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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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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한국인의 비지니스 매너

자연은 그대로가 아름답다지만 사람은 가꿔야 아름다워 진다. 인간을 가시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매너이다. 매너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매너를 가꾸지 못한 사람은 아무 데서나 예사로 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한번 마음이 상한 사람은 연쇄적인 인간접촉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렇게 마음 상한 이들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좋을 수는 없다.

주차장 관리원의 매너로 인해 많은 사람의 기분이 상한다. 교환수의 매너도 품질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를 사소한 일이라고 방치하는 경영자가 있다. 이러한 안목을 가지고는 절대로 품질제품을 만들 수 없다. 매너 있는 직장문화는 품질향상의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마음 하나 진실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지만 매너로 인해 입는 손해는 의외로 큰 것이다. 매너로 인해 입는 손해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렸다. 틀어보니 돌아가지 않았다. 기계가 고장인 줄 알고 테이프를 반납했다. 전자 상가에서 알아보니 기계 탓이 아니라 테이프 탓이었다. 여름 습기에 테이프가 접착돼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면 고맙다는 인사를 듣겠다 싶어 테이프 가게에 들렸다.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무안만 당했다.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딴 사람들은 말없이 잘 보는데 왜 아저씨만 까다로우냐]고 대드는 것이었다. 이는 비디오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비지니스맨들의 기본 매너였다.

돈을 물어주지 않았으니 손해본 것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매너 하나 때문에 동네에 사는 수많은 고객이 그 가게에서 등을 돌렸다. 얼마 후 그 가게는 문을 닫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비용을 볼 수 있는 헤안을 가진 경영자는 의외로 적다.

미국의 데니스라는 음식점을 들렸다. 5인 가족의 식사를 주문했지만 1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종업원을 불러 사정을 말했더니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즉시 음식을 가져왔다. 자기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으니 용서만 해준다면 식사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식사비와 팁을 주고 나오자 그 여종업원은 고맙다고 울먹였다.

한국에서는 주인이 찾아오는 손님의 등을 돌려놓고 있는데 반해 미국에서는 종업원이 손님을 유치하고 있었다. 이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비지니스 용어]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한국 땅에서도 비지니스를 하기 어렵다. 싱가포르에서는 택시기사도 영어를 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택시 기사가 영어를 몰라 불편했다. 홍콩 전체에 대한 인상이 이 한가지에 의해 격하됐다.

그러나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권 사람들의 매너다. 미국에서는 복잡한 백화점에서도 서로 옷깃을 스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어쩌다 스치면 미안할 정도로 정중히 사과한다.

명동 롯데백화점은 국제화의 1번지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맨 앞에 미국인이 서있었다.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내려야 할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뒤에 서있던 옷 잘입은 한국인 남녀들이 그 미국인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나갔다. 미국인이 한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저 사람들이 서두르는 것만큼 시간을 선용할 것 같지는 않다]라고.

세계화를 위한 가장 큰 자산은 [아이덴티티]다. 일본인들에게는 훌륭한 아이덴티티가 있다. [품질, 신용, 친절, 생산기술]이다. 1970년대에는 한국인에게도 자랑스런운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이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가 이러한 아이덴티티에 의해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이덴티티는 이제 바닷가에 씌여진 글씨처럼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렸다. 남아있는 것은 부끄러운 아이덴티티뿐이다. [매너없는 한국인, 시끄러운 한국인, 돈자랑하는 한국인]들이다. 모두가 낙제감 매너로 인한 것들이다.

옛 문화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문화를 가꾸는 일이다. 지금의 국제적 매너가 훌륭해야 옛 문화도 빛난다. 그러나 지금의 매너가 형편없으면 우리의 옛 문화는 한낱 금송아지에 불과한 것이다.

기업은 비지니스 매너를 훈련해야 하겠지만 한국인 전체의 아이덴티를 세계에 심는 일은 문화부 장관의 소관인 것이다. 가장 훌륭한 매너는 진실이다. 진심을 가지고 비지니스를 하면 언제 돈을 버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진실성 없는 비지니스맨이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 가게 될 것이다. 바로 오늘날의 현실인 것이다. 기업인들은 고객에게도 사원들에게도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게임만 있고 믿음은 없는 것이다.

200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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