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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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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의 결산

  노무현 대통령은 난생 처음 미국 땅을 밟아보았다. 누구나 미국 땅을 처음 밟으면 문화적 충격을 느끼듯이 그 역시 그랬을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고 우물안 개구리로 있을 때에는 자기가 보는 하늘이 돈쪽 크기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미국을 우습게 보고 막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 땅을 밟으면서 사람과 시설에 품격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의 호락호락하지 않는 관리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위엄을 감지했을 것이고 미국의 힘이 과연 제국의 힘이라는 사실도 체험했을 것이다. 필자는 미국 국방성에 여러 달 동안 출퇴근하면서 그런 것을 참으로 많이 느꼈다. 친절하고 점잖지만 위엄이 풍기는 곳이 미국 행정부의 기후다.

그는 한국에서 했던 막말이 마음에 켕겼는지 미국에 대해 필요이상의 아부를 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대접은 그야말로 차가운 냉대였다. 국회위원들 앞에서 연설 한번 하지도 못했고, 단독 정상회담 30분은 예외적으로 짧은 것이었다. 확대 정상회담도 없었다. 통역을 가운데 두고 30분이면 대화라고 할 수도 없다. 얼굴을 오래 보기 싫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대우였다.

이런 대접을 받고 왔지만 그는 이제 미국에 코가 꿰어 가지고 돌아왔다. (1) 북핵문제를 다자회담으로 풀자는 데 합의했고, (2) 남북문제를 핵문제에 종속시키는 데 동의했으며, (3) 북핵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추가조치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미2사단을 당분간 현 위치에 주둔하기로 양해를 받은 것이다.

미국은 그 동안 북핵문제를 다자회담으로 풀자고 했고, 김정일은 미북간 회담으로 풀자고 했다. 이에 대해 노대통령은 미국의 의견에 반대했고 북한편을 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방미에서 그는 북한을 등지고 미국편을 들었다.

  다자회담에 담긴 뜻은 이렇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으면 대만과 일본이 핵무기를 가지려 할 것이다. 대만이 핵무기를 갖으면 중국이 가장 싫어한다. 경제 강국 일본이 핵무장을 하면 러시아와 중국이 왜소해진다. 그렇다면 북핵을 누가 더 싫어해야 하는가. 미국만 쳐다보지 말고 북핵을 싫어하는 너희들이 나서서 좀 풀어봐라. 너희들이 풀지 못하면 미국도 어쩔 수 없다. 그 때에는 미국의 선택에 협력해라. 처음부터 미국이 나서서 호전성을 보이면 너희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배부른 지적을 할 게 아니냐. 대개 이런 뜻이다. 다자가 풀지 못할 경우에는 미국이 나서서 손을 볼테니 그 때에는 딴 소리말고 미국을 순순히 따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남북한 문제를 핵문제에 종속시키기로 약속한 이상 남북관계는 당분간 중지돼야 할 모양이다. 핵문제에 진전이 없는데 남한이 북한에 비료와 쌀을 주고 금강산을 통해 달러를 주면 약속 위반이다. 북한에 철로와 도로를 열어주는 것도 약속 위반이다. 한국이 이를 강행하면 미국이 약속위반이라며 태클을 걸 수 있다. 그래도 강행하면 미국은 남한을 북한과 동류로 보고 제재를 가할 것이다.

  북한이 다자들간의 대화에서 억지를 부려 왕따를 당하면 미국은 김정일을 도려낼 수 있는 명분을 갖는다. 더러는 미국이 군사력으로 영변 등 핵시설을 공격하리라 생각하지만 김정일만 제거하면 핵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핵시설을 공격하면 방사능 낙진이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을 뒤덮을 것이다. 미국이 이런 선택을 할 바보는 아니다. 군사적 공격은 핵시설이 아니라 김정일의 아방궁일 것이다. 북에 압박을 가하고 북폭하겠다는 위협을 가하면 북한 지도부는 살기 위해서라도 김정일을 제물로 바칠 수 있다. 마약을 확산하고 미사일을 팔고 위조 달러를 만들어 미국을 괴롭히고 북한 주민을 동물 이하로 학대하는 김정일을 미국은 절대 그대로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김정일 제거 작업에 노무현 대통령은 묵시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방미는 대화가 아니라 팬토마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일방적으로 지휘할 것이며, 노대통령은 부시의 리더십에 순종할 것을 다짐했다. 한반도 안보는 이렇게 해서 미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노대통령은 “민족공조”를 파기하고, “한미공조”를 확실하게 선언한 것이다.

  미2사단이 현 위치에 당분간 있기로 한 것은 노대통령에게 준 대가일 수 있다. 미2시단이 후방으로 빠지면 외국인 투자가들이 증권시장과 기업에서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패닉현상으로 내달리고 있는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손상이다. 그래서 부시는 한국경제의 엔진이 튼튼하다며 노를 추켜세워 주었다. 한국경제의 엔진이 튼튼한데 패닉현상이 오면 그건 전적으로 노대통령의 경영능력 때문이다. 부시의 칭찬에는 이런 복선도 깔려 있다.

  노대통령이 미국에서 온갖 말로 발라 맞췄는데도 불구하고 푸대접을 받은 데에는 그의 ‘국정원 수뇌 인사’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고영구와 서동만의 사상에 대해서는 미 CIA가 더 잘 안다. 국회와 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것, 그리고 이들이 들어가 국정원 자료를 파기하고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온 간부들에 대해 대규모 숙청을 가한 것이 어찌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겠는가. “아, 이런 사람과는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통상 외국의 국빈이 미국에 가면 국회의원들이 초청해서 연설을 들어준다. 하지만 미국의 콧대 높은 국회의원들은 매너조차 다듬어지지 못한(Uncivilized) 그를 초청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많은 한국 국민들이 그를 부를 때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달아주지 못하겠다고 토로한다. 하물며 콧대높은 미국 정치인들이야 어떠했겠는가. 앞으로 노대통령은 그를 지지한 촌스런 젊은 세대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이며, 어둠 속에서 그에게 압력을 가해왔는지도 모를 검은 좌익세력과 사사건건 부딪칠런지도 모른다.

           200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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