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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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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창시절(기고문)

어머니는 나를 47세에 낳았고, 아버지는 53세였다. 늦둥이라 귀여움은 한 몸에 다 받았지만 기골이 약해 늘 배알이를 했다. 여섯 살 되던 해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발목을 덮을 만큼 눈이 내려 있었다.

아침상에는 노란 좁쌀밥과 짠김치 그리고 구수한 숭늉이 올라 있었다. 문풍지 사이로 뽀얀 햇살이 들어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좁쌀밥 위를 비췄다. 형들은 각기 열세 살과 열여섯 살이어서 의젓하지를 못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궁둥이에 손을 대고 입으로 방귀소리를 그럴 듯하게 낸 후 그 거무튀튀하고 투박한 손을 나의 밥그릇 위에 갖다 덮었다.

오돌거리는 조밥이 못마땅한 터라 나는 숫가락을 집어 내던지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밥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다가 다시 가져와서는 새 밥으로 바꿔왔으니 어서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밥을 검사해보고는 엄마가 속였다며 더 신경질을 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커다란 바가지를 가져다가 물을 잔득 부어 가지고 내가 보는 앞에서 조밥을 씻었다. 방귀가 깨끗이 씻어졌으니 먹으라는 것이었다.

일곱 살이 되자 개굿했던 바로 위의 형이 나를 초등학교에 업어다 입학시켰다. 말이 일곱 살이지 생일이 12월인 나는 여섯 살에 불과했다. 반에는 장가를 간 학생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등에 찼던 책보를 쪽마루에 팽개치고 허리에까지 축 늘어진 어머니의 젖부터 찾았다. 부엌에 계시던 밭에 계시던 관계없이 젖꼭지를 손으로 두어 번 문지르고서는 짠 맛을 즐겼다.

열 다섯 살 때. 형들은 나에게 괭이를 들려 땅을 파게 했지만 몇 번 땅을 찍기가 무섭게 물집이 생겼다.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용돈이 아까워 동네 형들을 따라 청량리로 무임승차를 했다.

당분간은 동네 형들의 자취방에 머물기로 하고 그 다음날 숭인동에 있던 3류 중학교를 찾았다. 낯선 교무실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니까 인정 있어 보이는 선생님이 불렀다. 영어 선생님이었다.

'야, 요놈 봐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총기 괘나 있게 생겼구나. 너 이 영어 책 한 번 읽고 해석해봐'. 동네 형들이 배우던 책들을 물려받아 혼자서 깨우쳐 가는 동안 내게는 독학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어, 요놈 시골뜨기치고는 제법인데!" 영어선생님이 나를 수학선생님한테 데려갔다. "선생님, 요놈에게 2학년 짜리 수학문제 하나 내보십시오" 나는 특히 응용문제를 잘 풀었다.

"그래, 너 오늘부터 2학년이야" 전학증도 없는 나를 영어선생님은 2학년 반에 앉혔다. 변두리 학교의 낭만이었다. 그후 나는 학교를 가다 말다 했다. 학비를 낼 수 있으면 찾아갔고, 없으면 슬며시 그만 두었다. 선생님은 내가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학교를 다시 찾아준 것만도 고마워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에 나는 겨우 3년을 다녔다. 중고등학교에서는 학교 반, 독학 반이었다. 그 독학실력으로 나는 육사에 입교했고, 학비를 버는 과정에서 삶의 메커니즘을 공부했다.

공부 반, 독서 반, 이것이 내 육사생활이었다. 그 공부 덕택에 나는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와 응용수학 박사를 땄고, 그 독서 덕택에 나는 지금 12년 째, 글쟁이 노릇을 하고 있다.

독학, 예습, 독서는 응용력을 키우기 위한 최상의 길이 아니었나 싶다.

2001.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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