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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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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영인들이 헤매는 분야

  우리는 입버릇처럼 언제나 “최선을 다하라” 외쳤다. 의식을 개혁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기대를 모았던 신바람 운동은 일하는 방법 즉 시스템을 바꾸는 운동이 아니라 현 시스템은 그대로 놔둔 채 더 열심히 일하자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신바람을 선사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마련하다가 도덕적 해이만 부추겼다.

  열심히 일할수록 손해인 경우는 옛날의 도요타 사례말고도 얼마든지 많다. 공장이나 건설현장에는 품질관리 요원들이 있다. 공사규모는 큰 데 반해 품질관리 요원의 수는 매우 적다. 중요한 작업과정에 대해서는 품질관리 요원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작업을 해야 하고(On Spot Inspection), 전 공정에서 후 공정으로 작업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품질관리 요원이 전 공정의 작업 결과를 검사해야 한다.

특수 재질을 침투시켜 침투 테스트를 하거나 X-Ray로 사진을 찍어 판독하기도 한다. 그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후 공정 작업이 중단된다. 한국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비용문제 때문에 많은 수의 검사관들을 현장에 배치할 수 없다. 검사자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검사자에 지불되는 봉급은 절감되지만 수많은 작업자들이 검사관들을 기다리느라 다음 작업을 하지 못하고 대기한다.

검사를 받아야 할 항목은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검사요원이 부족한 것이다. 검사요원을 기다리느라 하루를 기다리는 곳도 있다. 생산한 것은 없는데 하루 분의 노임이 그냥 지불되는 것이다. 검사관이 검사에 충실할수록 작업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노임이 낭비된다. 열심히 일할수록 비용이 나가는 것이다.

  설사 많은 수의 검사관들을 둔다 해도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은 수많은 작업자들이 대들어 일한 방대한 량의 작업내용에서 불량 내용 모두를 다 발견해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작업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불량률이 올라간다. 불량한 작업 내용을 수정하려면 비용이 증가한다. 재 작업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작업을 원상복귀 시키고, 재료를 다시 구매해야 하고, 설계를 다시 해야 하고, 제작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두를수록 인건비가 추가되고, 재료비가 추가되며 납기가 늦어진다. 정확한 길이 가장 빠른 길이지만 대부분의 공장 시스템은 “빨리 빨리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은 체질적으로 배척한다.

  “작업자는 작업만을, 품질검사자는 검사만을”. 이것이 한국의 품질관리 개념이며, 한국 사회에서는 이 개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경영인들이 별로 없다. 한국의 건축물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가장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QC 요원들이다. "작업자들은 빨리 빨리 일을 진행시키고 싶지만 QC만큼은 철저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이 지연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QC요원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100% 틀린 주장이다. 적은 수의 검사관들을 가지고도 대기시간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QC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QC부서의 검사요원 수가 일본보다 많지만 불량률이 매우 높다. 일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QC요원들은 수많은 작업자들 스스로 불량품을 만들지 않도록 훈련시켜 주는 반면 우리의 QC요원들은 마치 일제 시대의 감독관처럼 목에 힘을 주고 권한을 행사하며 모든 검사를 혼자서만 하려고 한다. 자기의 영역을 근로자가 참견하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본의 QC요원들은 근로자와 함께 에러를 예방하는 방법을 사전에 연구하고 토론한다. 다음 날 무슨 작업을 할 것이며 작업과정에서 하자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며, 그것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작업자들과 함께 토의를 한다. 실질적인 품질관리는 작업자 스스로 진행한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서는 소수의 품질관리 요원을 가지고도 하자를 미연에 방지한다. 근로자 모두를 품질관리 요원으로 훈련시키는 사령탑이 일본의 품질관리 요원들이다. 한국식 품질관리를 경찰관식이라 부른다면 일본식 품질관리는 예방적 품질관리로 부를 수 있다.

  내일 수백 명의 작업자가 어떻게 일하는 가는 오늘의 준비에 달려 있다. 작업장에서 내일 시간을 낭비할 것이지, 얼마나 많은 하자를 낼 것인가는 오늘 관리자들이 어떻게 일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넓은 작업공간에서 수백 명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일일이 관찰하고 지시하며 야단치는 관리자는 무능한 관리자다. 일본의 QC요원들은 작업 이전에 일하고, 한국의 QC요원은 작업 단계에서 참견한다.

  이는 마치 전투행위와도 같은 것이다. 전투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전쟁은 백전백패 한다. 병사들이 내일 싸우기 위해서는 지휘관은 오늘 싸워야 한다.

  평소에 병사들과 함께 수많은 전투 상황을 상상해 내고, 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갖게 하며, 병사들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고, 그에 필요한 기본기술을 훈련시켜주면 실제 전투는 병사들 스스로 치르는 것이다. 지휘관은 전투행위 이전에 싸우고, 전투는 병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지휘관끼리의 전쟁은 오늘 이미 판가름 나 있다. 내일의 전투는 오늘 지휘관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실현해 보여주는 결과물일 뿐이다.

                            200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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