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응급실 한국경제 돌팔이 의사들이 죽이고 있다

1980년 대 말부터 이미 한국경제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역대의 한국경제 의사들은 중환자를 앞에 놓고도 중환자로 식별하지 못했다. 명의는 병의 근본 원인을 발견하고 근본 치유책을 내놓지만 실력이 처지는 의사는 증상에만 치우치다가 병을 키워간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경제를 다루는 의사들은 이런 의사들보다 훨씬 못한 돌팔이들이다.

한국경제의 근본원인은 수명이 다 해버린 병든 시스템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년 이상 DJ 진영에 기용된 경제의사들은 시스템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중세를 걷어다가 금융, 기업, 농어촌,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병균을 대량으로 사들여 가지고 이를 마구 주사함으로써 망국병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병원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경제의사들 역시 지난 2년 이상 한국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고 박수를 쳐주다가 최근 몇 일 사이에 태도를 바꾸어 제2의 경제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는 진단과 처방 역시 시스템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처음부터 부족하게 투입해서 금융시장이 불안하다느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 경제의 영향을 받아서 주가가 침체되고 있다느니 하는 대증요법 식의 처방이 난무할 뿐이다. 감히 단언하건데 이러한 의사들로는 절대로 침몰돼 가는 한국경제를 구하지 못한다.

나는 가칭 "DJ경제 중간 평가"라는 책을 지난 10월부터 준비하여 금년도 2월에 탈고를 했다. 몇 개의 출판사들이 처음엔 출판 의지를 보이다가 "지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데 이런 책은 좀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며 출판을 꺼려했다. 그러나 이 책은 아마 6월 중순 이전에 출간될 것 같다. 그만큼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은 세 몰이 식 여론진단의 대상이었지, 냉정하고 과학적인 진단이 아니었다.

그 책의 머리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타이타닉 호가 수많은 이들의 꿈과 사랑을 수장시켰다. 그 꿈과 사랑은 스무 살이 채 안된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응집됐다. 거미줄 같은 상류사회 규범에 얽매여 숨막혀하는 로즈의 억압된 영혼을, 떠돌이 삶을 살면서도 신선하고 자유분방한 영혼을 간직하면서 하루하루를 농도 있게 살아가는 잭 도슨이라는 하류사회 청년이 해방시켜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단 하루를 지속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수장될 수밖에 없었다.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 사랑이 귀하고 안타까웠던 것만큼 그 배를 무책임하게 질주시켰던 선장이 미웠다. 2천여 명의 생명을 책임진 선장은 엉뚱하게도 다음날 아침 뉴욕의 일간지를 장식할 자신의 영광에 도취돼 있었다. 갑판 위에 나와 부하가 따라주는 따끈한 홍차의 맛을 음미하는 선장의 얼굴에, 위험에 대비하려는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비참했던 화면 속을 흐르는 그 음산한 테마 곡이 왠지 한국의 서쪽 하늘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것 같다. 한국호의 선장에 왠지 타이타닉 호의 선장이 오버랲 되어 오고, 타이타닉 호의 마지막 아비규환이 우리의 모습으로 클로즈업되어 오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꿈, 나의 사랑을 실은 한국호가 지금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빈곤과 무질서가 내 자식들의 꿈과 사랑을 앗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세금과 물가에 쪼들릴 우리 자식들의 비참한 환영이 부각되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IMF를 위기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여름날의 지나가는 한줄기 소나기에 불과했다. 그것은 종금사, 은행, 기업들이 마구잡이로 외화를 꾸어다 쓰고 갚을 날짜에 갚지 못해서 발생한 금융 사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에게 곧 다가올 위기는 총체적 경쟁력 상실과 대량 실업으로부터 오는 구조적이고도 만성적이며 매우 비참한 진짜 위기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경제는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이제는 브레이크 마저 빠져 버렸다. 더러는 경기가 좋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찻잔 속에 나타난 일시적 착시 현상이요, 2년 동안 정부가 풀어헤친 230여조 이상의 돈이 대패 밥처럼 타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30년 전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가 지금처럼 가라앉았듯이 우리도 그렇게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1997년12월 3일 한국은 IMF로부터 580억 달러의 구조금융을 받기로 하고 경제 주권을 넘겨주었다. 한국사회는 마치 국권을 찬탈 당한 것과 같은 수치감과 위기 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경제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경제 대통령, 통일이라면 자신 있다던 통일 대통령에게 미래를 걸었다.

이러한 국민의 여망과 지지를 한 몸에 안고 그는 지금 3년째 집권하고 있다. 그의 업적에 대해 더러는 높이 평가하고 더러는 낮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충분한 설득력으로 뒷받침된 정론은 아직 없어 보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 DJ는 지금까지 이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잔여 임기동안에 그는 이 사회를 어느 곳으로 끌고 갈 것 같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호가 잘 달리고 있다며 축배를 들고 있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저자는 한국호가 타이타닉 호처럼 빙산을 들이받아 이미 두 동강이 나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거대한 선체가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보여지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현정부의 무 정견 한 경제운용 실태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현실을 하루라도 빨리 직시하고 위험한 곳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한국호의 궤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쓰여졌다. 만일 타이타닉 호의 누군가가 선장의 엉뚱한 욕심과 안이한 자세를 문제삼았다면 그 배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2000.5.20


Prev	듣기조차도 싫은 펀다멘탈	지만원


Next	빅딜의 문제점을 회고하자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