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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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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의 생산성

정부에 수많은 위원회가 존재한다. 개인의 창의력을 유발시켜 훌륭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위력적인 메카니즘이다. 위원회를 위력있는 시스템으로 만드느냐 또는 시간낭비 수단으로 전락시키느냐는 전적으로 위원장에 달려있다.

대부분의 위원회가 생산성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위원장 때문이다. 이들은 문제의 본질을 정의해 내고,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위원들의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분위기에서 형식적으로 시간을 통제하는 타임키퍼로만 역할하고 있다.

지역에서 유명한 대학의 학장들을 위원장으로 위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기업체 간부들보다 오히려 더 관료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아이디어의 촉진자가 아니라 방해자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총론들만 가지고 공방하다가 헤어지게 만든다.

수십명의 위원들이 수십시간을 보내고, 컨설팅 회사에게 수억원씩의 과제비를 주어가면서 연구를 시켰어도 진행자의 회의진행 요령의 미숙으로 인해 그 자료들은 문제의 본질로 집약 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토의에서 사회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음미해보자.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미국에 가있는 한국인 학자를 유치했다. 그에게 호봉이라고 불리는 연구소 계급을 부여해야 했다. 너무 높게 주면 기존의 간부들이 불평할 것이고, 너무 낮게 주면 유치학자를 서운하게 할 판이었다. 회의 진행자가 8명의 간부를 불러 회의를 했다. 인사과에서 그의 경력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 7.2호봉이라는 계급을 산출해냈다.

진행자는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각자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다. 맨 처음에 대답한 사람이 7호봉을 제안했다. 돌아가면서 동감을 표했다. 맨 나중 사람이 왜 7호봉이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단지 사사오입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사오입을 하자고 간부회의를 소집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회의의 형식은 나무랄 데 없는 민주주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회의의 질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맨 나중 간부가 회의의 무효화를 제기했다. "간부들은 오직 7.2라는 수자가 쓰여진 종이 한장 받아쥐고 있을 뿐입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토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논리가 전개되고, 그 논리에 의해 각자는 자기의 마음을 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정한 후에 각자의 의사결정 결과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의가 받아들여 졌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정보가 도출되고 논리가 전개될지 막연해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의 제기자가 유치학자를 불러 차를 함께 마시게 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엄청난 정보 쏘스였다. 그를 보내놓고 이의 제기자가 칠판으로 나갔다. "자, 유치학자를 보셨지요. 유치학자와 견줄 만한 기존학자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십시요". 모두가 한 두명씩의 이름을 거명했다.

그 이름들을 칠판에 써놓고 한사람씩 견주어 갔다. 누가 더 높고 낮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백출했다. 마지막에는 김박사보다는 높고 이박사보다는 낮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는 9호봉으로 결정되었다. 진행자의 회의방식은 창의력을 유도시키지 못했지만 "이의 제기자"의 방법은 참석자들의 창의력을 유도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토의에 성공적인 조직은 매우 드물다. 진행자가 토의에 대한 노하우를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실시하는 세미나 사회자는 시간준수를 위한 감시자일 뿐이다.

"우리도 해봤는데 안되군요, 일본과는 달리 한국문화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진리가 있다. 토의능력이 없으면 훌륭한 경영도 없다. 훌륭한 아이디어도 없다. 조직의 창의력도 퇴화돼 간다. 선진국이 최고의 자산으로 여기는 핵심역량(core competance)도 기를 수 없다. 핵심역량을 가진 조직이란 토의역량을 가진 조직이다.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는 4만명이다. 연간 3백만 개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바로 토의능력 때문이다.

2000. 5. 21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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