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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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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국방장관회담이 남긴 것들

1. 9월25-26일간 남북한 국방장관 회담이 조성태 장관과 김일철 무력부장간에 열
렸다.

2. 회담은 오직 경의선 연결과 도로 건설을 위한 협조방안에 국한됐다.

3. 최소한의 신뢰구축 방안이라고 알려진 군 직통전화 가설, 군사공동위 구성, 군사연습 통보, 대부대 이동 통보, 군 인사교류 등에 대한 한국 측 제안들이 모두 무시됐다.

4. 그런데도 9월26일 김일철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DJ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큰 성과를 이룩했다"고 치사했다. 하지만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5. 직통전화 가설 등 남측이 제시한 신뢰구축 조치들을 북한이 100% 그대로 수용해 준다면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믿을 수 있다. 단 5% 이내일 것이다.

6. 만일 경의선 및 도로를 개설해주고, 대규모 물류단지를 만들어 사실상 방대한 지역에 지뢰를 제거해주고, 미군을 배제한 채, 그 넓은 지역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한다고 했을 때, 남한은 북한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100% 믿지 않고서는 이러한 조치를 취해줄 수 없다. 우리는 북한을 지금 100% 믿어주고 있는 것이다.

7. 단 5%에 해당하는 신뢰조치는 외면하면서, 북한을 100% 믿고 6항과 같은 개문(開門) 조치를 하루속히 취해달라고 보채는 것에 대해 의문을 다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8. 남북한은 DMZ 일대에 "남북한 관할 지역을 설정하고-관리하기로 합의"했다. DMZ 관리 책임은 UNC, 중국, 북한에 있다. UNC는 "남북 관할지역 설정"에 대한 협상은 남한측에 위임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설정된 관할구역을 한국측이 UNC를 대신해서 "관리"할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한국과 미국간에 앞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다.

9. 북한측은 한국측에게 "남북한 관할지역 설정-관리에 대한 UNC 사령관의 위임장을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UNC와 합의를 이루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꾀임에 빠져 "설정"과 "관리" 모두에 대해 "북측과 합의를 본 것이다".

국방부 장관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것 같다. 떡을 가진 UNC는 줄 생각조차 않는데, 북한에게는 이미 떡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았으니 이만 저만 큰 일이 아니다.

10. 미국이 "관리"권까지 위임해 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판문점 JSA는 옹색할 만큼 좁은 통로에 설치돼 있다. UNC는 그것을 철통같이 지키고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코 옆에서 남북한이 철로와 8차선 대로를 나란히 열어놓고 대규모 물류시설을 갖추어 "미국아 여기 좀 봐라"하는 식으로 희희락락하면 미국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눈에도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이 위험한 질주를 미국은 어떻게 보겠는가? 그래서 한국은 아직도 미국이 지켜줄 수밖에 없는 한심한 나라인지도 모른다.

11. 만일 한국정부가 밀어 붙치면 미국은 알아서 나가달라고 강요하는 무언극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12. 이는 DJ가 2003년을 평화협정 기간으로 못박은 사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 정서와는 달리 국제법적으로 평화협정은 미국과 북한간의 문제다.

13. 남북한간에 평화협정이 이뤄지려면 미국과 북한간에 수교가 이뤄지고, 미국과 북한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14. 남한의 방위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먼저 화생무기, 핵무기, 유도탄을 포함한 대규모 군축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러한 군축을 북한이 보장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내려 하지 않을 것 같다.

15. 하지만 김정일은 지난 방북 언론 사장단에게 미사일과 강군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미사일에선 달러가 생기고, 강군에선 권력의 힘이 나온다고 했다.

16. 결국 바둑판을 따져보면 북한이 우리에게 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섣불리 북한의 유화 제스처와 꾀임에 빠져 길만 열어주는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남북한공동관리 구역을 넓히고, 그 지역은 물론 DMZ 전반에 대한 남북한 공동관리권을 UNC에서 받아내 오라고 꾀일 것 같다.

1)길을 열어주고 2) 그 길에서 UNC의 간섭을 배제하고 3) 판문점을 초라하게 만들어 주한미군을 내 보내고 4) 구태여 군사적 침략을 하지 않더라도 박정희식 쿠데타로 입성하여 주먹을 내보이며, "죽을래, 순순히 내놓을래"할 것이다.

200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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