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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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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캐쉬 카우(Cash Cow), CM기업

건설을 잘 모르는 자본주(발주자)가 63빌딩 같은 걸 짓고 싶어한다고 하자. 그는 설계사, 시공사, 감라사를 선택하여 계약을 해야 한다. 설계회사가 도면을 그려 왔다고 하자. 자본주는 혼자서 설계도면의 품질을 평가할 수 없다. 시공회사가 시공 계획서를 가져왔다고 하자. 자본주는 그에 대한 타당성도 검토할 수 없다. 감리 회사가 "내게 맡겨 주십시오"하고 나섰다 하자. 그 감리사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 세 종류의 회사를 상대하려면 상당한 참모진으로 구성된 건설본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건설본부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설본부 구성요원들은 전문성에 있어서나 경영면에 있어서 자본주의 이런 목적을 바람직한 수준으로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이러한 자본가를 대신하여 건설의 타당성 분석, 사업 및 건축물에 대한 청사진, 자금조달(Financing), 행정 등을 포함하여 건축물의 설계, 시공, 감리 회사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관리하여 자본주의 소망을 만족시켜주는 회사가 바로 CM(Construction Management)회사다. 건설을 경영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역시 시공이나 감리 경력을 가진 업체들이 CM 기업으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러한 기업들에는 C(Construction)만 있고, M(Management)이 없다. 건설을 아는 쟁이만 있지 분석과 경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전무한 실정인 것이다. 특히 한국의 건설인들은 그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노가다 식 건설분야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경력이 길면 길수록, 직위가 오르면 오를수록 고정관념의 벽이 높고 CM사의 핵심인 분석과 경영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만큼 사고방식이 굳어져 있다. 이들은 무늬만 경영인이지 실체는 경직된 고급 공무원에 불과하다.

훌륭한 CM사라면 자본가의 상식 스펙을 기술 및 예술 스펙으로 전환하여 설계 회사에게 확실한 요구(Requirement)를 내려주고, 개념설계(Concept Design), 기초도면(Basic Drawing), 상세설계(Shop/Working Drawing) 등 소위 소프트웨어 산물에 대한 품질관리를 주도해야 한다. 설계회사의 산물인 도면을 시공계획으로 전환시키고, 시공회사 공사계획의 건실성을 유도해내고, 현장 감리자들로 하여금 빈틈 없이 시공에 대한 품질관리를 하게 하는 일은 한국 건설 문화에 젖어온 건설기업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건설회사들은 수많은 하청기업, 하-하청 기업, 하-하-하청 기업들을 고용해왔다. 하지만 건설사 간부들은 수많은 기업들에 이권만 주었을 뿐 경영다운 경영은 하지 못했다. CM 회사로 탄생하려면 설계회사, 시공회사, 감리회사에 확실한 Working Spec을 만들어 주고, 그들이 그려내는 도면에 대한 확실한 품질관리를 해야 하며, 감리업체에는 확실한 감리 지침을 주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감리 항목과 감리 요령 자체에 대한 품질관리를 철저하게 할 수 있는 "경영진"과 "경영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시공사들이 "건설경영"(CM) 회사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CM 회사는 "건설회사"가 아니라 설계, 시공, 감리 회사들에 대한 사령탑 역할을 하는 "경영회사"이며 타당성 분석, 건축물의 개념설계, 자금주의 자금조달 계획, 대 관청행정  등 그야말로 건설의 모든 것을 생각해내고 관리하는 자본주의 두뇌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한국건설 회사에 이러한 능력은 없다. 그들은 사람을 뽑아도 아직은 건설인만 뽑아 쓴다.

CM 환경도 문제다. 건설업계는 시공회사, 설계회사, 감리회사로 구분돼 있다. 굵은 업체는 시공사들이고, 설계나 감리는 대부분 영세하다. 설계-시공-감리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업체는 한국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기관이 많은 건설사업을 벌인다. 공무원들이 설계회사에 설계를 맡기고, 시공사들이 머리 터지게 입찰경쟁을 하고, 감리업체가 선정되여 감리를 하지만 정부 공사 치고 하자 없는 공사는 없다.

