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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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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엔 계급이 없지만 인생엔 있습니다.

날이 가면 타락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인생입니다.

날이 가면 발전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인생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두 가지 인생이 있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인생이 있습니다. 순수하고, 욕심 없고, 불의의 길이면 가지를 않고,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발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결산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가슴엔 정의와 사랑하는 가족이 전부입니다. 이런 사람을 저는 에스컬레이터 인생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회에 많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다음엔 엘리베이터 인생이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싶어 하는 인생입니다. 실패하면 뿌리가 뽑히는 모험을 감수하는 도전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 도전은 배우처럼 일시적으로 반짝 뜨는 도전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정하는 도전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맨몸으로 나서는 거품이 없는 도전인 것입니다.

인간의 자생적 의지는 얼마나 클까요?

지나고 보니 제 일생은 끝없는 도전의 역사였지만 제 의지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13살 때 산간마을을 떠나 무작정 '무분별했던 동네 형들'을 따라 서울에 왔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제게는 도전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신문을 돌리고, 기차에 가서 목재를 등짐으로 나르고, 건설 현장에 가서 바닥을 다듬고, 자동차 제조공장에 가서 용접기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밤이면 엄마 품이 그리워 울고 또 울었습니다.

잠잘 곳이 없어 을씨년스런 미나리 밭 가운데 지어진 검은 판자 집 학교건물에서 자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것도 도전이었습니다.

키가 작은 줄 뻔히 알면서도 육사시험에 붙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도전이었습니다.

가지 않아도 됐을 전쟁터에도 도전해 보았습니다.

군에서는 윗분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아 대위계급에서는 장군들을 가장 많이 알고 지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육사에서 책을 놓은 지 9년 만에 유학이라는 것에 도전했습니다.

미국에서 문과 분야인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도서관 바닥에서 학술지 간행물들을 쌓아놓고 자신도 모르게 엉엉 울었습니다.

밤중 2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니 저도 모르게 아구아구 소리가 나왔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귀엽다며 미국인 교수들이 그 학교 창설 100년 이래 처음으로, 이과인 시스템공학에 문과 학생을 추천했습니다. “이 학생의 발전과정을 보고 싶다”는 게 단순한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에 없는 공식 2개와 정리 6개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를 추천했던 교수들이 너무 행복해 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성취한 사람입니다. 미국 교수들이 저를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자기들이 경험한 학생들 중에서 저의 직관이 가장 뛰어나다고들 말해주었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지중해성 기후에서도 저는 발이 시렸습니다. 그리고 저렸습니다. 뒷골이 무겁고 졸렸습니다.

또 도전을 했습니다. 배에다 침을 마구 꽂았습니다. 체력이 내려갔습니다. 당시 가족은 침구멍에 암세포가 자란다며 겁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침을 꽂았습니다. 까부라지는 몸을 일으켜 미국의 숲 속 길을 뛰었습니다.

수학의 진리는 매우 많은 경우, 제가 살아왔던 일반 상식과는 달랐습니다. 분석가의 상식과 일반인의 상식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전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호텔에 가서 보는 전구, 사용된 일생(backward life)이 있고, 앞으로 더 사용될 일생(forward life)이 있습니다. “전생과 후생이 확률적으로 같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라!”

수학은 예술입니다. 해석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터득에는 희열이 있습니다.

거대한 군의 고정관념을 깨려고 도전했습니다. 군부대들에서는 지만원이 가면 지휘관들이 사시나무가 됐었습니다.

예편 후, 저는 살아있는 권력에 도전했습니다. 김대중 시절에 김대중을 빨갱이라 불렀습니다.

금단의 문에도 도전했습니다.  ‘5.18은 양아치들의 잔치’, ‘12.12는 잘한 것’ ‘일본에 먹힐 만 해서 먹혔다’ ‘김구는 빈라덴’  '위안부놀음 걷어 치워라'  등 등

여기까지만 해도 제 인생은 도전의 인생입니다.

도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도전이란, 인생의 엘리베이터를 여러 차례 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무엇이 다른가요.

에스컬레이터인생은 모험과 극기가 없는 인생입니다.

엘리베이터인생은 극기를 감수하면서 모험을 한 인생입니다.

에스컬레이터도 라이센스이고, 엘리베이터도 라이센스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개에는 계급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계급이냐”

이렇게 덤비면 할 말이 없습니다.

간디도, 테레사도, 예수도 여기에는 저보다 더 약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의 계절이 참 싫습니다.

제가 대령이었을 때, 국방장관은 저를 ‘지 중령’이라 부르지 않고 ‘지 박사’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졸출신들, 대학 1학년 중퇴자들이 저와 맞먹자 합니다.

글재주 좀 있다고 해서, 제 글재주와 겨루자 합니다.

글제주로 겨루면 저는 집니다.

그들이 글재주를 키울 때, 저는 수학을 공부하고 국가경영을 공부했으니까요.

지금은 우익도 맞먹자 하고, 좌익도 맞먹자 합니다. 지금은 실력이 불필요한 시대이니까요. 실력이 불필요한 시대에서는 실력자가 글쟁이 앞에 바보가 됩니다.

품위란 무엇인가요?

우리 아버지, 늘 제 아래 배를 쓰다듬으면서 주무셨습니다. 팔베개를 베어주면서!

“선비는 비단 옷을 밤에 입고, 사기꾼은 비단 옷을 낮에 입는 단다!”

낮이 되면 제 품위는 부서집니다. 고교출신도 돌을 던지고, 대1 중퇴 출신도 돌을 던집니다. 제가 아주 만만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낮에 부서지는 저는  이 늦은 밤에서야 비단 옷을 입습니다.

오늘 따라 아버지가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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