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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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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쟁력

일본의 경쟁력 기반은 맥아더가 닦아주었다. 태평양전쟁 전 일본재벌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유능한 청년들을 발탁해 군부로 보냈다. 군부는 재벌들이 보낸 유능한 젊은 장교들로 채워졌다.

일본 군국주의의 싹을 도려내려면 재벌을 없애야만 했다. 이것이 맥아더 사령관의 논리였다. 그는 일본재벌을 철저히 해체했고 하인들에게는 엄청난 인권을 부여했다. 노동법을 만들어 노조를 결성케 했고 고용주 마음대로 종업원을 해고시키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서 일본에는 자본과 인권이 다 함께 민주화됐다.

맥아더는 재벌들의 재산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했고 상속세율을 85%로 올렸다.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리던 재벌들이 단 한 명의 하인도 둘 수 없게 되었으며 상속받은 재산을 가지고는 호화주택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누구나 뛰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세청으로 하여금 최고 수입자들의 명단을 신문에 공고토록 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 힘을 이용하여 행정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최고 경영자의 봉급은 신입사원 봉급의 8배 이상 높지 않도록 했으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로 인해 근로자와 경영자간에는 지위상의 갭이 없게 됐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많은 보너스를 간부들에게 내리지만 일본에서는 회사가 아무리 많은 이익을 내도 간부들에게 보너스를 내리지 않는다.

주주에게도 배당금이 얼마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배당금에 엄청난 세금을 물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주주들은 배당금을 찾아가기보다는 재투자해서 주식 값이 오르기를 바랬다. 값 오른 주식을 팔아서 얻는 돈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은 엄청난 평등주의(Egalitaranism)요 사회주의였다. 맥아더라는 공정하고 유능한 호민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일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개혁이었다. 사원들의 급여는 연공서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의 종류에 따라 정해졌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은 더 높은 보수를 받았다. 많이 버는 사람과 적게 버는 사람간에는 생활수준의 차이는 있어도 축적된 부의 차이는 별로 없다. 따라서 이들의 가치관은 얼마의 부를 축적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로부터 어떻게 인식되어 지느냐에 조율되어 있다. 행복의 조건은 돈이 아니라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가치관이 일본 기업을 키워낸 것이다.

일본은 철광석의 99.6%를 오세아니아, 인도양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의 99.8%, 천연가스의 79.2%,석탄의 92.7%, 망간의 99.0% 그리고 크롬의 93.5%를 페르시아만, 오세아니아, 인도양, 서남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 먼 곳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자원의 보고이며 과학기술의 요람이자 현대 경영학이 싹튼 곳이다. 모든 요소에서 일본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는 미국 경제가 오늘날 일본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일본의 경영능력이 미국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변호사들의 천국이다. 미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변호사가 있으며 매년 4만 명 정도의 변호사가 양성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역할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 일을 지연시키고 있다. 사건이 해결되면 보험금이나 재판 판결 액의 65%를 챙긴다.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이 변호사들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일본 인구는 미국 인구의 반이나 되지만 일본에는 겨우 2만 명도 채 안 되는 변호사들이 있을 뿐이다. 해마다 300명 정도의 고시합격자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로 갈라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사건이 너무 밀리기 때문에 법에 의존하거나 변호사를 활용하기보다는 당사자간의 타협에 의해 분쟁이 해결되고 있다.

미국이 변호사를 대량으로 양성해 내고 있을 때 일본은 엔지니어를 양성했다. 기술을 소화해서 상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일본은 미국보다 2배 이상의 많은 엔지니어를 가지고 있으며 전자공학 분야만 해도 매년 2만 4천명의 엔지니어가 배출된다.

