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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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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놀음에 치우친 수출고

우리 제품의 수출단가는 매년 내려가고 있다. 95년도 수출단가를 100으로 했을 때 지금은 얼마나 받고 있는가. 전자제품의 현 수출단가는 겨우 20%, 중화학제품은 51%, 화공품은 53%이다. 더러는 환율이 1,200 이하로 내려가면 수출전선이 위협받는다고 말하지만 설사 환율이 1,200 이상으로 올라가도 환율을 가지고는 기울어져 가는 국제 시세를 당해낼 수 없어 보인다.

국제시장에서 수출단가가 내려간다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나는 그만큼 우리 제품들이 구식 화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전 세계적인 생산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국제 단가가 그만큼 내려갔을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출하고 있는 제품들은 첨단제품이나 지식제품이 아니라 찍어내는 제품, 구식 제품들이기 때문에 수출단가의 하락 현상은 곧 제품의 사양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산업의 기초를 형성하는 소재와 부품 산업을 보아도 경제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소재 및 부품의 수출입도 소수 품목에 편중돼 있다. 수출에서는 반도체, 전기전자, 섬유 소재 등의 3대 품목이 68%를, 수입에서는 반도체, 전기전자, 석유화학, 철강 소재 등의 4대 품목이 82%를 차지하고 있다. 소재 및 부품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52% 정도이고 보면 우리 나라 전체의 무역 품목은 불과 몇 개의 주력 품목에 치중돼 있다는 사실을 또 다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출고라는 것에도 거품과 구멍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업체가 자동차를 외국에 직접 수출할 때의 수출단가가 1만 달러일 경우 그룹은 이 자동차를 외국 지사에 직접 내보내지 않고 먼저 그룹내의 종합상사에 1만2천 달러에 판다. 종합상사는 여기에 마진을 얹어 예를 들어 1만 2천5백 달러의 수출단가로 해외지사에 내보낸다.

그룹은 어째서 이렇게 한 단계를 더 거쳐서 수출단가를 높일까? 제조업체가 직접 수출을 하면 그룹 수출고가 단가 1만 달러씩에 계산되지만, 종합상사를 통해서 수출하게 되면 수출고가 단가 1.25만 달러씩에 계산된다. 수출고가 높아야 그 만큼 더 많은 수출 지원 금을 은행에서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자동차가 항구를 출발하면 외국에서 자동차가 팔리기도 전에 그룹은 수출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여러 계열사들에 운용자금으로 배급한다. 나중에 자동차가 팔리면 그 대금으로 은행에서 꾸어간 돈을 갚아야 했지만 그룹들은 그 돈을 해외에서 다른 용도로 소화해 버린다. 빚을 갚지 않겠다는 배포다. 돈을 꾸어준 은행들도 받을 생각을 않고 있다. 그래서 일단 은행에서 돈을 꾼 이상 그룹은 해외에 나간 자동차가 팔리든 안 팔리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건만 배에 실으면 재벌들은 최장 3년간 저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고, 정부는 수출실적을 높여 국민에게 업적을 홍보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간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에 의해 수출실적이 부풀려 지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이런 혜택을 받은 (주)대우의 경우 장부에 나타난 자산가 29조 가운데 17조가 구멍이 나버린 것으로 실사됐다.

200달러 흑자라고 정부는 홍보하고 있지만 이 흑자는 사실상 유령 수치에 불과하다. 그 흑자 속에는 떼어먹힌 은행돈이 들어있고, 팔리지 않아서 녹쓸어 버린 차량도 들어있고, 몇 년이 지나야 조금씩 들어오는 푼돈도 들어있다. (주)대우가 가장 많은 수출을 했다지만 수출고는 허깨비 같은 은행 장부에만 잡혀 있고, 번 돈은 누군가에 의해 산산이 증발돼 버리고 없다. 대우의 빚이 95조로까지 누적될 수 있었던 것은 은행과 정부와 기업이 국민이 저축해놓은 돈을 서로 나눠먹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은행 장부에 적혀있는 허울 좋은 수출고의 상당액은 고스란히 떼어버린 돈이 됐고, 그 구멍은 모두 국민더러 메워라하고 있다.

수출고라는 것은 골다공증에 비유될 수 있다. 더러는 한낱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음미해보고 있노라면, 마치 기울어져 가는 한국호의 실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시스템학자 또는 과학기술자들에겐 이렇게 확연히 보여지는 운명이 어째서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들에겐 보여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실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들은 아직도 한국경제의 기초 즉 펀다멘탈이 튼튼하다고 말하며,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1999년12월 고려대 신문이 재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한 민국의 10대 거짓말 중에서 제1위를 차지한 것은 "한국 경제의 퍼다멘탈이 튼튼하다"는 말이었다 한다. 학생들의 65%가 이를 제1의 거짓말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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