발전 없이는 수시로 개발되는 컨텐츠를 수용할 수 없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국민이 단말기를 사용하게 된다. 단말기 산업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트리면 앞으로는 부품을 수입하는 게 아니라 단말기 자체를 수입해야 한다.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고, 더 높은 제조기술이 개발되고, 더 많은 컨텐츠가 개발되면 단말기 가격도 상승한다. 비싼 단말기를 완제품으로 수입하게 되면 국가경제와 기술기반은 어떻게 되겠는가?

고객의 권리도 무시되고 있다. 누구든 작고 가볍고 기능이 많은 신형을 선호한다. 무전기 같이 무거운 단말기를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은 과소비가 아니다. 아직도 쓸만한 386 컴퓨터를 버리고 586으로 바꾸는 것이 과소비가 아니듯이!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어째서 50만원 짜리 단말기를 단돈 10만원에 팔기도 하고 거저도 줄 수 있었을까? 통화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거저 많이 줄수록 이윤이 올라간다. 한국의 통화료는 선진국에 비해 너무 비싸다.

가입자가 많아질수록 통화료는 당연히 더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업체 편에 서왔다. 통화료를 내린다면 이윤이 내려가 사업자가 단말기를 거저 주지 못한다. 50만원 짜리 단말기를 10만원에서 20만원, 30만원으로 올리면 과소비(?)는 줄어들지만 가입자 수가 줄어 통화료가 더 올라간다.

정보통신 인프라를 증진시키려면 가입자가 늘어나야 한다. 지금까지는 가입자가 내는 비싼 통화료로 정보통신 기반투자를 부담해 왔다. 한국 정보통신의 발전을 위해서! 미국은 가정용 전화기는 물론 이동통신 단말기를 거저 준다. 이러한 성격의 문제를 놓고, 단지 단말기 과소비라는 도덕적 잣대로 경제 논리를 파괴하는 것을 옳지 않다. 잦은 정책 변화로 국외 업체들이 불만을 쌓고 있다. 안정성 없는 정책, 비논리적이고 즉흥적인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200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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