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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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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 정책의 허실

창원공단에 있는 H사는 독일 W사로부터 전차 부품을 단가 500만원에 수입했다. 그러나 그 부품은 이웃에 있는 D사가 제조해서 독일 W사에 단가 70만원에 납품한 것이었다. 7배의 돈을 앉아서 물어준 것이다.

서울에 있는 K사가 유도탄 부품을 개발했다. 군에 납품하려고 애썼지만 그 공문은 군의 이부서 저 부서를 3년간 돌다가 없어져 버렸다. K사는 이 부품을 미국에 수출했다. 한국군이 이를 미국으로부터 역수입해 왔다. K사는 대 당 10만원에 수출했지만 한국군은 그것을 역수입하는 데 대 당 200만원씩 지불했다. 앉아서 20배의 돈을 물어준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일반 상용제품에 더 많이 만연돼 있다.

이렇게 기막힌 사례에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이 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품질인증기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품질인증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국정부나 기업이 한국제품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외국은 품질인증 능력 하나 때문에 각각 7배와 20배의 돈을 앉아서 벌 수 있었다. 품질인증기구가 없으면 누구도 제품을 개발하려 하지 않는다. 성능을 모르는데 누가 개발품을 사주려 하겠는가. 따라서 한 나라의 개발능력은 품질인증 능력만큼만 발전할 수밖에 없다.

품질인증 능력을 키우는 일은 통상부 소관이다. 통상부 산하에 특허청과 공진청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 행정관들이 점령하고 있어 기술을 경영해야 한다는 본래의 기구설립 취지를 상실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중소기업의 성장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년간 1만건의 의장 특허가 제출되고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년간 7만 건이 제출된다. 미국은 비슷비슷한 의장특허를 모두 기각시키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비슷한 것을 가려내지 못한다. 의장특허를 행정직들이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에도 다른 부처처럼 인사, 행정, 총무 직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특허 심사관이다. 특별한 지식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보직순환에 의해서다. 따라서 인사권자에 대한 로비와 청탁도 대단하다.

이렇게 발령 받은 행정공무원들이 5년간 심사관으로 근무하면 변리사 자격증을 얻는다. 이들이 밖에 나오면 기술과 논리보다는 자연 전관대우의 특권에 의존하여 특허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특허행정의 악순환이다. 미술 및 도면 학과 출신들에게 의장특허를 관장케 하는 선진국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다.

대기업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품에 대해 수천 개의 비슷비슷한 의장특허를 확보해 놓고 있다. 그들 중에서 실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특허는 불과 5%이내다. 나머지는 중소업체를 얽어매기 위한 함정으로 이용되고 있다. 중소업체가 의장특허를 신청하면 이들 수천 개의 대기업 특허 중 어느 하나와 비슷해지게 마련이다.

그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을 제기하는 그 자체로도 자금력과 로비력이 없는 증소 업체는 도산되고 만다. 대기업이 특허를 신청하면 아무리 비슷비슷한 것도 특허를 내주면서, 중소기업이 특허를 신청하면 대기업의 기존특허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기각된다.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 자체로도 소송이 제기된다. 한마디로 특허청은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시녀에 불과한 것이다.

공진청도 이와 유사하다. 각 도 단위에 품질시험소가 있다. 연탄보일러 상은 보일러의 열효율을 측정 받아야 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다. 도 단위 시험소에 품질측정을 의뢰하지만 실질적으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7급 주사보다. 그는 아무런 시험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예쁘게 보이면 도장을 찍어줄 수 있을 뿐이다.

품질을 측정한다는 것은 엄청난 통계학 이론과 소프트웨어가 동원된다. 통계학에서도 [시험설계]라는 분야는 엄청난 지혜를 요구한다. 시험방법을 어떻게 설계해야 가장 싼값으로 품질을 정확히 측정하느냐가 결정된다. 특허청에서 기술특허를 신속히 내줄 수 없는 것은 바로 특허청에 이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ABS 브레이크는 만도기계가 생산해오고 있다. 모두가 기계식이다. 어느 영세업체가 전자식 ABS를 개발해 냈다. 대기업에 납품하려 해도 성능을 측정할 수 없어 외면당했다. 특허청에 가보았지만 헛수고였다. 3년은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세관을 통과하는 외국산 농수산물과 식품에 대한 품질을 측정하는 데에도 통계학 이론과 소프토웨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동원된 흔적은 없다. 과학의 출발점은 측정이고, 측정치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일은 통계학 분야다. 우리는 외국설계와 외국기술자의 지도하에 제품을 생산해 왔다. 제품은 만들어 내지만 품질측정은 외국인이 해왔다. 품질측정 능력이 고 부가 가치인 것이다.

품질을 측정하고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스템은 일본에 비해 50년 이상 뒤떨어져 있다. 국산화를 서둘러야 일본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통상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국산화 정책은 장관 한사람의 정치적 구호에 그칠 것이다.

연구개발에는 많은 돈이 들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피와 땀이다. 그래서 연구개발을 독려하려면 금전적인 지원 뿐만 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일선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도탄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몇일 씩 대전 연구소에 머물면서 과학자들을 독려했다. 연구소 안에 그가 묵을 수 있는 작은 집을 지었다. 영빈관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영빈관은 파티장으로 변해버렸다. 아무도 그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입으로는 과학기술을 외치고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리더십은 지금도 죽어 있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구호와 그토록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도 그 좁은 방위산업 분야 하나를 육성시키지 못한 것은 오직 한가지 시스템에 대한 지혜가 없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에 대한 지혜가 없는 부처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는 것은 곧바로 낭비로 이어진다. 방산제품에 대한 국산화 육성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은 통상부 소관이다. 바로 그 통상부가 가끔은 일반 제품에 대한 국산화 정책을 소리높혀 강조하고 나섰다.

200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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