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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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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탄 훈장의 사연

1970년. 필자는 30세에 임시 대위를 달고 월남전에 가서 포대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집합으로 시작해서 집합으로 끝나는 것이 군대라 했지만 필자는 집합이라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일조점호와 일석점호는 물론 매일 아침 식후에 시작되는 임무분담 및 실시명령을 내리기 위한 집합도 생략했다. 하루에 하는 일은 분대별로 달랐고, 기상에서부터 취침에 이르기까지 분대장이 지휘했다.

필자는 형식도 싫어했다. 햇볕에 노출된 철판에 계란을 깨서 부으면 그대로 계란 프라이가 된다 할 정도로 뜨거운 월남 땅에서 병사들이 치렁치렁 걸치는 작업복을 입고 고된 진지 공사를 하고 훈련을 하는 것이 보기 싫었다. 그래서 필자는 병사들에게 각자 원하는 길이로 군 작업복을 잘라 입으라 했다. 상의는 입든 벗든 각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 식당에서 배식기를 들고 길게 늘어선 모습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필자는 분대별로 병사를 식당에 보내 식당에 비치된 노트에 “제1분대 식사시간 오전 9시10분” 이렇게 적어놓게 했다. 그러면 그 이후의 분대들은 그 시간을 여유 있게 피해 예약시간을 기록하게 함으로써 분대별로 단출하고 화기 있게 담소하면서 식사를 하도록 했다.

이런 파격적인 조치들에 눈이 휘둥그레 진 쪽은 병사들이었다. 작업도 훈련도 분대장이 알아서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전히 군의 특수 용어로 ‘개판군대’요 오합지졸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포대를 방문한 대대 참모들은 제2포대 지대위가 포대를 지휘할 능력이 없으니 큰일 났다고 대대장님에 보고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한다.

그러면 필자가 지휘하던 제2포대는 오합지졸의 부대였는가? 오히려 가장 강하고 질서 있는 부대가 됐다. 각 분대장들에 의해 부대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필자는 어떻게 했는가? 저녁마다 회의를 했다. 다음날 각 분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각 일을 할 때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일가, 안전사고가 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며 예방책은 무엇일까? 매일 2 시간씩 회의를 했다. 분대장들은 “오늘 회의에서는 무슨 제안과 아이디어를 내야 포대장이 기뻐할까?” 자기도 생각하고 병사들에게도 생각토록 했다. 병사들은 일을 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분대장에게 아이디어를 내주었다.

필자가 시도했던 회의 주제 중에는 "어떤 내무반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 있었다. 베트콩의 박격포 공세 때문에 내무반은 지붕이 지면과 일치하도록 지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창문이 지상에 올라와 있으면 박격포가 창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이유였다. 빨간 진흙 속에 내무반을 완전히 땅속에 묻으면 더위에 숨이 막히고 냄새가 나며 우기에는 습기가 차고, 마루에서는 물이 솟아 밤새내 물을 퍼내야 했다. 아무리 상부의 명령이라 하지만 이러한 내무반에서는 필자도 살기 싫었다.

필자는 병사들이 남기고 간 작업장에 쪼그리고 앉아 궁리를 했다. 이틀만의 궁리 끝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을 퍼내지 않으려면 물이 마루 밑에서 자동적으로 흘러나가도록 해야 했다. 사람들은 집을 짓기 위해 바닥을 팔 때 가로와 세로를 각기 수평이 되도록 팠다. 병사들도 그렇게 땅을 파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가로와 세로가 모두 어느 한 귀퉁이를 향해 기울어지도록 땅을 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마루 밑에 솟아난 샘물은 가장 낮은 코너를 향해 내려갈 것이고, 거기에 드럼통을 묻으면 맑은 물은 위에 뜨고 흙은 가라앉게 될 것이었다. 맑은 물은 파이프를 연결해 자연 배수시키고, 흙은 가끔씩 마루 뚜껑을 열어 퍼내면 될 일이었다. 나무 판으로 만든 내무반의 마루바닥은 좌우가 수평이 되게 만들지만 마루 밑의 당바닥은 한 개의 코너를 향해 경사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내무반 지붕을 땅 위로 솟아내 채광도 잘 되고 통풍도 잘 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벽의 50%만 땅에 묻기로 작정했다. 병사를 박격포 파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철판과 흙으로 된 튼튼한 지붕을 벽에서 3m 정도 길게 내뽑기로 작정했다. 지붕 위에 떨어지는 박격포는 안전할 것이고, 지붕 밖에 떨어지는 박격포의 파편이 내무반에 들어오려면 3m의 거리를 수평이동을 해서 직각으로 낙하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직각으로 이동하는 파편은 없다. 지붕 하나만 넓게 빼면 50%만 내무반을 땅에 묻어도 안전할 수 있었다. 설사 이것 때문에 명령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해도 감수할 참이었다.

필자는 신이 나서 무릎을 쳤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포대장의 생각을 지시하면 병사들은 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다음날 회의에 이 문제를 회부했다.

"내무반을 이대로 지은 후 우기가 오면 마루바닥에서 샘이 솟아 밤새내 퍼내야겠지?"

" . . . . . . "

"물을 퍼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을 지을 수는 없나?"

