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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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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 작은 유엔을 만들자(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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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붕괴 이후 아･태지역의 다자간 안보 협력에 대한 많은 구상들이 제안됐다. 1990년 5월에는, 호주의 에반즈 외상이 유럽의 CSCE모델을 아시아에 적용하자는 CSCA를 제안했다. 이는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광역적 접근이라는 면에서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불렀다. 같은 해 7월에는 캐나다의 클라크 외상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북한, 캐나다로 구성된 북태평양 안보 대화(North Pacific Security Dialogue)를 제의했다.

1992년 11월에는 일본이 6자간의 안보 협력 구도를 제의했다. 한국과 러시아도 6자간 협력 구도를 지지해 왔다. 아시아에서의 다자간 안보 협력 체제 구상안에 반대 의사를 가지고 있던 미국은 1993년 7월에 드디어 입장을 바꾸었다. 미국은 ‘신태평양 공동체’를 제의하고 나서면서 아시아 지역포럼(ART)에 적극 참여하는 등 다자간 안보 협력 구상안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이 평화 공존5개 원칙에 따라 다단계 다채널 교류를 표방해 왔다.

따라서 아태 지역 국가들 모두가 다자간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긍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광역이냐, 협역이냐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만 각기의 의견이 다르다. 이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충분히 아태 평화를 위한 다자간의 대화 포럼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러는 아태 지역에서 다자간 안보 협력 체제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다자간 안보 협력을 나토와 같은 집단 안보 체제(Collective Security System)로 혼돈하고 있다. 이들은 쌍무간 안보 협력 조약이 다자간 집단 안보 조약과 상충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 다자간 안보 협력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다자간의 조약에 의한 집단 안보 체제가 아니라, 안보를 위한 다자간의 대화 도구에 관한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다자간 안보 협력은 비단 군사 안보 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 환경, 테러, 마약과 같은 국제간 현안 문제들을 해결하고 협력하는 데에도 매우 필요하다.

한 나라의 노동력이 다른 나라에 가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국가간 투자 보장 문제와 해양 관리 문제에도 아직 연구해야 할 점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강대국 국민이 약소국 국민에게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약소국은 그 범인을 처벌하지 못한다. 한 나라가 배출한 공해 때문에 다른 나라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대화와 협력의 대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매우 우호적인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 유엔은 이러한 일을 해주기에 너무나 멀리 있다. 아시아인만을 위한 작은 유엔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작은 유엔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정례적으로 참가하는 광역 대화포럼으로부터 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군사 안보에서의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군사적 투명성과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제와 환경 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나라들은 이러한 기구를 자국의 이익을 번영시키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설사 어떤 나라가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시아에 정례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자는 데에는 대부분 찬성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대화의 포럼 속에서 문제의 성격에 따라 어느 경우에는 네 나라가 따로 만나 대화를 할 수 있고, 때로는 두 나라가 따로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화의 포럼은 물론 호혜와 평등 정신에 의해 운영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강대국이 리더로 군림해서는 안 될 것이며 처음부터 강대국 중의 하나가 이 모임을 주도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는 상당히 민감한 문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교 매너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성숙돼 있다면 아마도 한국이 가장 좋은 총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에는 두가지 큰 약점이 있다. 첫째는 성숙되지 못한 외교 매너다. 자랑하는 매너, 다듬어지지 못한 매너 그리고 언어의 장벽이다. 둘째는 미국의 대리인 자격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 외무부는 미국의 말이라면 주눅이 든다. 논리가 없고, 사대주의 정신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이 대화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는 군축 분야가 될 것이다. 이는 분명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요즈음 미국이 APEC에 안보 분야를 추가하자고 나서는 것은 좀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안보력이다. 그 안보력을 가지고 미국은 경제 문제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어디에나 미국의 얄팍한 국가 이익이 끼여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미국이 처음부터 너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아시아의 작은 유엔은 태동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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