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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잃은 서울대와 여당의 전면전

[태평로] 초점 잃은 서울대와 여당의 전면전

김형기·기획취재부장

입력 : 2005.07.07 19:50 55'

▲ 김형기/기획취재부장

2008년 입시를 둘러싼 서울대와 정부·여당의 싸움은 가위 목불인견(目不忍見)이다. 이 문제에 관심도 안 보이던 여당이 대통령 말씀 한마디에 ‘전면전’이니 ‘초동진압’이니 펄펄 뛰는 모습은 추하다. 엊그제까지 “서울대 입시안(案)에 별 문제가 없다”고 하다가, 역시 대통령 한 말씀에 표변해버린 교육부 관리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한심하고 처량한 것은 그런 정부의 오락가락 입시 정책에 어쩔 수 없이 이리 몰리고 저리 쏠려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다.

이번 싸움은 기본적인 논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채 감정적 충돌 양상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여당과 서울대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본고사다” “아니다” 하며 다투고 있지만, 애당초 ‘통합교과형…’과 ‘본고사’는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본고사’는 예비고사나 자격고사 등에 대비되는 절차적인 용어이고, ‘통합교과형…’이란 시험의 출제 유형 또는 내용을 의미하는 용어다. 예컨대 ‘본고사’ 문제를 ‘통합교과형 논술’로 낼 수도 있고 ‘개별교과형 논술’ 혹은 이도 저도 아닌 ‘골라잡기 사지선다’로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싸움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용어 구사마저 서로 헷갈리는 말다툼이 아니라, 서울대 나아가 모든 대학들의 자체 본고사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논점을 명확히 잡아놓고 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서울대도 “통합교과형 논술은 본고사가 아니다”라는 식의 뻔한 말장난으로 빠져나가려 하지 말고, “우리 방식으로 원하는 학생을 뽑겠다”고 떳떳하게 나가는 것이 옳다.

여당이 서울대에 주문하는 것은 내신과 수능으로만 신입생을 뽑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강남 특권층’이 아닌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판단이다. 이 판단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시골 고등학교에서 1등 하는 아이가 당장은 점수 따기로 단련된 도회지 학생보다 뒤져도 더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서울대가 우선 입학정원의 3분의 1을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배정하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고심한 결과로 볼 만하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수능까지 지원자 우열을 가리기 힘든 등급제로 바뀌게 됐으니, 서울대가 본고사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여당은 또 본고사를 허용할 경우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비 증감은 입시제도와 별다른 함수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의 결론이다. 과외비 통계가 처음 잡힌 1977년 당시 사교육비가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7% 정도였다. 그후 본고사가 폐지되고 수능시험이 도입돼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사교육비는 줄기차게 늘어나기만 했다. 지금은 GDP 대비 3.4%로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수능이 도입되면 수능과외가, 내신이 강화되면 내신과외가 생겨났다. 결국 사교육비의 총량은 입시제도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사교육비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길은 사교육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더 나은 지위와 명예, 부(富)를 위해 너도나도 일류대학을 찾는 사회의 수요가 있는 한 지엽·말단적인 입시제도 하나 바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가는 학벌 없이도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큰 스케일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지, 대학이 학생 뽑는 데까지 시시콜콜 간섭할 일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선진국이다. 정부·여당 대 서울대의 싸움은 어정쩡한 타협으로 끝낼 게 아니라, 차제에 대학 자율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한 차원 높은 토론으로 승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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