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Articles

Name


	지만원

Subject

태고를 울리는 하모니카 소리

밤 10시, 내가 사는 동네 물가에 심금을 울리는 하모니카 소리가 들렸다.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의 모습이 검은 밤의 공간에 실루엣으로 조각돼 있었다. 개울물에 섞여 간간히 귓전을 울리는 곡조는 매우 절제된 소리였다. 목포의 눈물, 으악새, 진주라 철리길,

오고가는 사람들이 그 절제된 하모니카 소리를 방해했지만, 나는 먼발치에서 그 소리를 한동안 들었다.

절제! 절제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절제,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곡을 뿜어 낼 때도 절제, 글을 쓸 때에도 절제, 연설을 할 때에도 절제, 감정을 표현할 때도 절제, 오늘의 하모니카에서 나온 소리는 절제된 소리였고, 절제된 곡이기에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몇 개의 곡들을 냇물소리에 얹어 듣고 있자니, 상념은 산장 같은 내 시골동네로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뽀얀 은하수,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검은 병풍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드높은 고지들, 그런 적막이 새삼 그리워 졌다.

불과 3시간 미만이면 갈 수 있는 그 마을, 예전에는 불현듯 마음이 내키면 길을 떠나 당도했던 그 마을이 지금은 아득한 먼 곳이 됐다. 창살 없는 감옥, 나는 스스로 만든 의무들로 창문을 검게 도배해 버린 자폐증(히키고모리) 환자가 된 것인가?

부처님, 주님, 제발 내년부터는 낮에는 해맑은 물이 흐르고, 밤이면 은하수 쏟아지고, 풀벌레소리 가득한 그 적막의 공간에서 태고의 상념으로 살게 해주소서! 어지롭고 복잡한 세속을 떠나 어릴 적 추억에 묻혀 팔베개 비워주고 팔베개 비워 받으며 어린 아이처럼 살다 조용히 하직하게 해 주소서.

그리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시도 않은 이 몸을, 어릴 적에는 지질이도 고생을 시키신 하늘이여, 젊었을 때는 44개월간 월남 땅에 보내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지키느라 간을 조리게 하신 하늘이여, 중년에는 늦공부를 시키고, 배운 값 하느라고 군의 기득권 세력과 싸우게 하며 술로 분을 삭이게 하신 하늘이여, 말년에는 김대중과 노무현 같은 공산 사기꾼에 맞서 싸우게 하고 감옥에 가게하신 하늘이여, 이제는 '제발 그만' 나를 풀어주시옵소서.

내 마음은 당신 하늘들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무슨 업보를 졌기에 당신들은 내 마음을 움직여 세상의 인간들이 제게 지워주지 않는 의무들을 내 스스로 창조하고 그것으로 등짐을 지게 하시는지 그 이유나 알게 하소서.

내가 당신에게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당신이 주신 재능을 좀 더 열심히 갈은 죄가 있고, 당신이 주신 시간을 골프나 술집에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데 쓴 죄가 좀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했더니 전쟁터에 있던 지휘관들이 제게 더 많은 일을 맡깁디다. 하늘이여, 당신도 내게 일을 더 맡기고, 전쟁터의 지휘관들도 더 많은 일을 맡기면 도대체 나는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나는 전쟁터의 상관도 거역할 수 없고, 하늘인 당신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제발 바라옵건데 제 손에 잡혀 있는 모든 끈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제가 간절히 간구하는 것은 말년의 휴식입니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모든 끈을 제발 내일 아침 가위로 싹뚝 잘라 주시옵소서! 잘라서 내 목숨이 사라진다 해도 내게는 그길이 더욱 편안할 것입니다. .

2007.7.30.


Prev	가난과 낭만	지만원


Next	인생은 마라톤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