그 결과 1985년 미국의 3대 DRAM 제조사인 모토롤라, 인텔 그리고 몰스텍이 일본의 집중공격으로 생산라인을 폐쇄했다. 1970년대에 1K DRAM 제조에서 미국 업체 수는 14개였던 반면 일본 업체 수는 8개 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5년 256K DRAM에서부터 미국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오던 3대 제조 업체 저져 잃고 말았다. 반면 일본에는 13개회사가 건재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은 교육구조를 혁신하고 있다. 인문계를 대폭 줄이고 자연과학에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WTO 시대를 맞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도 캐나다도 자연과학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실험 기기 하나 없는 대학들만 나열해 놓고 앉아 의식개혁만 소리 높여 외친다고 세계화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 경영의 핵심은 최고 경영자의 철학과 일선 리더십이다. 1950년대에 일본 기업들의 모토는 '서구를 모방하자'(Copy the west)였으나 이는 곧이어 '서구를 따라잡자'(Catch up with the west)로 바꾸었다.

일본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줄줄이 미국을 방문해서 공장문을 기웃거렸다. 미국은 촌스럽기 짝이 없는 일본 방문객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일본은 죽었다 깨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이 일본인들에게 행했던 연설문에는 멸시의 정서가 역력히 배어 있었다.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매우 훌륭한 손수건과 파자마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팔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후 불과 20년 만인 1975년도에 일본의 자동차 생산성은 미국을 앞질렀으며 1982년 미국인들의 자동차 만족도 10위권 조사에서 일본 차종이 6개, 독일 차종이 3개 그리고 스웨던 차종이 1대로 나타났다. 미국 차는 단 한대도 10위 권 내에 들지 못한 것이었다.

일본 경영의 핵은 최고 경영자의 일선 리더십이다. 1950년대에 미국과 유럽은 당시 과학적 경영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테일러 생산 방법에 중독돼 있었다. 이는 소수의 과학 기술자로 하여금 각 공정에서의 작업방법을 표준화하도록 하고 근로자는 단순한 작업 방법만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근로자의 정서나 근로자의 창의력은 철저히 무시되고 인간은 오직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에 불과했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면 숙달로 인한 생산성이 급커브로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불량률을 자아냈다.

당시 미국이 낳은 품질관리 이론의 대가들은 미국의 이러한 경영방법을 비난했지만 미국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일본의 과학기술자 협회는 미국이 낳은 대가들을 줄줄이 모셔다가 가장 먼저 최고경영자들을 변화시켰다.

당시의 경영자들은 일본 근로자들이 과거의 처지를 모르고 매카더 사령관 덕분에 너무 날뛴다고 몹시 못 마땅해 했다. 근로자들의 정신이 썩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근로자들은 경영진의 억지를 비난하고 나섰다.

일할 수 있는 도구도 제대로 갖추어 주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작업능률이 오르는지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정신력만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데밍 박사는 미국이 낳은 대가이다. 그는 정신적 접근방법(Spiritualism)을 배격하고 과학적 접근방법을 택하도록 일본인들을 교육했다. 미국은 그를 냉대했지만 그는 일본 품질관리의 아버지로 영원히 숭앙 받게 될 것이다.

1950년부터 해마다 일본은 '데밍'상을 수여해 왔다. 데밍상은 산업계의 노벨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1987년에야 비로소, 재직시에 사망한 미 상무장관 '말콤 발드리지'의 이름을 따서 발드리지 상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그의 8시간 짜리 강의 내용은 간단히 집약될 수 있다. 품질은 손재주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혁명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면 인간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

인간의 품질은 경영능력에 의해 향상된다. 경영의 품질이 인간의 품질을 낳고 인간의 품질이 제품의 품질을 낳는다. 일본의 최고 경영자들은 1946년에 이것을 배웠다. 일본 경영은 여기서부터 미국을 앞서가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결론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제품의 품질이 나빠지자 근로자들의 의식을 탓했다. 근로자의 의식을 교육시켜 달라고 산재해 있는 '연구소'를 통해 장돌뱅이 강사를 모셔갔다.

50년 전의 일본 최고 경영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먼저 변했다. 그러나 한국 경영인들은 아직도 그들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제품의 품질이 그들 자신의 품질인 것임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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