작은 하자는 그러려니 하고 묵인되지만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하자가 발생하면 책임문제가 대두된다. 법정에서도 누구의 책임인가를 가려내기 어렵다. 감리 업체는 "나는 설계도면대로 감리를 제대로 했다". 시공 업체 역시 "나도 설계대로 건설했다". 설계 업체 역시 "나의 설계는 이상 없다"고 강변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원이라 해서 누구의 잘못이라고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작은 문제는 묵인되고 큰 문제는 소리만 요란하게 내다가 결국은 흐지부지된다. 이러한 현상은 연연 세세 반복된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한 시스템적 대안이 CM회사(Construction Management)이다. 건설물을 짓고자 하는 주체를 우리는 발주자(Owner)라고 한다. CM사는 발주자를 대신하여 설계-시공-감리를 총괄 관리해주는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선진국형 건설 기업이지만 한국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업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에서는 CM을 설계, 시공, 감리와 대등한 하나의 건설 영역으로 인식한 나머지 CM사에게 아주 적은 예산을 배정하여 설계사-시공사-감리사-CM사 등 4개 업체 모두를 고용한다. 즉 한국정부는 건설시장을 시공시장, 설계시장, 감리시장, CM시장 등 4개의 시장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시공회사, 설계회사 등이 CM시장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사업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주고 있다. 마치 택시처럼 남의 동네에 가서는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매우 부당한 규정이다. 건설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이렇게 낙후된 건설법규다. 시공사에 경영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의 시공회사가 늘 주먹구구식 건설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에는 기능직만 있고 경영자가 거의 없다. 기술자들이 모여서 비체계적으로 대강 대강 마무리하는 것이 한국의 노가다식 건설이다. 비용과 납기와 품질을 야무지게 짜 맞추는 경영의 노하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일류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류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어 전무가 되고 사장이 돼도 그들은 그냥 나이 든 기능인일 뿐, 경영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사람들이다. 결론적으로 한국 건설업에서 자란 사람들을 가지고는 아무리 큰 CM사를 차려도 노가다 시공사의 문화를 탈피할 수 없어 보인다.

CM 기능 중에 가장 간단한 구조를 가진 현장을 보자. 건축기사, 전기기사, 기계 기사, 소방기사, 토목기사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현장 단위에 팀으로 파견된다. 어떤 사람은 12개월간, 어떤 사람은 10개월간 나가서 근무를 한다. 문제를 발굴하고 시정시키는 현장관리팀인 것이다. 프로젝트가 생기면 어떤 사람은 다른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가 CM사로 스카웃되어 그 다음날 현장으로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쉬다가 취직해 오는 사람도 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회사측은 입사하자마자 현장으로 내보낸다. 회사의 분위기조차 알지 못한 채 현장에 나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발주자의 눈에 팀원의 숫자가 다 들어차 있다는 걸 모여주기 위해서다. 고급 두뇌를 가졌다는 CM사가 머릿수 장사(Man-Hour)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입 사원은 발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프로젝트 관리에 임한다. 설계도면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대개 보름 정도가 필요하지만 그런 시간도 없다. 기계직이나 전기직은 자기 도면을 익숙시키는 데 15일, 건축도면을 익숙하는 데 15일 계 30일이 걸린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런 시간조차 없다. 그러니 발주자의 눈치를 보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 현장에 나가 설계회사, 시공회사, 감리회사를 총괄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이러한 수준에 있는 것이다.

팀원만 이런 경우를 당하는 게 아니라 팀장까지도 그렇다. 설계도면 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현장을 관리하겠다고 나선다. 단지 구색만 맞춰 기능인들만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발주자는Man-Hour에 따라 돈을 주고, 사전연구를 위한 시간이나 전문성에 대해서는 돈을 주려하지 않는다. 1류 화가가 그린 그림이나 3류 화가가 그린 그림이나 재료비와 인건비(Man-Hour)만 같으면 같은 돈을 쳐주자는 철학인 것이다. 현장에 파견되는 팀원들은 이렇듯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가지만, 본부에는 이미 그 프로젝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본부에 있는 A라는 직원이 가진 지식은 현장에 나가는  B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런 게 경영의 착안점이다.

프로젝트의 성격과 발주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영업부서가 매우 잘 안다. 발주자가 어떤 사람들이고, 시공사 및 설계회사가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안다. 영업 직원들이 알고 있는 이런 지식이 현장관리팀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본부의 기술팀은 그 프로젝트의 설계가 잘 됐는지 못됐는지에 대해 검토를 한다. 이들은 그 건축물에 대한 설계개념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역시 현장팀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영업팀과 기술팀에 있는 사람들이 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알려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술팀에 있는 사람들은 각 프로젝트에 대한 분석자료를 내놓는 순간까지에 들어간 Man-Hour에 대해 극히 비상식적인 개인별 평가를 받기 때문에 현장팀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시간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단 1시간만 내서 현장사람들을 도와주면 몇 백억의 이익이 나온다 해도 진급과 연봉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개인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여 평가제도를 바꾸고, Feed-Back 시스템을 설치하자고 제안해도 노가다식 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전무-사장들은 ‘지금이 최선’이라고만 주장한다. 그래서 한국의 건설업계에는 [쟁이]만 있고 [경영자]가 없다는 것이다.

200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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