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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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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을 단절하기 위한 시스템

정경유착의 단절은 국민의 염원이다. 그러나 이는 의지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 정경유착은 두 가지로 인해 발생한다. 하나는 공무원의 능력이 기업인들보다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금전적 유혹이다. 문제의 근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공무원들의 발상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기업들이 공무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사업에 대한 교육도 시켜주며, 도장값으로 공무원을 매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정경유착은 근절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째, 모든 공공행정에 대한 분석의 질을 높여야 하고 둘째, 공무원 조직과 업무를 현대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분석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 한 공무원의 두뇌는 기업에 점령된다. 공무원 사회에도 정보화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세상 물정과 새로운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도록 운영되고 있다.

기업인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이해가 느린 공무원을 일일이 교육시켜 가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이러한 과정에 뒷거래나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공무원들은 특히 기술 정보에 어둡다. 기술 정보에 대한 이해력도 둔하다. 이러한 공무원은 먼저 접촉하는 사람의 편이 될 수 있다.

일단 어느 한 업체에 의해 쇠뇌 당한 공무원에게는 다른 경쟁 업체의 접근이 귀찮아 진다. 기존 업체에 대해 형성된 호의적인 선입관은 하나의 소신으로 비화된다. 그 소신을 펴기 위해 공무원들은 특정 업체를 적극 비호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밀실행정을 포함한 온갖 파행이 싹트게 된다.

아무리 정신이 올바른 공무원이라 해도 실력이 없으면 실력있는 사람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령돼 버린다. 그런데 딱한 일은 그 자신이 그것을 소신이요 신념인 것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이 있다. 첫째, 정보 공개 시스템이다. 정부 사업에 대한 정보는 정부에 줄을 대는 데 발빠른 사람들만 조기에 접근하고 있다.

특정기업을 봐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편법들이 동원된다. 심지어는 마감 날자에 임박해서 공고문을 일간지 등에 계재하기도 한다. 공공 게시판에 잠간만 게시하고 사진을 찍은 후 뜯어내기도 한다. 서류 감사에만 익숙해진 감사원 감사관들에겐 게시판 사진만 보이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폐단을 차단하기 위해 의사결정 즉시 "일일상업정보지"(commerce and business daily)를 모든 법인체에 발송한다.

둘째, 입찰자 선정 능력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모든 입찰 절차가 합리적인 것을 보이지만 이는 오직 남보기 좋게만 꾸미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많은 심사위원들이 동원되지만 이들은 들러리로 이용되고 실질적인 권한 행사는 실무자들이 한다. 이들 실무자들은 분석 능력이 낙후돼 있어서 어느 업체측 사람을 만났느냐에 따라 어제의 소신 다르고 오늘의 소신이 달르다. 특정업체를 봐주기 위해 때로는 최저가낙찰제를 내세우고, 때로는 성능을 부각시킨다. 때로는 세몰이 방법이, 때로는 은밀한 방법이 동원된다.

계약 방법에도 문제가 많다. "사후정산제"라는 것이 있다. "예측 가격"만 가지고 계약한 후 업체가 합리적으로 지출한 비용을 사후에 정산해주는 계약제도다. 약삭바른 업체는 처음엔 싼 값에 입찰하고 차차 이유를 붙혀가며 정산가격을 올리고 설계를 변경한다. 이는 대규모 정부 공사에 만연해 있는 가장 오래된 야합 수단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정경유착은 근절되지 않는다. 정부의 기술 정보 시스템과 분석 능력 그리고 절차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모든 장관들이 투명성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오직 시스템으로 보장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셋째, 전문 지식을 가진 감독기구다. 감사원을 가지고는 부정을 예방할 수 없다. 부정은 시스템이 예방하는 것이고, 감사원은 그 시스템을 허점을 지적해야 한다. 시스템을 악용하는 소수의 이탈자를 찾아내는 것은 시스템 감사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감사원은 공무원들을 취조하려고만 한다.

미국에도 감사원이 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 감사원인 GAO에 추가하여 1965년 4,200명의 최고 수준의 분석가들로 구성된 "계약감사국"(contract audit agency)을 만들었다. 430개소의 지역파견소와 50개의 업체 상주 파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계약 내용을 사전에 분석하여 엄청난 낭비를 예방한다. 이들에게 투자된 매 1 달러 마다 50 달러 이상의 낭비가 예방된다.

넷째, 선진국형 공인회계 시스템 설치다. 기업으로부터의 검은 돈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공인회계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 공인회계사가 국민의 이름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감시하면 검은 돈이 원천 봉쇄될 수 밖에 없다.

다섯째, 부실공사의 원천 봉쇄다. 부실공사로 떼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에게 거액의 뇌물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건설업체가 외국에 나가서는 품질시공을, 국내에서는 부실시공을 한다. 먹이사슬 때문이다. 우선은 외국업체를 유치하고 거기에 한국의 젊은 이들을 고용케해야 한다. 기술과 도덕성이 겸비된 공신력이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외국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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