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가장 전형적인 문제사업은 방공 자동화 사업이었다(38)

율곡 비리가 필요이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세간에는 군사정권때 청와대와 군과의 관계가 마치 아이들의 병정잡기 놀이처럼 끝발이 높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압력을 가하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부각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히려 ‘젊은 누구를 만나야 발탁될 수 있고 진급할 수 있다’는 식의 무대포식 문민 끝발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비록 5~6공화국의 비도덕성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논리가 없으면 아무리 끝발이 높아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군인 대통령이 가장 무서워하는 집단은 군이었다. 군인 대통령들이 무대포식으로 율곡 사업을 좌지우지했더라면 아마도 또 다른 쿠데타를 불러왔을 것이다. 당시의 장관과 충장들은 군인 대통령에게 오히려 당당히 주장했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이미 결재한 사업도 번복시킬 만큼 집요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YS에게 누가 이렇게 했다면 그 다음 날 해고가 됐을 것이다.

국민은 사업 규모가 크면 리베이트의 규모도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당시의 두 군인 대통령들,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군 고위층들은 ‘소문난 잔치’에 손을 내밀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1982년부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방비는 물론 정부 전체의 예산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개혁에 엄청난 정열을 보였다. 전 정부 부서에 영기점 예산 제도를 강요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당시 윤성민 국방 장관은 5년 간에 걸쳐 엄청난 정열을 가지고 예산 개혁을 주도했다. 이는 예산 관리 근대사에 가장 칭찬받아야 할 엄청난 의식 개혁이었다. 문민정부에서는 착안조차 할 수 없는 과학화 노력이었다.

모든 군사 장비에 관리자가 임명되고 거기에 고장이 발생하면 각 관리자 앞으로 수리비용이 계상됐다. 이는 모든 병사들로 하여금 비용의식을 갖게 됐다. 장비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절약방법을 고안해 내서 표창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6공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절돼 있다. 국방 관리 개혁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전두환 대통령이 최고였다.

국방 관리 현대화 작업에서 전두환 씨의 업적을 100으로 잡는다면 지금의 문민정부업적은 0점 이하다. 해놓은 것은 없는 반면 모든 군인들을 복지 부동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율곡 사업은 1974년부터 태동됐다. 1985년과 1986년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율곡 사업의 문제점들에 대해 신경질적일 만큼 관심을 보였다.

1986년 당시 나는 홍릉에 있는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3년간의 모든 율곡 사업 성과를 낱낱이 재평가하라는 명령을 이기백 장관에게 내렸다. 결국 그 어마어마한 과제는 홍릉 연구소에 있던 내게 맡겨졌다. 그러한 명령은 지금까지 오직 전두환 대통령만이 내렸다. 따라서 율곡 사업을 총체적으로 평가해 본 사람은 아직까지 나와 나의 연구원들밖에 없다. 그는 율곡 사업의 충실성에 대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높은 관심은 가졌다.

그가 초미의 관심을 가졌던 사업은 공군의 방공 자동화 사업이었다. 1979년부터 1985년 7월1일까지 공군은 그 당시 가장 큰 규모의 ‘방공 자동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 사업만 완료되면 대한 민국 상공을 나는 새 한 마리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잡을 수 있다고 호언했다.

방공 자동화 장비는 1985년 7월1일부터 가동됐다. 중국으로부터 항곡기가 세 번씩이나 날아왔다. 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했고, IL-28기가 이리 지역 상공을 40분이나 헤매다가 연료부족으로 추락했다. MIG-21기도 날아왔다. 참새까지도 잡겠다던 방공 자동화 시스템은 어찌된 일인지 이 세 대의 항공기 중에서 단 한 대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전두환대통령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 사업은 당시 국방비의 8퍼센트에 해당하는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다.

나는 8개월간의 연구를 통해 그 장비의 소프트웨어 로직을 분석했다. 그 컴퓨터 로직을 가지고 공중 표적을 포착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2천5백억 원 짜리 사업이 불과 25원짜리도 될 수 없었다. 그 자동화 장비는 없는 편이 백번 낫기 때문이다. 유지비와 정비비가 엄청나고 인력은 이중으로 늘어났지만 그것을 믿다간 공중전은 백발백중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이더가 부정확하면 서쪽으로 날아갈 전투기가 동쪽으로 날아가게 되고, 공중에 떠 있는 전투기는 눈 먼 참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쟁이 나면 수동 장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전쟁이 나면 미군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에 미군의 신세를 질 수 있었다. 그러나 2억 5천만 달러는 공중으로 분해된 돈이었다. 이러한 나의 보고서는 기무사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군에 일대 난리가 났다. 합동 참모 본부에 20명 정도의 진상 조사단이 구성됐다.

