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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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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46)

우리는 지난 43년간 ‘한반도의 냉전’ 속에서 살아왔다. 이 냉전으로 인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인권이 유린되었으며, 얼마나 엄청난 민족적 에너지가 낭비되었던가. 과연 냉전은 허물 수 없는 숙명이었는가. 아니다. 우리는 냉전의 벽을 충분히 허물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라는 한 사람의 신사고가 그 엄청났던 동서간의 냉전도 허물지 않았는가. 우리에게도 한국의 고르바초프가 있었다면 과거와 같이 옹졸하고 촌스럽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제까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 문제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는 무슨 문제인가. ‘냉전의 문제‘인가 ’민족 분단의문제‘인가. 냉전의 문제라면 그 해결책은 ’평화‘이며, 민족 분단이 문제라면 그 해결책은 ’통일‘이다.

이 두개의 문제 가운데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어느것인가. 통일을 외치는 이들은 많아도 평화를 외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는 국민 대부분이 한반도 문제를 냉전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족 분단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우리가 평화를 얻으려 했다면 벌써 얻었을 것이다. 통일을 얻으려 해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다. 풀릴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해 왔기 때문이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 속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 첫째, 잡으려 하면 없어지고 가만 두어야 가까이 오는 것이다. 둘째, 잡으려 하면 할수록 긴장만 고조되는 것이다. 통일에 대한 목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긴장만 고조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좇아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민족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제까지 우리는 38선을 허물어 버려야 분단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긴장과 전쟁을 의미한다. 그러면 가능한 방법은 없는가. 38선에 길만 열면 되는 것이다. 남한의 가족들도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산다. 우리는 이들을 이산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상도와 서울 사이에, 그리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벽이 없기 때문이다. 38선에도 길만 열린다면 이산 가족도 민족 분단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38선에 길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개방과 교류라고만 생각해 왔다. 이는 우리 위주의 생각이다. 북한의 입장은 다르다. 지금처럼 각기의 몫이 보장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개방과 교류가 이뤄져 보라. 북한 체제는 즉시 붕괴될 것이다. 이는 북한이 남한의 흡수 통일 정책에 말려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이 어찌 이를 수용하겠는가.

어떻게 해야 북한 체계를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북한으로 하여금 38선에 길을 열게 할 수 있는가. 남북한이 각각 독립 국가로 갈라서는 것이다. ‘통일하기 없기’가 시스템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고, 휴전선에 있는 군사력을 100킬로미터 후방으로 철수하며, 서로를 겨냥했던 총부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각기 상대방을 안심시켜 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군사력만 유지하는 것이다. 서로의 영토와 주권이 인정되고 존중받는 두 개의 독립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미국을 방문한 캐나다 국민이 간첩이 아니듯이 남한을 방문한 북한 주민도 간첩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교류가 일상화 돼 보라. 국민에게는 그것이 바로 통일이다. 이러한 교류가 지속돼 보라. 남북한 간의 수위가 점점 더 평준화 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

기업의 목표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이윤 극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윤을 목표로 하면 기업이 상한다. 근로자도 고객도 이윤 극대화의 도구로 취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선을 목표로 해보라. 이윤이라는 열매는 스스로 알아서 열린다. 이는 통일에도 적용된다. 통일을 목표로 해보라. 평화가 깨진다. 그러나 평화를 목표로 해보라. 통일은 스스로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남북한 간에는 크게 내 가지 문제가 있다. 통일 문제, 핵문제, 군축 문제, 그리고 평화 협정 문제이다. 이들은 따로따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라 하나의 줄에 연결돼 있는 패키지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이를 분리 접근해 왔다. 쉬운 문제를 어렵게만 만들어 온 것이다.

북한은 왜 핵무기를 개발했겠는가. 남한과의 재래식 무기 경쟁에서 낙오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후에 무기 경쟁양상은 어떠할까. 남한에는 500억 달러어치의 신무기가 쌓인다. 그러나 북한에는 단 한대의 전투기를 살 수 있는 달러가 없다.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무기는 고철로 변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남한은 율곡 투자를 줄이지 않으면서, 북한더러만 마지막 밑천을 거저 내놓으라고 한다면 북한이 순순히 응하겠는가. 북한에게 핵을 포기시키려면 북한의 안보를 보장해 줘야만 한다. 그렇다고 북한의 안보만 보장시켜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상호 안보는 상호 군축을 의미한다. 따라서 핵 문제와 군축 문제는 분리된 두 개의 문제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된 하나의 문제이다.

군축 문제와 평화 협정 문제도 분리 될 수 없는 문제다. 평화 협정의 전제 조건은 군축이다. 지금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전방에 배치시켜 놓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 사면서 평화 협정서에 서명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으로 군축의 전제조건은 평화 협정이다. 평화에 대한 의지가 확인되지 않은 마당에 누가 감히 군축을 단행하겠는가. 따라서 군축과 평화 협정은 상호 연관된 문제인 것이다.

평화 협정과 통일은 왜 분리된 문제가 아닌가. 평화 협정은 휴전 상태를 영구적 평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의 휴전선을 평화선 즉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국경선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제2체제-2국가 정책을 선택한다면 남북한 간에 놓여 있는 군축과 핵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 2체제-2국가 정책만이 평화의 가장 빠르고 공정한 지름길인 것이다. 이는 약간의 변화가 아니라 엄청난 변화다. 이 엄청난 변화를 남북한 당사국이 마주 앉아 협상해 낼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유엔과 주변국들의 중재와 보장이 필요하다. 과연 어느 신망 높은 지도자가 유엔과 이웃 국가들, 남한 국민과 북한을 설득하여 이러한 엄청난 위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북한보다 열악한 입장에서 이러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북한은 우리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욕심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보다 우세한 입장에 서 있는 우리가 이렇게 공정한 제안을 한다면 그들은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 위업은 지금 달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북한 경제는 가속적으로 붕괴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이 매우 위험한 시기인 것이다. '2체제-2국가평화' 카드는 한반도 냉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위업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시의성 있는 카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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