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리제너레이션(재창조) 능력

일본인들은 '배우는 것(마나부)은 모방하는 것(마네부)'이라고 정의한다. 남의 작품과 남의 이론을 모방할 수 있어야 거기에 훌륭한 창의력을 보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거기에 독자적인 것을 더 보태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모방에 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수많은 수학 공식을 배웠다. 한국 학생들은 그 수학공식을 이용하여 문제 푸는 방법만 훈련했다. 손재주를 키운 것이다. 그러나 서양 학생들은 그 공식을 유도해 내는 방법을 반복해서 훈련한다.

혼자서도 그 공식을 유도해 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원 교수들은 공식을 사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는 시험에 별로 내지 않는다. 그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에 잉태되어 있는 지혜를 음미할 수 있는 학생만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한다. 이렇게 공식 자체를 혼자서 유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리제너레션 능력이라고 한다.

공식을 유도하는 방법은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훌륭한 학생은 교과서에 제시된 공식 유도방법 이외에 스스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공식을 유도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

이러한 능력은 한 개의 교과서만 열심히 모방한다고 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원에서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맞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A학점 숫자가 조금 모자라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A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교수가 정해주는 교과서 하나를 이해하는 데 열중했다. 잘해야 한 개의 다른 참고서를 참고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학생은 다섯 권 정도의 책을 빌려다 보았다. 시간에 너무 쫓기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참고서를 본다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고들 생각했다.

같은 이론을 보는 시각이 학자마다 달랐다. 이론을 다루는 기술이 저자마다 달랐다. 문제의 그 학생은 시각의 다양성에 스스로 매력을 느꼈다. 주말이면 다른 학생들은 얼마간의 여가를 내서 밖에 나가 즐겼다.

그러나 문제의 학생은 골방에 틀어박혀 여러 저자의 시각과 문제를 다루는 기술을 음미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학 기당 세 번의 시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동이 느려서 다른 학생보다 약간씩 뒤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문제의 학생에겐 가속이 붙었다. 두 번 째와 세 번 째 시험에서 다른 학생들은 문제의 학생을 따라오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은 처음부터 단기 기록을 위해 단거리 경주를 연속했다. 그러나 문제의 학생은 처음부터 마라톤 경주로 시작했다. 처음엔 우직하게 보였을지 모르나 나중엔 천재소리를 들으면서 교수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 박사 자격 시험에서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모두 다 불합격되었다.

박사 자격 시험에는 여러 명의 교수들이 욕심 껏 고안해낸 문제들이 출제되었다. 오직 문제의 학생만이 그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공식이든 쉬운 공식이든 책에 있는 방법 말고도 몇 가지의 다른 방법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했다.

사고 방식과 직관이 그만큼 더 훈련된 것이었다. 공식을 외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직관으로 재창조했다. 이러한 직관이 발달됐을 때 비로소 훌륭한 발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다 속 잠수함을 파괴하는 기뢰를 만드는 방법은 국가마다 상이하다. 유럽 국가들은 낮은 기술을 가지고도 훌륭한 기뢰를 만들지만 미국인들은 언제나 최고의 비싼 기술을 응용하여 기뢰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언제나 선진국 부품을 가져다가 조립만 했다. 한국 업체에 기술 소화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제품에 잉태된 기술을 발견해 내고 거기에 창의력을 더 보태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리제너레이션 능력인 것이다.

미국의 캐비넽식 애드미랄 냉장고는 한 때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미국이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 냉장고 수입을 강요했다. 처음에 일본인들은 미국 제품이 들어오면 일본 냉장고 제조업체가 도산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문호개방에 저항했다.

그러나 막상 미제 냉장고가 들어오자 일본인들은 그 미제 냉장고에 잉태된 기술을 평가했다. 그 미제 냉장고는 잡음이 심했고 진동이 있었다. 넓은 미국인들의 응접실이나 부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일본인들의 좁은 집에서는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일본 기업은 미제 냉장고의 결점을 보완해서 더 좋은 냉장고를 일본에 보급했다. 그후 미제 냉장고는 일본에서 발판을 잃게 되었다. 일본 기업은 리제너레이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문호를 개방해도 끄떡없었다.

그 이후 일본에서 문호개방을 반대하는 기업인들은 구태의연한 기업인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가전 업체들은 미국 제품을 수입 해다 높은 마진만 챙겼을 뿐 미제보다 더 좋은 제품은 만들지 못했다. 리제너레이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태리는 미국의 방산 제품을 기술 도입할 때마다 언제나 미제보다 더 좋은 이태리 고유의 장비를 개발해 냈다. 수출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태리인에게 기술도입이라는 것은 더 좋은 이태리 고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한국의 방산 업체들은 돈벌이 목적만을 위해 기술도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이용했을 뿐이다.

이태리 장갑차 374대가 아시아 자동차에 의해 기술도입으로 생산됐다. 그 다음 해부터 부속품이 단절됐다. 아시아 자동차는 374대에 해당하는 부품을 100% 수입 해다 단순 조립만 했을 뿐 그 어느 부품 하나도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장갑차에 고장이 나면 헐어쓰기(canibalization) 방법으로 부품을 조달했다. 몇 대의 장갑차를 분해해서 부품을 꺼내다 다른 자동차에 끼워 주는 방식이었다. 자동차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방산 업체의 기술도입이라는 것은 단지 업체가 돈을 벌기 위해 사용하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시장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시장이 없으면 생산도 안 했다. 이태리는 1970년대에 이미 구소련, 미국, 프랑스에 이어 무기수출 4위국으로 부상했다. 항공기 생산량의 58%, 전자장비의 46%, 함정 장비의 37%가 수출되었다.

