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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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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공행정

신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든다며 기구 개편 작업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기구 개편은 냄새만 피웠다. 생각의 틀은 없고 칼을 쥔 세력들의 제한된 안목에 따라 자르고 옮기는 식의 조정만 했다.

그 결과 1998년에는 9,084명의 중앙 공무원과 35.149명의 지방공무원이 정리됐고, 1999년에는 7,973명의 중앙공무원과 7,416명의 지방공무원이 정리됐다. 이는 겨우 15%에 해당하는 인력이지만 그나마 정리 대상 인력은 일용직과 임시직 그리고 단순 기능직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생각의 틀은 행정부를 다수의 공무원 집단에 의해 경영할 것인가 또는 두뇌집단에 의해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틀은 행정조직을 시간이 갈수록 진화시킬 것인가 퇴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다.

선진국들은 국가경영을 다수의 두뇌집단과 소수의 공무원에 의존하고, 날이 갈수록 공무원 조직의 능력을 진화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의 국가경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퇴화돼 가는 다수의 공무원 집단에 의존하고 있다. 사회가 퇴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조직개편 작업에 동원됐지만 그들은 모두 숲의 모양은 제쳐두고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들만 옮기고 잘랐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 산하기관, 공기업들이 쓰는 연간 예산은 GNP의 75%에 해당하는 300조를 넘지만 이들이 돈을 쓰는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절약의 규모 면에서나 파급효과 면에서 보면 공공 개혁이야말로 개혁 제1의 우선 순위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은 지금 선거의 전리품으로 타락해 기존의 비효율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사용하는 방법도 전근대적이다. 50년 이상이나 낡아빠진 예산회계법을 현대화하고 재정관리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일이 철저하게 방치돼 있다. 아마도 개혁 세력 중에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대형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는 실질적인 분석은 하지 않고 산하 연구기관을 동원해 형식적이고 아전인수적인 결과만 내놓는다. 봐주고 싶은 시공 사에 보다 많은 사업 예산을 할당해 주기 위해 설계 비와 감리 비를 아낀다. 똑같은 한국의 건설업체가 싱가포르를 비롯한 다른 외국에 가서 시공을 하면 훌륭한 시공을 하지만 한국에서 시공을 하면 부실 시공을 한다.

이를 어떻게 의식 탓으로 볼 수 있겠는가. 한국의 건설업체가 외국에 나가 품질 시공을 하는 것은 그들의 해외 의식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꼬박꼬박 감리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고, 불량 시공으로 인한 처벌이 너무나 무거우며, 한국식 다단계 하청구조가 허용될 수 없고, 공무원들이 업체와 야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적 예산관리 시스템 개발에 가장 먼저 앞장서야 할 감사원은 사실상 한국 공무행정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가 공무원들은 1년 내내 감사원 감사에 지적 받지 않기 위해 일한다. 따라서 감사원이 감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무원들의 공무수행 자세가 결정된다.

선진국의 감사원과 한국의 감사원은 매우 다르다. 첫째, 선진국 감사원은 국가기관에 대한 경영진단 기관이지만 한국의 감사원은 공무원을 취조하는 검찰기관으로 행세하고 있다.

외국 감사원 제1의 목표는 국가기관의 경영개선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국가 자원의 효율성을 촉진시키는 데 저해가 되는 법률, 규정, 조직, 관행, 리더십상의 제반 요소들을 찾아내서 시정할 것을 제언하는 것이 제1의 임무인 것이다. 부정과 비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들어 나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감사원은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공무원들을 취조하긴 해도 제보가 없으면 부정과 비리도 찾아내지 못한다. 감사관들에게 경영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원장도 법관 출신이다. 감사관들의 대부분이 법대 출신들이다. 한국의 법은 일제 법을 베낀 법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비논리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 이런 법을 무작정 외우면서 대학생활을 한 학생들에게는 논리와 직관이 길러지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공무사회에서는 감사관들을 칼든 미숙아로 위험시하고 기피한다.

시쳇말로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지식에 한계가 있고 자신의 무능과 무식을 남 앞에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로 정의해도 좋다. 대개 실력이 없고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 권위주의를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한국의 감사관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감사원이 선진국들처럼 경영과 과학의 전문가들로 물갈이되지 않는 한 한국의 공공개혁은 있을 수 없다. 한국이 공공행정에서 낙후되고 있는 이유 중의 99%는 감사
원에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공무원이 진취적인 발상을 가지고 처리한 행정에 대해 한물 간 규정을 가지고 처벌하고 있다. 그래서 설사 진취적으로 일하고 싶어하는 공무원이 있다해도 처벌과 오해가 무서워 공무원들은 감사에 걸리지 않는 방향으로만 일하고 있다.

감사관들이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 서류감사만 했기 때문에 모든 공무원들이 현장을 등지고 서류의 앞뒤만 맞춰놓고 있다. 이러한 서류들은 보기에만 완벽할 뿐 책상에서 가공해낸 가짜 자료들일 뿐이다. 감사관들은 왜 현장에 나가지 않는가. 현장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효율성보다는 합법성을 주안점으로 삼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효율성을 외면하고 합법성에만 집착했다. 공무원이 아무리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했다 해도 감사관들의 눈에는 규정을 어긴 행동으로만 보인다. 결국 전근대적인 감사 때문에 엄청난 국가예산이 낭비돼 왔다.

전문 감사관은 여러 개의 피감 기관에 상주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감사원에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이런 노력이 없다. 제보가 있을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나가 소나기 감사를 했다. 제보자가 문제의 본질을 자세히 설명해줘도 답답하리 만큼 문제의 본질을 오해하고 생사람을 잡는다.

