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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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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의 폐해

금융 기관은 인체의 심장에 해당한다. 금융기관이 수많은 고객들로부터 돈을 걷어 가지고 효율성이 높은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해주어야 국가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는 이 심장 기능이 거의 마비돼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아직도 개선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사실이다.

금융기관들은 생성 단계로부터 지금까지 관치로 일관돼 왔다. 조직, 인사, 업무 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위로부터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따르는 피동적인 관습에 젖어왔다. 조직을 현대화하고, 업무를 개발하고, 가장 훌륭한 금융인을 영입하는 등 금융기관 자체의 경영능력을 자주적으로 키우려는 문화는 처음부터 길러지지 못했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대마불사"라는 신화만 믿고 얼마든지 돈을 대출해주었고, 중소기업에게는 대출액의 2-5배 이상의 담보물을 제공해야만 대출을 해주었다. 대출 기업에 대한 신용 및 위험을 평가하고 그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금융 경영 본연의 업무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없고, 대출 커미션, 꺽기 등 음산하고 비생산적인 관행에 안주해 오면서 도덕적으로 해이해왔다.

돈을 빌려간 기업들이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 상관도 하지 않았다. 대출을 해간 기업이 부실화의 길을 걷든지 말든지 일단 대출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대출을 해간 기업의 상환능력을 평가하거나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감시하기 위한 사후관리도 없었다.

금융인들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특히 대기업들은 빌린 돈으로 사업을 문어발 식으로 확장하고, 비효율적인 몸집 불리기 경쟁을 주도했고, 정치자금, 비자금 등으로도 사용하면서 빌려간 돈을 갚으려 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부실해 질 수 있었던 것은 1차 적으로 허술한 금융 관행 때문이었던 것이다.

만일 미국에도 이렇게 허술한 금융 관행이 존재했다면 오늘날의 미국 기업들도 한국 기업들처럼 도덕적 해이에 의해 부실화됐을 것이다. 이렇게 부실해진 대기업의 모습은 이번에 해체된 대우 그룹에서 실감 있게 나타났다. 대우 그룹이 진 빚만 해도 95조이고 채권단에 떠넘긴 부실채권만 해도 31조원을 넘었다. 문제는 이렇게 낙후된 금융관행을 가지고는 대우 그룹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업이 대우 그룹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중앙정부가 경영하는 108개 공기업, 지방 정부가 경영하는 297개 공기업 거의 모든 들의 거의 모두가 빚을 지고 있다. 한전의 국내 빚이 33조원, 외환 빚이 95억 달러이다. 현대 그룹의 빚이 60조라고 하지만 이 역시 대우그룹처럼 실사를 해보면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년간 은행에 투입된 공공자금이 83조원이다. 한국경제 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지난 1년간 600개의 상장기업 중에서 영업 이익을 가지고는 이자 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이 220개라고 한다. 이들 600개의 상장 기업이 꾸어간 돈 중에서 29.5%인 45조원이 잠재적 부실이라고 한다.

은행이 대출금에 대한 사후관리를 제대로 관리했다면, 무너져야 할 기업들은 국민에게 빚을 지우지 않고 스스로 퇴출 됐을 것이다. 부실한 기업에 계속해서 돈을 꾸어주고 있기 때문에 부실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그 부실액은 고스란히 국민의 어깨 위에 떨어지고 있다.

이들 부실 기업들에게 일단 빚을 준 은행들은 매년 대출을 늘려줄 수밖에 없다. 갚을 능력 없는 회사에 해마다 빚을 키워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부실기업들이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 장부에는 "받을 돈"이라는 자산으로 분류돼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이미 떼인 돈"보다 더 악성 적이다. 떼일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빚을 더 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폭발할 수밖에 없는 가스통에 가스를 더욱 충전시키고 있는 격이다.

이처럼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은 한 배를 타고 있다. 부실기업의 오너들은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돈을 계속 빌리려 하고, 은행 간부들은 자기가 근무하는 동안에는 부실기업이 문을 닫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에, 부실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문을 닫기 전에는 그 기업에 꾸어준 돈이 "받을 돈"이라는 자산으로 분류되지만, 기업이 문을 닫는 바로 그 순간부터는 "떼인 돈"이라는 손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90%이상과 405개의 공기업, IMF이후 정부 소유로 전환된 400여개의 기업, 정부, 농어촌 모두가 해마다 빚을 누적시키고 있지만 갚을 날은 없어 보인다. 결국 그 빚은 어느 날 또 공적자금으로 메워질 것이다.

현재까지 은행들이 누적시켜온 부실채권 즉 "이미 떼인 돈"으로 확정된 것만 해도 더러는 120조, 또 더러는 200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엔 신문사, 공기업들과 같이,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빚을 누적시키면서도 아직은 쓰러지지 않고 있는 기업들의 빚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런 빚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부가 230여조의 빚을, 한전이 40조의 빚을 졌다. 대우가 95조의 빚을 졌고, 현대가 60조의 빚을 졌으니 도로공사, 주택공사, 가스공사, 한국통신 등 405개 공기업과 30대 재벌기업 등이 진 빚을 합치면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통계는 아직 없으나 항간의 소문으로는 1,000조를 넘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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