이들은 이틀 간의 토의 끝에 현장으로 나갔다. 4대의 헬리콥터를 서쪽으로 띄워 놓고 자동화 장비가 이것을 어떻게 잡아내는지를 관찰했다. 자동화 장비의 화면에 무엇이 나타났을까. 실제로 서쪽에 떠 있는 4대의 헬리콥터는 잡히지 않고, 떠 있지도 않은 비행체 84대가 동쪽에 나타난 것으로 보여 주었다. 4대의 진상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84대의 허상만 보여주는 기막힌 장비였다. 그러나 공군은 이 사실을 지금까지도 숨겨오고 있다. 주한 미군이 있는 한 전쟁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전투력 약화보다는 책임추궁을 더 무서워해서 이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업비들이 많이 지출됐다. 에를 들면 호크라는 방공포는 이동 장비다. 전쟁이 나면 진지를 이동할 수 있도록 작전 개념이 정립돼 있고, 모든 장비가 이동 체제로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300억원에 해당하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 장비가 붙박이식으로 설치됐다. 이동식 유도탄과 붙박이식 통신 장비는 어느 모로 보나 우스운 것이었다.

미국의 4C라는 회사가 50억원에 해당하는 장비를 납품했지만 이는 모두가 겉만 흉내 낸 불량품이었다. 공군은 이 회사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해야 했다. 그러나 공군은 이를 숨기는 데 급급했다. 나의 문제 제기에 대해 공군 참모 총장을 선두로 수많은 공군 장교들이 로비와 압력행사에 나섰다. 이 문제가 대통령에 의해 제기되자 처음엔 하나회 국방 차관과 하나회 합참 작전 차장이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호언하며 나섰다.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공중 앞에서 다짐해 줄 때는 그들의 온 몸이 사명감이라는 금물로 화려하게 도금돼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그들은 공군편을 들기 시작했다. 나의 신변을 보호하겠다던 기무사 간부들이 갑자기 나를 보안 위규자라고 위협했다. 우군의 약점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장관과 차관은 나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렀다. 그들은 내가 군에서 나가 주기를 바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군을 나와 도미했다. 내가 떠나자 공군과 합동 참모 본부는 대통령에게 ‘방공 자동화사업 이상 없음’이라는 결론으로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나는 왜 이러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들춰내고 있는가. 어떤 것이 율곡 비리인가에 대한 전형적인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가장 잘된 사업은 가장 못된 것으로 평가하고 가장 못된 사업에는 관심조차 갖지 못하는 문민 정부의 비뚤어진 시각을 지적해 주기 위해서다. 그 후 이 자동화 사업은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초대형 율곡 사업은 공군에 맡기지 않고 국방부에서 직접 관장하도록 제도가 개선됐다. 당시 율곡 사업을 보면 가장 큰 낭비는 공군 사업에서 발생했다. 해군과 육군의 사업 관리 점수가 80점이라면 공군은 단 10점도 안됐다. 심지어는 개발되지도 않은 장비에 선금을 주어 미국 회사에 고스란히 바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공군은 비싼것만 좋아한다. 매우 다행인 것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공군에게 전담시키지 않고 국방부에서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국방부에서 담당했기 때문에 무조건 비싼 것만 사려는 공군의 행동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F-16기의 선택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율곡 사업 역사상 가장 깨끗한 케이스였다. F-16 제작 업체의 경쟁 매너도 깨끗했고, 청와대로부터 국방부에 이르는 모든 사업 담당관들의 업무 수행 매너도 가장 깨끗했다. 이는 22년간의 율곡 사업 역사를 통해 가장 모범 케이스로 칭찬받아야 할 사업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이끌어 냈어야 했다. F-16사업은 많은 교훈과 미담이 숨어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여론은 사업 관여자 모두를 비인격자로 매도했다. 이는 인격 사회, 합리주의 사고방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자기 비하 현상이었다. 꽃마을에는 지금도 오웅진 신부와 헌신적인 수녀들이 말없이 일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스스로의 자존심과 절대자의 뜻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러 있다. 율곡 사업에 관여하는 모든 군인들이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매도된다면, 한국 사회에는 과연 누가 인격자란 말인가.

장군의 얼굴, 장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얼마나 먹었을까’를 떠올리는국민들이 너무나 많다. 대통령 얼굴을 볼 때마다 ‘저 양반도’하며 그의 일그러진 미래의 모습부터 상상하는 국민들이 병적으로 많아졌다.

요사이 5공 율곡 비리가 새삼스럽게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6공 비리도 추적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어떻게 5공 비리를 추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비리 수사로는 사회를 가꾸지 못한다. 다시는 비리가 발생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손조차 대지 못하고, 사람 볶는 일만 계속하고 있다. 지난번 감사만으로도 충분히 율곡 관계자들을 복지 부동케 했다.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현 정부는 그 서툰 손을 가지고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해 자숙해 봐야 할 것이다. 부정은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권자의 무능은 더욱더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Prev	기종결정 과정에는 누구의 끝발도 작용하지 않았다(39)	지만원


Next	F-16기 성능에 대해 긍지를 갖자(37)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