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황장엽과 국정원의 동반 자살

황장엽 선생과 김덕홍 선생의 결별을 보면서 관찰된 사항이 있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이냐에 관계없이 황장엽 비서는 "육체적 생명"을 위해 "정신적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1. 황장엽 비서는 육체적으로 늙었지만 그의 선비정신은 초롱초롱한 별빛으로 비쳐졌다. 바로 그 하나가 그의 매력이었다.

2. 그는 그의 미국행이 통일에 대한 그의 철학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강력히 희망해 왔었다.

3. 정부가 그의 미국행을 계속 반대하자 「중대한 결단」을 내리겠다는 말로 강한 의욕을 보이기까지 했었다.

4. 그런 그가 며칠 전 미 의회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다한 이야기를 또 하러 미국 갈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한 미디로 선비의 지조를 내던져 버린 것으로 비쳐졌다. 많은 국민이 실망했을 것이다. 그가 미국행에서 이룩할 국익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보기 드물게 접한 노학자의 선비정신과 기개가 볼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인 것이다.

5. 그는 수많은 가족을 버리고 통일을 이룩해 보겠다며 이 땅에 내려와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을 영위해 왔다. 부당한 정부의 압력에 맞서는 선비정신이 보기 좋았다. 여기까지의 아름다움을 꽃피워내기 위해 그는 인고와 극기로 상당한 노후를 바쳤다.

6. 그의 소원 중 하나는 철학연구소를 갖는 것이라 한다. 정부가 10억원 짜리 연구소를 짓는데 보조하겠다고 해서 양심을 팔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 말을 한 김덕홍씨는 누구인가? 사선을 함께 넘은 형제다.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가 아니라 철학으로 맺어진 동지였다. 의견충돌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민이 보는 앞에서 비방하며 결별하는 모습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7. 김덕홍 선생의 말대로 만일 황장엽 선생이 철학연구소를 갖는다 해도 그 연구소가 무슨 빛을 발하겠는가. 빛을 잃은 그의 글을 누가 읽어 줄 것인가. 도도하고 고고했던 황장엽 선생의 이미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8. 이미지라는 것은 이처럼 세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허무는 데에는 일순간이다. 그는 그이 이미지만 허문 게 아니라 북한에서 넘어온 탈북자들의 이미지도 허문 것이다. 정부의 부당한 대우, 사회의 냉랭한 눈길 속에서 슬픈 나날을 보내며 이를 극복해보겠다고 모인 탈북자 동지들이 아니던가. 황장엽 선생에 대한 이미지 몰락은 이들을 벼랑위로 끌어올리다가 중간에 그냥 밧줄을 놓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9. 그를 이토록 처참하게 만든 국정원은 어떤가? 국정원이 그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며 일일이 간섭하는데 반발하자 국정원은 「신변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며 안가에서 쫓아내려고 했었다. 또 그의 미국 방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정원이 여러 가지 유형 무형의 압력을 가했다. 이에 대해 그는 죽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수지킴과 윤태식 사건 등을 보면 국정원은 무슨 공작이던 다 할 수 있다. 급기야는 국민이 아끼던 "선비의 지조"까지 굽히게 했다. 국정원을 무엇을 바라는가? 그들의 정치저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한민국에 단 한 사람의 지조있는 학자가 있어서도 안되는 것인가?

10. 국정원이 무슨 짓을 한다 해도 가족을 버리고 사선을 넘을 때의 고통보다야 더 하겠는가. 겨우 이런 정도의 용기와 집념을 가지고 어떻게 통일을 위해 사선을 넘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가.

11. 그의 변절은 그들만의 불행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불행이다. 툭하면 소송질 하는 이상한 국정원에 대해 필자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것이 국정원이 저지른 공작의 결과라고 공개적으로는 단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심은 한다. 만일 국정원의 집요한 공작의 결과라면 국정원의 일부세력은 작전의 성공을 자축할 일이 아니라 국정원 사람들 모두가 살고 있는 공동의 집을 허물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정원 이미지 역시 황비서의 처참한 이미지만큼 추락해 있는 것이다.

12. 미국에 사는 교포들이 교통에 걸리면 돈을 집어주었다. 처음엔 저항하던 경찰이 하나 둘 한국사람으로부터는 돈을 받아도 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소문이 퍼지자 경찰들은 별 위반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사람만 보면 잡았다. 잡힌 사람들은 돈을 건네 준 사람들의 자녀들이다. 몇 명의 국정원 사람들 때문에 국정원 전부가 이렇게 매도되는 것이다.

13. 조선일보가 사살에서 제기한 본질적인 의문이다. "왜 정부가 황씨의 미국행을 저지하기 위해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가?". "황씨의 증언이 우리 국익이나 미국과의 관계에 나쁠 것이 없는데도 정부가 그의 미국 방문 이야기만 나오면 정상이 아닐 정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진짜 이유가 뭔지 국민은 알권리가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밝힌 내용들은 오히려 의혹만 더 증폭시켰고, 비웃음만 쏟아지게 했다. "이런 게 겨우 국정원의 상식인가!"

14. 국정원은 이 엄청난 사태를 벌려 놓고 황선생과 김선생 사이를 이간질시키려만 말고 조선일보가 제기한 의문을 당당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국정원이나 국방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인격쯤은 얼마든지 매도질 했다. 국정원은 수지김 집안을 간첩 집안으로 매도했고, 국방부는 김훈 중위를 형편없는 인간으로 매도했다. 국정원이 김덕홍 선생을 비난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김덕홍 선생을 비방할수록 얄팍한 속셈만 내비치는 것이라는 걸 국정원은 알아야 한다.

2002. 1. 18


Prev	국민이여, 제발 북한에 가서 돈좀 풀고 오시오 (DJ올림)	지만원


Next	황장엽에 가해진 정부의 압력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