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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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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개념에 대한 시스템 분석

통일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비교적 보수적인 사람들까지도 5년-10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말하고 있다. 통일을 확신하는 국민은 많아도 통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들떠 있기만 한 것이다.

필자는 1993년 통일에 대한 열기와 현실간의 괴리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나는 4대 일간지에 속한 모 통일연구소에서의 경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탠포드 대학에 있는 후버연구소가 주최하는 통일주제 학술회의에서의 경험이었다.

당시 한국사회에는 흡수통일 열기가 대단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곧 무너지니 흡수할 준비를 하라고 내각에 지시까지 했다. 이에 따라 모 일간지 통일연구소는 필자에게 "통일 군사력"에 대한 연구를 제의했다. 필자는 평화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제를 요청했던 통일 분야 기자는 필자를 노골적으로 이단시했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선두 주자 중 한 학자가 후버연구소에서 발표를 했다. "북한에 대량난민이 발생하고 무정부 상태가 발생하면 바로 그때가 흡수통일 시기"라고!

필자는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북한에 대량 소요가 발생해 무정부 상태에 이르면 인민군과 경찰이 계엄군으로 전환된다. 북한을 흡수하려면 도지사와 공무원이 넘어가야 하고, 그러자면 군이 먼저 38선을 넘어가 질서를 잡아줘야 한다. 군이 38선을 넘으면 인민군과 총돌한다. 이는 북침이요 전쟁이다. 한국군에 그런 능력도 없지만 주변국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흡수통일은 있을 수 없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결과에 대해서도 열기와 현실간에 거리가 멀다. 통일에 대한 논리가 애매한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감상적 열기에만 갇혀있다.

"평화롭게 살자. 남북한이 각기의 실체를 인정해주자. 협의체를 만들어 공동번영을 기해보자". 대통령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두리뭉실 애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의 위상이다. "2개의 임시집단"간에 평화공존하자는 것인지, "2개 국가"간에 평화공존하자는 것인지가 애매하다. 2개 집단간의 연합인지, 2국가간의 연합인지에 대해서도 애매하다.

이제까지 남북한의 위상은 무엇이었는가? 국제사회에서는 "2개의 독립국가"이지만 한반도 내에서는 "통일을 기다리고 있는 2개의 임시집단"이었다. 2개의 불법집단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국가란 오직 "통일국가"만을 의미해왔다.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자"에서 그 실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2개 집단"이냐 아니면 "2개 국가"냐? 실체를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차이다.

만일 2개 집단간의 연합이라면 그 후에 올 통일국가는 미국, 말레지아 등과 같이 강력한 중앙 정부를 갖는 국가다. 김일성의 연방제 통일방안인 것이다. 누가 중앙정부를 지배하느냐? 북한은 북한 식으로, 남한은 남한 식으로 통일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불신이 군비경쟁이 지속될 것이다.

만일 2개 국가간의 연합이라면 통일은 유럽과 같이 한 지역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독립국가들간에 이뤄지는 협력기구를 지향하게 된다. 공존과 협력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비용이 들지 않는 "사실상의 통일"인 것이다.

캐나다와 미국도 서로를 통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들도 우리 남북한처럼 으르렁댈 것이다. 몫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캐나다와 미국은 형제국으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도 그런 식으로 살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 아니겠는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식 통일이며, 한반도에 한 사람의 대통령을 갖는 정치적 법률적 통일이었다. 북한을 우리 체제로 흡수하는 통일인 것이다. 과연 김정일 정권이 이를 허용하겠는가?

북한의 바둑판을 냉철하게 조감해 보자. 만일 북한이 군사강국이기를 포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북한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추한 존재로 전락한다. 마치 이빨과 발톱이 다 빠져버린 호랑이처럼!

그런 북한을 누가 거들떠보겠는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정일이다. 그래서 그는 강성대국을 표방하고, 북한 최고의 직책을 국방위원장으로 정했다. 그가 이 모든 걸 포기할 것인가? 절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는 남한을 그의 수중으로 흡수하려 할 것이다.

재야에서는 지금 "북한승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미국의 속국인 한국보다는 민족무기를 만들어 미국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김정일이 통일국가를 통해 민족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혼돈과 불안감을 씻어주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어느 것이 남북연합이며, 평화공존의 모델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200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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