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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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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세력인가 친북세력인가

6.25 전사를 연구한 사람들이 토로하는 말이 있다. "그때 국방부가 취했던 일련의 조치들을 보면 마치 국방부에 적이 들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걸 봐도 유사한 느낌이 든다.

지난 6월15일 대통령이 서울공항 도착성명에서 "전쟁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어서 지난 6.22일 국방위에서 김한길, 장영달 등 민주당 의원들이 주적개념을 수정하라며 국방장관을 질타했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해놓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은 적과의 동침"이라는 것이다. 반공법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대통령과 이들 민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1. 북한이 주적이 아니고, 전쟁도 없다면, 휴전선에서 북한을 향해 조준돼 있는 망원경의 방향과 총부리는 "이제" 어디로 돌려야 할 것인지를!

2. 더위에 휴전선에서 모기와 졸음에 시달리며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 병사는 지금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3. 병사들을 후방으로 옮기고 군도 축소해야 하지 않는가를!

대통령은 국군의 최고통수권자다. 그 통수권자가 "주적 포기"를 결정할만한 아무런 구체적 조치 없이 "전쟁은 없다"라고 선포한 것은 군인 정신을 무장해제시키는 발언이다. 충격을 넘어 경악을 자아내는 발언이다. 한국사회는 마치 통일이 다 이뤄진 것처럼 들떠 있다. 마치 괴성을 질러대는 오빠부대 의 모습을 해가지고!

우리는 김정일이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쇼에서 시원시원한 그의 연기를 구경했을 뿐이다. 방북 과정에서 주고받은 것들은 언제라도 휴지화될 수 있는 "말"들일뿐 구체적인 변화를 약속한 것은 없다. 직통전화? 설치해놓고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중단된 비방 방송? 내일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전쟁이 없다".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김정일이가 휴전선에 배치돼 있는 군사력을 후방으로 이동시키자는 제안을 했는가? 화생무기, 유도탄, 핵무기를 제거하겠다고 말하던가? 100만 대군을 10만으로 줄이자고 말하던가? 그의 지위를 국방위원장에서 주석직으로 바꾸겠다고 했는가?

최근 북한 병영의 움직임은 들뜬 남한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첩보들이 있다. 땅굴은 휴전선에만 뚫어놓은 게 아니라, 미군의 감시를 따돌리고 전방으로 병력과 물자를 나르기 위해 제2제대 땅굴도 많이 뚫었다는 소문이 있다. 부대 훈련도 증가하고 있다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미국이 정찰활동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사람도 없다. 안보는 1%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주제다. 김정일 말 한마디, 제스처 하나에 놀아나는 듯한 국군 최고통수권 진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안감을 느낀다. 그나마 조성태 장관의 반박이 믿음직했다.

"북한은 현존하는 위협이다. 아직도 북한은 주적이다". 그러나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부하다. 그래서 마지막 보루는 미국이다. 오죽하면 미국만이라도 흔들리지 말아 주기를 바라며 한숨지을까?

북한의 바둑판을 냉철하게 조감해 보자. 만일 북한이 군사강국이기를 포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북한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추한 존재로 전락한다. 마치 이빨과 발톱이 다 빠져버린 호랑이처럼!

그런 북한을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정일이다. 그래서 그는 강성대국을 표방하고, 북한 최고의 직책을 국방위원장으로 정했다. 그가 이 모든 걸 포기할 것인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전쟁이 없는가?

200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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