이러한 소문은 전 공무원사회에 확산됐고, 공무원사회에는 덤테기를 쓰지 않기 위해 진실을 은닉하고 조작하는 허위보고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막강한 권력에 비해 감사관들의 종합적인 분석능력과 판단능력이 너무 낙후돼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인 것이다.

소신껏 일했던 공무원들이 감사에 지적돼 처벌을 받은 사례는 허다하다. 이는 감사원의 잣대와 공무원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감사원의 잣대가 공무원들의 잣대보다 많이 낙후돼 있다.

그렇다고 감사관들의 도덕률이 공무원보다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공무원들이 업자들의 로비대상이라면 감사관들은 공무원과 업자 모두의 로비 대상이다. 힘있는 자의 제보는 잘 처리됐지만 힘없는 자의 제보는 비리 자와 결탁하여 덮어줬다는 비난들도 심심치 않게 회자됐다.

감사원이 행정부의 경영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대통령 밑에 두지 말고 국회로 소속시키든지 아니면 제4의 기구로 독립돼야 한다. 시민단체나 국회의원들은 다양한 자료를 갈구하고 있다. 감사원이 행정부로부터 독립돼야 국가 경영 정보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자유롭게 배분될 수 있다.

지방정부의 개혁도 말뿐이었다. 우리나라에는 252개 시군구가있다. 이들은 지방정부의 벽돌들이다. 서울의 경우 1개 구청에는 2천명 정도의 공무원이 있다. 30개 과 단위와 기타 조직들이 나열돼있고 이들을 관장하는 국장급 이상의 직위가 아홉 개나 된다. 지방의 시청과 군청 조직도 이와 유사하게 구성돼 있다.

이 많은 인력은 유기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팀이라는 시스템의 힘을 가지고 일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개인 단위로 콩가루처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시너지 효과가 없다. 과와 과 사이는 만리장성으로 막혀 있고, 이들을 통합시키는 기능은 사실상 없다. 어느 한 과에서 저지르는 부정이 다른 과에 의해 탐지되지도 않는다.

오전에 주택과 직원 한 사람이 담당 구역을 돌아오면, 오후에는 위생과 직원이 같은 구역을 돌아온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콩가루처럼 혼자 다닌다. 혼자서는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 단지 부정만 저지를 수 있다. 그래서 서비스는 없고 부정만 많은 것이다.

지금의 구청업무 분류는 총무, 기획, 보건, 산업, 문화, 환경, 소방, 도시계획, 교통, 건설, 주택 등 11개 기능으로 대 분류되고 각 기능을 여러 개의 과 단위와 계단위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기능 분류는 과거 일제 통제 식 개념이다. "앉아서 하는 인허가 서류 행정"을 위한 분류다. 현재의 조직은 업무 분위기를 침체시킬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공무원들의 능력이 퇴화될 수밖에 없다.

구청의 업무를 "현장행정 기능"으로 분류하면 기록보관, 조례관리, 도시설계, 사업관리, 감사, 구역서비스, 징세, 기획, 총무 등 9개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9개 기능은 더 이상 하부 조직으로 쪼개지 않고 "팀 단위"로 운영돼야 한다.

구역 단위로 제공되는 행정 서비스는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망라한 직원들로 구성된 팀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팀 단위로 움직이면 부정이 없고 시너지 효과도 발휘된다.

지금은 맥가이버 시대다. 한 사람의 직원은 적어도 5개 분야의 조례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공무원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문제 발굴 및 문제 해결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서비스의 질과 속도가 천문학적으로 향상된다.

조례를 찢어 각 과장에게 맡기지 말고 구청장 직속의 조례담당관에게 일괄적으로 맡겨야 한다. 수많은 조례들이 현대적인가, 조례 상호간에 서로 아귀가 맞는가를 끊임 없이 분석해야 한다. 사업관리팀은 모든 사업을 집행한다. 모든 종류의 사업을 집행하려면 토목, 건축, 환경, 소방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야 한다.

이제까지 각종 사업에 대한 사실상의 주체는 업체였다. 구청은 형식적인 사업 주체에 불과했다. 구청 간부들은 책상에 앉아 도장 값만 받는다. 막힌 곳을 뚫어가며 사업을 진행시킨 주체는 업체였다. 삼풍백화점 주인 이준씨는 60여개 부처를 돌아다니면서 도장 값을 내고 자기 뜻대로 건축을 했다.

그러나 사업관리팀이 생기면 사정이 역전된다. 간부나 담당자 개인이 각기 밀실에서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팀 단위로 사업을 공개적으로 관리한다. 비리가 사전에 차단되고, 각종 안전 요소와 환경 문제가 동시에 고려된다.

새로운 조직으로 재편되면 현재의 2천명을 불과 5백 명 이하로 낮추면서도 행정의 질을 엄청나게 향상될 수 있다. 공무원들의 능력을 날이 갈수록 향상시킬 수 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하나의 팀은 그야말로 "못할 일이 없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가진 조직"이 될 수 있다.

이렇게만 바뀌면 공무원들은 검은 돈을 챙기는 데보다는 일하는 데 맛을 느낄 것이다. 행자부는 샘플이 될만한 시,군,구 하나씩을 표본으로 선택하여 이를 모델로 한, 가장 현대화된 조직과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해 내고, 이를 1년간 시범 운영해서 보완과정을 거친 후 전국의 252개 시군구에 확대 적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광역시의 시청 조직과 구청 조직은 4홉들이, 2홉들이 식으로 닮은꼴이다. 이는 시청이 구청에서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는 옥상옥 식 조직이다. 시청은 구청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고, 구청들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한다. 따라서 시청 조직과 구청 조직은 그 모양부터 사뭇 달라야 한다. 지방행정 구조개혁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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