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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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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범과 공권력의 게임

1999년4월. 절도범 김강룡씨의 진술이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을 유발했다. 집권세력은 일개 절도범의 진술을 가지고 자기들을 음해하려 한다고 서운해했다. 야당의 행동은 집권 세력에게 못마땅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이러한 집권세력이 못마당해 보일지 모른다.

공직자의 투명성은 "양심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외향적 행적에 의해"(by appearance) 남보기 좋게 증명돼야 한다. 개혁세력들의 양심이 아무리 깨끗해도 외향적 행적이 투명하고 공명정대하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의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집권세력이 지금까지 취해온 외향적 행적은 깨끗한 행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먼저 경제개혁을 위한 행정을 보자.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able hand) 즉 시스템에 의해 운영돼야 한다. 따라서 경제개혁은 "낙후된 시스템"을 "현대화된 시스템"으로 고치고 그 개선된 시스템에 의해 경제가 저절로 개혁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정부의 경제개혁은 처음부터 "보이는 손"(visable hand)에 들려진 칼자루에 의해 집행됐다.

개혁세력이 기업체의 살생부를 만들었다. 위태로운 기업들은 그 살생부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워크아웃에 의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에게는 경영권을 빼앗겠다고 으름장도 놓았고, 마음에 드는 기업을 봐줄수도 있었다. DJ정부의 개혁세력이라 해서 100% 도덕적 천사로만 구성될 수는 없다. 그래서 더러의 기업은 개혁세력에게 돈가방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다.

개혁실세들이 경제개혁을 "보이는 손"을 가지고 실행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돈을 갖다 달라"고 유혹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실세들 집에서 돈다발과 금괴가 쏟아져나왔다 해도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을 보면 그 시스템이 낳는 결과는 안봐도 충분히 예상이 가지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느 부서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돈뭉치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한국 세태의 역사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금감원에 힘이 가장 많이 실렸다고 한다. 금감원 간부들에게 줄을 대고 싶어하는 기업이 많다는 얘기들도 들린다. 대통령의 경제 자문 제1호는 실세중의 실세로 알려졌다. 그런 인사에게라면 빈공간 없이 채워진 달러가방 하나쯤은 충분히 선물로 줄 수 있는 세태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검찰이 아니라서 사실 여부는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리고 양심 여부를 떠나, 집권세력 전체의 외향적 행적은 상당한 수의 국민들로 하여금 "아! 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을거야"하고 끄덕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집권세력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양심이 깨끗하다고 주장한다 해서 집권세력 전체를 향한 국민의 의혹이 모두 풀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난 절도범 사건 하나하나가 진실이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는 작은 문제다. 문제는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김강룡이라는 절도범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미묘하게 형성돼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김강룡씨의 절도는 개인적 차원의 절도인가 또는 시스템 차원의 절도인가? 신문에는 절도 일자가 명시되지 않았다. 만일 단기간내에 실세들의 집만 털었다면 이는 김강룡씨 혼자서 한 개인적 차원의 절도가 아니라 팀플레이에 의한 시스템 차원의 절도다. 이는 수사의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김강룡씨의 형량은 무거울까 또는 가벼울까에 대한 분석은 사실 여부 및 현정부의 도덕성을 판가름하는데 일조가 될 것이다. 만일 김강룡씨가 계산있는 고급 절도자라면 그가 붙잡혔을 때 다음과 같은 계산을 했을 것이다. 다섯 사람 중에 우선 세 사람을 희생시켜서, 나머지 두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고, 그 두 사람의 힘으로 형량을 가볍게 하려고 기도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김강룡은 그가 희생시킨 세 사람에 대한 증거를 확실히 해서 신뢰를 쌓아야만 한다. 그러나 실세들이 살기 위해서는 김강룡씨의 신뢰를 떨어트려야만 한다. 만일 세 사람에 대해 그가 진술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가 숨겨준 두 사람의 실세로부터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손을 기대할 수 없는가?

아닐 것이다. 설사 김강룡씨의 진술이 신뢰성을 얻지 못했을 경우라 해도 나머지 두 장관들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두 장관들의 명예에 치명적일 수 있다. 남아 있는 장관들을 살리는 것은 집권당을 살리는 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실세가 절도범의 형량을 가볍게 해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만일 그의 형량이 통념에 비해 가벼워지면 이 또한 의혹의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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