이를 위해 이태리는 불과 몇 개의 방산 제품에 대해서만 기술 도입을 시도했다. 기술도입이란 언제나 직구매비에 비해 턱없이 비쌌다. 이러한 비싼 비용은 해외시장이 없으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태리 아우구스타 사는 미국의 벨 및 시콜스키 사와의 헬리콥터 기술도입 생산으로부터 기술을 터득하여 이태리 고유의 대전차 헬기를 생산해서 중동에 수출했다. 독일의 레오파드 전차 기술을 습득해서 사막에서 우수하다는 OF-40 Lyon 이라는 전차를 만들어 중동에 수출했다.

미국 레이시온 사의 스패로 미사일로부터 기술을 습득해서 이태리 고유의 아스파이드라는 유도탄을 만들어 미국과 경쟁했다. 이태리 베레타 권총은 미 공군 시험에서 세계 최고의 것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기술도입 생산이 수없이 이루어 졌지만 한국적인 것은 한개도 없다. 완제품은 고사하고라도 부품 하나 한국적인 것이 없다. 한국 국방비는 먼저 찾아다 쓰는 사람들이 임자였다. 수많은 장비가 기술도입 생산되었지만 해외 시장에는 단 한 개도 내다 팔지 못했다. 리제너레이션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방위산업의 리제너레이션 능력은 매우 교훈적이었다. 1929년 아랍의 반유태인 폭동에 자극되어 이스라엘인들은 Taa's라고 불리는 가정집 단위의 지하 무기 생산조직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소화기를 만들고 외국에서 잉여물자로 나도는 항공기와 탱크 부품을 구해다가 완제품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형성된 방산 능력은 1950년대에 이르러 선진국 궤도에 진입했다. 고급 장비에 대한 재생 능력이 갖추어 졌다. 핵심기술에 대한 성능향상 능력도 갖추어 졌다.

우지 기관총, 크피르 전투기, 셔만 탱크의 성능향상, 미라지 전투기의 성능향상, 아라바를 위시한 3종의 지휘용 제트기 등은 이스라엘인들의 리제너레이션 능력의 상징들이다. 이스라엘의 과학기술자 팀웤은 미국과 프랑스를 위시한 선진국들에게 커다란 매력점이다. 이들은 선진국의 60%에 해당하는 싼 임금으로 매우 양질의 설계능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도 그릇이 있어야 담겨진다. 기술을 담는 그릇은 과학기술자 팀이다. 그 팀웤이 깨지면 기술도 깨진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어렵고 비싼 것이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렵고 비싼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없는 기술은 유지될 수 없다. 한국에서 가장 유수하다는 방산 업체를 방문하면 그들은 기술인력을 자랑한다. 불과 몇 명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들은 장비에 잉태된 기술을 소화하기는커녕 브로셔나 매뉴얼조차 해석할 줄 모른다. 그 능력을 가지고 기술도입을 해온 것이다.

국방부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술도입 료가 국방비에 반영된다. 업체는 국방부에서 기술도입 료를 타다가 외국 업체에게 지불한다. 그것으로 기술도입 행정이 완료된 것이다. 기술료를 지불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기술도입인 것이다.

기술료를 받은 외국 업체가 기술을 실제로 가르쳐 주겠다며 과학기술자 파견을 요구한다. 그러나 딱하게도 업체는 기술을 소화할 수 있는 팀워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업체는 기술료만 주고 '그냥 됐으니 부품만 달라'고 한다. 한국 방산업체들은 이렇게 해서 외국 업체에게 얕 보이면서 봉이 돼온 것이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연구개발 능력은 바로 이러한 수준인 것이다. 그들은 일본에서 부품을 즉시즉시 구해올 수 있었다. 부품값이 올라도 별 부담 없이 사왔다. 부품 값이 올라도 언제나 국내에서는 그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비싼 고급인력을 무더기로 데려다가 불확실한 연구개발을 시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국산 VTR과 TV를 기술적으로 따지고 보면 일제와 너무 차이가 난다. 수명도 너무 짧다. 그러나 한국 고객들은 제품 선정에 까다롭지도 못했고 기술 지식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앞으로 한국 업체들이 아무리 많은 광고를 한다해도 가장 안전한 방법은 외국 제품을 사는 일일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나 대만에서는 그 나라 국산 전자제품들이 진열되지 않았다. 모두가 일제였다. 그러나 그 제품들은 모두 그 나라에서 일본 기술과 일본 경영에 의해 조립된 것들이었다. 앞으로 한국의 가전업체들은 그들의 제품을 과대 선전하기 전에 연구개발팀의 리제너레이션 능력을 선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고객들이 그들의 제품에 대해 신뢰할 것이다. 이것은 백 번의 광고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다.

2001. 3. 8


Prev	리더십의 본질	지만원


Next	일본의 경쟁력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