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시스템적 사고방식의 고전적 사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생산방법은 테일러 방법이었다. 테일러는 과학적 경영관리의 조상으로 불렸다. 테일러 방법은 미국에서는 물론 유럽과 소련에서도 바이블로 여겨졌다.

소수의 과학기술자들이 기술사양과 작업절차를 개발해서 이를 표준화시켜 주면 근로자들은 오직 그 표준화된 작업절차만을 반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즉 과학자는 설계만 하고 경영자는 통제만 하며 근로자는 단순작업만 반복하면 되는 것이었다.(Management manage, workers do).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는 미국에서도 한 개의 업체가 고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의 수가 많지 못했다. 근로자들의 학업수준은 잘해야 국민학교 졸업이었다. 생활물자가 원체 딸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누구든 물건만 만들어내면 모두 팔렸다.

그래서 경영전략이 대량생산이었다. 대량생산 체제에 의한 원가절감 노력은 소위 규모의 경제 개념을 유행시켰다. 학력수준이 낮았던 당시의 근로자들을 가지고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테일러 방법이 최고였다.

이는 마치 2차대전시 아프리카 전투에서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사용했던 용병개념과 같은 것이었다. 훈련수준이 형편없이 낮은 병사들을 가지고 잘 훈련된 롬멜장군의 병사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병사들의 전투행동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몽고메리장군은 병사들의 수준을 먼저 파악했다. 병사들은 기껏해야 정해주는 참호 속에서 정해주는 방향으로 무턱대고 총만 쏘아댈 수 있었다. 그 이외의 행동을 이들에게 요구하면 자체혼란만 야기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의 유능한 참모가 각 병사들의 위치와 사격방향을 설계했다. 그리고 사격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무조건 일러준 대로만 사격했다. 산업전선에 테일러가 창안한 경영방식과 군사작전에서 몽고메리 장군이 창안한 용병방식은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니었다.

보통사람들은 같은 문제를 놓고도 각기 다른 해답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응용능력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놓고도 같은 해답을 이끌어 낸다. 시스템 개념으로 문제를 풀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있는 지금의 한국사회는 한국의 테일러와 한국의 몽고메리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경험으로부터도 배우지 못한다.

한국인들 모두가 값비싼 자기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배웠다면 10년 전의 문제가 지금의 문제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울 줄 모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시대가 다르고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남의 이론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반면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면 '그거 어느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이론을 소화하고 그것을 응용하려드는 것보다는 그 이론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단지 남 앞에서 유식함을 자랑하려는 데 쓰기 위해서다. 이러한 사람들은 역사와 남들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창조력이 정지된 사회 ;이것이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테일러 시대의 제품은 간단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 때의 품질은 제품이 완성된 이후에도 검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냉장고 같은 제품을 완제품 상태에서 검사한다는 것은 오직 전원에 코드를 연결해서 작동여부만을 검사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수 년 전까지의 품질검사는 매 제품에 대해 설계단계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 까지의 모든 과정을 일일히 검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품질검사는 제조업체 전체의 경영, 문화, 설계 및 공정들에 대한 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업체가 만들어 내는 제품은 믿을 수 있어도 그렇지 못한 업체가 만들어내는 제품은 믿을 수가 없다다. 또한 제품의 하나 하나에 대해 매 공정을 일일이 검사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을 수반하지만 한 개 업체의 시스템과 문화를 평가하는 것은 비용이 덜 든다.

품질관리 역사로부터 우리는 지금의 시대가 시스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해내야 한다. 초창기의 품질이론은 완제품 단계에서 제품의 불량 여부를 판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그 다음 세대의 품질이론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계측기를 들고 매 공정에서 하자내용을 발견해내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그 다음 세대의 품질이론은 제품의 설계와 공정자체를 개선하고 각 작업자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독자적으로 발견해내고 독자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근로자들의 능력을 계발시켜주는 것을 내용으로 했다.

그러나 지금의 품질이론은 회사의 매 제품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자체의 품질을 검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품질관리 문화와 시스템이 훌륭하면 그로부터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ISO 9000 시리즈의 개념인 것이다.

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업체들은 ISO 9000 시리즈 자체를 엄청난 장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들은 남이 설계해주는 대로 생산은 그럭저럭 해왔지만 설계능력과 마케팅 능력이 너무나 미천한 데다 문서화나 소프트웨어를 경시해왔기 때문이다.

2000. 11. 5


Prev	품질관리에 대한 시스템적 시각	지만원


Next	기업 문화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