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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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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감리 시스템 이야기

어느 건설분야의 컨설팅 회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외국에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회사가 있어서 발주자(물주)가 희망사항만 표현하면 경제성에 대한 타당성 분석으로부터 시작해서 물주가 만족할 수 있는 건물을 깨끗하게 턴키 베이스로 제공해 준다. 이를 CM 기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형 건설기업 자체가 노가다식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데다 분석능력과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 매우 영세하다보니 외국의 CM사로부터 시공 부분만 하청 받는다. 시공부분은 두뇌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장비와 건설 인부를 부리는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분석 및 설계 능력에 비해 마진이 매우 낮다.

시공회사의 에러와 비리와 나태함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감리 업체는 때로는 시공기업과 적당히 야합하기도 하고 감리 방법 자체가 영세하기 때문에 한국의 감리는 국내외로부터 불신의 화신이 되다시피 했다.

필자는 감리에서 CM으로 도약해 보려는 어느 한 기업의 실질적인 대표로부터 경영진단 제의를 받았다. 컨설팅 기간은 4개월로 잡았다, 하지만 기업의 대표는 필자가 영 못미더운 모양이었다. “박사님은 건설 분야에 경험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저는 S공대를 나와 지금까지 30여년 간 건설업체에 종사해 왔습니다. 건설 분야가 좀 복잡합니다. 4개월이면 건설계의 문외한이 건설이 무엇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같은데 어떻게 기업에 유익한 결과를 내주실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필자는 말문이 막혔다. “저는 자신이 있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경험이 많고 이론이 없으면 원주민에 불과합니다. 이론이 있으면 남의 경험으로부터 발전방안을 발굴해 냅니다. 저는 패러다임을 보지 세세한 것을 보지 않습니다. 건축 도면을 심사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시설 도면을 심사하는 사람은 건축도면을 심사하는 사람과 어떤 식으로 협력하는 지를 알면 되는 것이지 제가 시설도면을 보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 대표는 몇 달 동안 재고 재다가 드디어 컨설팅 과제를 시작하기로 했다. 필자는 불과 한 달만에 파워 포인트로 브리핑 차트를 만들어 현실에 대한 지적과 함께 대안을 설명해 주었다. 나머지 3개월 간은 간부들의 생각을 바꾸어주고 설득시키고 보고서를 읽기 좋게 소설식으로 작성해 주는 데 사용됐다.

공사현장에는 팀장, 건축전문가, 설비전문가, 전기전문가, 소방전문가, 토목전문가들이 팀으로 나가 시공업체를 견제하기도 하고 기술적으로 도와가면서 물주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본부는 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건설 도면(토목 도면, 건축도면, 전기도면, 설비도면의 합)에 하자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면분석 부서도 있다.

이 기업의 일하는 방법은 현장의 일하는 방법에 매우 설득력 있게 압축돼 있었다. 한마디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게 아니라 콩가루 식으로 일을 하고 잇기 때문에 감리의 정확성을 기할 수도 없고, 물주에게 비용과 공기를 절감시켜주는 고단위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잘 돼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시설 전문가에게, 잘 한 것 중 한가지만  말해달라고 했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장에 온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3개월이라 했다. 3개월 동안의 일인데 젊은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DN(Deficiency Notice)이나 NCR(Non Conformance Report)을 보자고 했다. DN이란 시공사가 잘 못을 저질러 시정을 요하는 내용을 담은 레포트로 이는 시공사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더 이상의 잡음이 없는 내용들이다. NCR은 시공사에게 여러 번 잘못을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발주자(물주)에게 레포트를 하는 것으로 시공사에겐 매우 불리한 레포트이다.

그는 DN(Deficiency Notice)을 가져왔다. 불량 부분이 사진에 담겨져 있었고, 지적사항이 영어와 기호로 쓰여져 있었다. 필자는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팀장님, 나는 이걸 읽지 못합니다. 팀장님은 이게 무엇인지 읽을 수 있습니까?”. 팀장은 건축 전문가이기 때문에 시설분야의 설계부호와 용어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팀장님, 이 DN내용을 보고 받거나 의논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면 설비 담당은 팀장이나 다른 전문가와 아무런 의논 없이 혼자서 일했다는 거 아닌가요?“.

바로 이 한가지로 이 회사는 전문가마다 제 각기 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에 물어보니 모두가 혼자서 일했다. 팀장이란 시너지를 내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대외 행정을 위해 있는 것이었다.

설비담당에게 DN의 내용을 남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보라 했다. 그는 알기 쉽게 설명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건물의 각 층 천장 속을 지나가는 아름드리 굵은 파이프를 연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시공사가 가지고 있는 설계도면에는 파이프 조각들을 나사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감리회사 설비담당이 이를 용접으로 연결하도록 바꾸었다는 것이었다. 용접용 원통은 국산이지만, 나사로 잇는 원통은 수입품이었다. 국산을 사용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수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서 그렇게 바구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단장, 건축담당자, 전기담당자, 소방담당자들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천장은 비좁은 공간이다. 각층 천장에서 용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A급 용접사를 구하는 일도 번거롭고, 용접사가 전날 술을 먹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접시험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한동안 이런 저런 지적과 아이디어가 나왔고 토의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토의 결과 시설담당이 혼자 결정한 사항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핵심은 DN 내용을 단장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담당자가 팀원 모두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하고부터는 여러 사람들이 토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팀제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 하나의 사실에서 그들이 말하는 팀제는 무늬뿐이었다. 일하는 방법이 팀제가 아니었다.

  필자는 감리팀이 시공 내용에 대한 지적(DN)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일을 열심히 잘 한 것이냐고 물었다. 감리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필자는 DN이 많으면 그 만큼 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주(발주자) 입장에서 보면 납기와 원가가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DN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가가 올라가고 시공기간이 길어진다. 그런데 이 기업은 발주자에게 이렇게 선전(?)했다. “우리는 시공사에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물주에게 비용과 공기를 30% 정도 절감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지적(DN)이 많다는 것은 현장에 파견된 팀의 QC 활동이 “예방지향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방을 하려면 모든 팀원이 참여하여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지혜를 합치고, 일하는 방법에 대해 지혜를 합쳐야한다. 그리고 시공자가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예방 내용을 설명해주고 예방 방책을 의논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공기와 원가를 대폭 절약할 수 있고, 고객과 시공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필자는 시너지로 일하지 않고 있다는 사례들을 10여 개의 현장과 본부의 각 부서들에서 발견해 냈다. 단 한 달간의 관찰 후에 제시한 지적과 대안들은 30여년 간의 건설분야 종사자들이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의 CM사들이 내거는 구호를 인용하여 물주에게 시공비와 공기를 대폭 절약해 주겠다고 선전했지만 그들의 일하는 방법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팀제로 일하지도 않으면서 무늬만 가지고 팀제로 일한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건설계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스카웃 해다가 확장해온 대한민국 초A급 기업, 지금도 매우 잘 나가고 있는 기업이지만, 이 기업마저 기술쟁이들의 집합소일 뿐 경영을 아는 사람은 그야말로 없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이 다 이러 할 것이다.

     2003.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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