"그런 방법이 있으면 다른 부대에서 벌써 했게요?"

나이 40이 넘은 상사가 가소롭다는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모른 체 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도 있습니다. 반드시 있으니 찾아내야 합니다. 자, 우리 분대장들 중에 누가 먼저 말해 볼까?"

필자의 눈이 가는 데마다 하사들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얼굴을 숙였다.

"야, 맥주 한 깡씩만 가져와라. 커피 좀 끓여오고. 마시고 나면 말들을 해야 해"

10여분 후에 제2분대장을 지명했다. 그는 말을 약간 더듬어 고문관으로 불렸다.

그가 얼떨결에 한참 중얼거렸다.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중사가 그에게 면박을 주었다.

"니는 마, 좀 알아 묵도록 말해라. 도대체 무슨 말인겨?"

"아 아, 김중사, 여기에는 계급이 없습니다. 모두 다 편하게 말하는 장소요. 2분대장 말을 들으니 나는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

필자는 그가 한 말 중에서 살릴 수 있는 단어를 찾아내 내가 생각해낸 방안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듣기에도 그럴듯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 맞습니다. 포 포 포대장님, 바로 그런 말인데 제가 말하는 게 서툴렀습니다. 감사합니다. 포 포 포대장님"

필지는 김 중사를 돌아봤다.

"거 봐요. 김 중사, 일리 있는 말을 했잖아요"

필자는 하사에게 여러 번 발표 내용을 따라하게 했다.

"자, 이렇게 말하니까 알아듣겠나?"

"예, 알아 먹겠습니다"

필자는 힌트를 주면서 하사들을 표 안 나게 유도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필자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결론이 나왔다.

"첫째, 지붕을 넓게 내뽑을 것, 둘째, 바닥을 한 코너를 향해 경사지도록 팔 것, 이 두 가지만 준수하고 각 분대는 마음대로 집을 지어라. 원형으로 지어도 좋고, 빨갛게 지어도 좋다. 이의 없지?"

그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들이 시행하도록 하니 주인의식이 생겼다. 토의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를 수 있다. 열흘을 거르지 않으려면 단 하루도 거르면 안 되었다. 착안사항이 날로 예리해지고 다양해 졌다. 어제까지는 문제가 아닌 것들이 오늘은 문제로 부각됐다. 이렇게 4개월을 훈련하니까 다음부터는 포대장이 참석할 필요조차 없었다. 필자는 밖으로 나가 검열이나 전투력 점검이 언제 있는지 등에 대한 외부 정보를 얻어 무전기로 포대에 알렸다. 알리기만 하면 금방 시행됐다.

병사들은 그들이 갖게 될 내무반 설계를 매우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만큼 진도가 빨랐다.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이라던 작업이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병사들마다 철침대가 있었다. 내무반은 웬만한 가정집보다 더 깨끗하고 넓고 시원했다. 휴양을 가라고 해도 "여기가 최고"라며 가지 않았다.

필자가 너무도 곤히 잠들었던 어느 날 밤, 나민하 소위가 매복을 나가 42명의 베트콩을 사살했다. 아마도 1970년 11월 12일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매복전에서 필자의 부하장교들과 병사들은 필자를 깨우지 않고 베트콩 퇴로에 1,800발의 포탄을 밤새내 날렸다. 당시에는 미군이 포탄 사용량을 통제했기 때문에 하루 밤에 50발정도 밖에 쏠 수 없었다. 하지만 간부들은 필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배짱 좋게 1,800발이라는 엄청난 포탄을 밤새 쏜 것이다. 이로 인해 베트콩 24명이 추가로 퇴로에서 죽었다. 포대 장교들이 훈장을 탔다. 필자는 자다가 훈장을 받은 것이다. 간부들이 깨우지 않는 것은 필자의 조치가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필자의 몸무게는 47kg, 가끔 코피를 흘렸다. 월남전에서만 44개월을 보냈으니 월남사람처럼 마를 만도 했다. 그래서 간부들은 필자가 과로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챙겨주었을 것이다. 며칠 후 사단 포병사령부에서 이 1,800발을 문제 삼았지만 사령관님은 “포는 그렇게 운영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감싸주었다.

포대단위 자동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에는 불과 4개월이면 족했던 것이다. 1970년 11월13일, 이세호 주월한국군 사령관이 참모들을 이끌고 고지로 날아와 필자와 필자의 부하들에도 화랑무공훈장을 달아주었다. 그런데 그 후 두 달 정도 지나자 사단부관참모부에서 중위가 찾아와 훈장에 행정착오가 있었으니 화랑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인헌무공훈장으로 바꾸어야 하니 화랑무공훈장을 돌려 달라 했다. 필자는 너무 어이가 없어 “인헌도 화랑도 다 내겐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고 다시 오지 마시오” 하고는 화랑무공훈장을 던져 버렸다. 필자는 사이공 사령부에서 전속부관을 하면서 사단 부관부 참모들이 돈을 받고 훈장을 판다는 부끄러운 말들을 많이 들어 그 중위가 그런 심부름으로 왔을 것이라고 직감했기에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필자 또한 훈장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인헌무공훈장이 된 것이다.

2009.2.5.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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