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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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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시간을 단축하라

  “열심히 일하라”, 이 명령은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기시간을 단축하라”, 이는 시스템 개선으로 이어진다. 명령을 보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시스템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대기시간’이란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일을 하고싶어도 작업 여건이 마련되지 못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작업은 하고 싶은데 설계도면이 공장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작업자들은 공장에서 할 일 없이 대기한다. 작업을 시작하려하는데 엉뚱한 자재가 구매된 것이 발견되면 작업이 중단된다. 등등의 이유로 근로자들이 하릴없이 대기하는 시간은 대체로 전체 유급시간의 50% 이상은 될 것이다.

  “연 전에 삼원정공에 이어 삼성이 초 관리를 강조해왔다. 1992년 당시 담배 한 대 피우는 데 900원, 커피 한잔 마시는 데 1,800원이 사라진다는 것이 한국식 시간관리 개념이었다. 시간이 돈이니 촌음을 아껴 쓰라는 것이 초 관리의 기본 철학이다. 이러한 초 관리 개념에는 시스템 개념이 전혀 없다. 따라서 초 관리 방식을 가지고는 절대로 공장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없다. 하지만 대기시간을 단축하려면 대기시간을 유발하는 원인부터 따져가게 만든다. 간단한 몇 가지 요소만 따져봐도 대기시간이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을 직감케 한다.

  영업활동이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고객 측에서 받아오는 설계개념과 기술자료에 하자가 내포돼 있으면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고객 측에서 간과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빠트린 게 무엇인지, 영업단계에서 자세히 챙기지 않은 기술자료들이 설계 부서로 넘겨지면 설계에 에러가 생기게 되고, 이는 곧장 대기시간으로 연결된다. 설계에서 요류가 생겨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잦은 설계변경, 틀린 설계는 수많은 재작업을 유발하고 이는 엄청난 대기시간을 유발한다. 설계가 요구하는 재료의 종류와 수량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다. 주문을 해서 납품돼 오는 데 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만일 주문한 품목과 수량에 단 한 가지의 오류라도 발생하면 작업이 몇 개월씩 지연된다.

  문서를 작성하는 시간, 결재를 기다리는 시간들도 공장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3층에 있는 과장이 2층에 있는 부장, 1층에 있는 이사의 결재를 받으려고 때로는 1주일씩 소비하기도 한다. 품질검사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외부 벤더에서 부품과 재료를 주문했을 때, 일일이 품질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업무량이 매우 방대하다. 납품돼오는 기다란 원통에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창고에 입고될 때 발견되지 못하고 제작 시에 발견되면 제작이 시작될 때에 원통을 재 주문해야 한다. 이 역시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아침 회의가 대기시간에 영향을 미친다. 간부들이 아침마다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사장은 흐뭇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침 회의가 끝날 때까지 근로자들은 작업지시를 받지 못해 대기한다. 용접공이 불량을 일으켜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에러도 대기시간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많은 경영인들은 이런 데에 착안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에러와 대기시간은 고객 측의 오류로 인해 발생하고, 혐력업체 입장에서는 고객을 왕으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로 인해 통상 한국 기업들은 실제비용을 적정비용의 2배 이상 발생시키고 있다.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고 치자. 주문 내용 하나 하나를 분해 분석하여 과제 참여자 모두에게 낱낱이 설명해주지 못하면 설계, 계산, 도면, 자재소요, 용접시방, 품질검사 등에 참여하는 모두가 에러를 낸다. 현장에서는 할 일이 없어 근로자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도면이 미처 내려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설계 요원들이 노는 게 아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한다. 일은 하지만 주문된 제품에 대한 개념을 설명들은 바 없어 제각기 헤맨다. 그래서 A라는 설계자는 나름대로 생각하다가 원숭이 다리를 설계하고, B라는 설계자 역시 혼자 헤매다가 토끼 머리를 설계한다. 그렇게 오해된 설계를 하면서도 혼자서 이리저리 오해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주문품 전체에 대한 개념과 스펙 서머리(Spec Summary)를 해주는 마스터가 없기 때문이다.

비싼 철판을 이리 전리 절단하여 재단을 해놓았는데 갑자기 수정된 도면이 내려온다. 품질검사 요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몰려드는 검사항목을 제때에 감당해내지 못한다. 어느 누구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공장에서는 대기시간이 늘어진다. 대기하는 시간에도 노임은 나간다. 검사에 중대한 불량이 지적되면 여러 날 동안 작업이 중단된다. 낮 시간은 이렇게 보내고 공장은 밤에 가동된다. 밤에 일하면 시간대에 따라 시간당 급료를 1.5배에서 3배로 지불케 한다. 심야에 일을 하면 피로한 데다 감독이 없어 효율도 떨어지고 에러가 많다. 에러가 나면 원상복귀 시키는 데 시간이 들고 재 작업하는 시간이 배수단위로 증가한다. 완성된 제품에 하자가 생겨 수억원 어치의 자재와 노임이 들어간 완제품이 통째로 버려진다. 이렇듯 엄청난 낭비가 다반사로 발생하지만 처벌이 두려워 경영진에게는 보고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대기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전문가의 눈에 저절로 보이는 낭비조차 보지 못한다.

기업을 시너지 체제로 바꾸는 것은 학교를 다니고 강연을 듣는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어깨 너머로 얻어들은 지식이나 경영학자의 코멘트 몇 마디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외부의 시스템 전문가가 설계해주고 실천을 위한 리더십까지 만이라도 담당해 주어야 한다. 단언하건대 한국기업에서 내부인력을 가지고 선진기업에 맞먹는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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